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Jun 12. 2024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취향저격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를 보면 내 취향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넷플릭스로 영화 한 편을 봤다. 믿을 만한 아마추어 영화인 우리 큰아들의 권유다. 큰아들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을 여름에 보면 좋고 겨울에 보면 슬픈 영화라고 했다. 작년 여름에 달아 놓은 암막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고 크리스마스에 남편의 성화로 산 65인치 TV로 안방 쇼파에 앉아 혼자만의 영화 감상을 즐겼다. 그야말로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공간에서 취향저격 영화에 압도당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이다. 가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열병과도 같은 사랑을 담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남자들의 이색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그저 사랑이다. 두 사람의 열정에 식어 있던 가슴에 불이 붙고, 서로를 향한 간절함에 마음이 간질거렸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지독한 첫사랑의 상처가 그립기까지 했다. 사랑은 언제나 옳다. 



이탈리아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17살의 소년 엘리오. 편안한 복장으로 책을 읽고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치고 그러다 수영을 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다가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대리 만족이었다. 내가 갖지 못한 10대의 풍요와 자유, 두 아들에게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경험과 기회에 대한.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만 왔다갔다하는 한국의 청소년들과는 다른 사고를 할 것이고 어른이 된 그들의 삶 또한 무척이나 다른 색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빛나고 뜨거워야 할 10대에 우리 아이들은 어른과 학업의 그늘 속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두 아들의 엄마로서,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외모와 분위기의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자유로우면서도 생각이 많은, 17살 엘리오의 역할을 너무도 몰입감 있게 잘 해냈다. 24살 청년 올리브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내보이는 씬에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출 수 없는 감정이 표정과 몸에 배어나고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공감하도록 능숙하게 표현한다. 천생 배우구나 싶다.   



또 한 명의 남자, 엘리오를 지독한 첫사랑에 빠지게 한 올리브. 사실 난 이 배우에게 잠시 빠졌었다. 훤칠한 키에 시원스러운 외모, 당당하면서도 자유로운 태도와 독특한 매너까지 갖춘 이 남자가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서 영화를 보는 내내 설렜다. 그래서 아이 해머라는 배우의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지 했는데 큰아들 왈, 이 배우의 사생활에 너무 문제가 많아서 앞으로 배우 생활 이어가기는 어려울 거란다. 자세한 사연까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역시 얼굴값 한다니까' 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팬심을 갖게 된 배우가 나이 들어서까지 좋은 배우로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어떤 분야에서든 '꾸준히'는 어려운 법이니까.  




사랑이라는 진리와 같은 주제, 아름다운 영상, 두 주인공의 잘 생긴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 그것 외에도 이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건 엘리오의 부모였다. 17살 청소년 아들을 대하는 엄마는 다정하면서도 쿨했고, 아빠는 지적이면서도 공감력이 뛰어났다. 아직 미성숙한 자식이지만 결코 무시하지 않았고 아들의 감정과 사랑을 존중하면서 지켜보고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에도 과연 저런 부모가 존재할까, 나라면 우리 두 아들을 저렇게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영화 속 엘리오의 부모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아들들에게 친구 같으면서도 어른으로서 기댈 수 있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사랑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제목이자 명대사,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러줘. 나는 너를 내 이름으로 부를게." 이 영화 이후로 사랑의 속삭임은 이 대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 라고 올리브를 부르는 엘리오의 애절한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슬픈 사랑의 말이 될 것 같다. 이들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의 설레임, 환희, 안타까움, 간절함, 애틋함, 슬픔, 그리움, 상실까지 사랑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는 감정들을 소환해낸다. 사랑하는 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후의 상실감, 금쪽 같은 둘째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후의 허전함, 내 텅 빈 마음이 좋은 영화 한 편 덕분에 사랑으로 조금 채워졌다. 한 여름의 뜨거운 사랑이 지나고 눈 내리는 겨울, 엘리오가 맞이한 완전한 이별을 함께 느끼며 티모시와 함께 울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명장면, 벽난로 앞에서의 티모시 샬라메의 표정과 눈물 그리고 마지막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말고 몰입해서 보시길...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은 계속될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