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Aug 24. 2023

우리 부부의 슬럼프

1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슬럼프 극복 방법

 "잘 잤어?" 어제 아는 언니와 술 한 잔 하고 들어와 잠든 나에게 남편이 걱정스런 눈으로 묻는다. "술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괜찮아?" "몸은 좀 어때?" 질문이 쏟아진다. 아마도 어제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사실 지난 주부터 몸도 무겁고 마음은 더 무거웠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걸 실감하는 중이다. 몸이 찌뿌뚱하면 마음도 따라 '흐림'이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좋아하던 산책도, 습관처럼 가던 운동도 시들해진다. 오늘 아침에도 비를 핑계로 산책은 건너뛰고 다음 달에 중1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 <모모>를 읽다 이불 위에서 뒤척였다. 11시 운동을 예약했다가 결국 취소했다. 운동은 몸으로 하는 건데 도무지 운동할 기분이 아니다. 역시 이성보다는 감정이 인간을 지배한다. 머리로는 '해야지' 하는데 마음이 따라오질 못한다. 


 "나 슬럼픈가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남편에게 투정부리듯 말했다. 남편이 내 어깨와 허리, 다리를 주무르며 "나도 그래. 요즘 일하기 진짜 싫다. 민원도 싫고, 일 처리하는 것도 힘들고." 이런다. 남편이 다른 지사로 발령나서 일한 지 한 달쯤 됐나? 전에 남편이 10년 가까이 일하던 지사인데 정말 힘들어 했던 곳이다. 다시 그곳으로 가게 돼서 한동안 우울해했다. 딱 5년만 견디고 우리 5년 뒤에는 지방에 가서 조용히 살자고 마음을 다졌는데 아무래도 견디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힘든 남편에게 괜한 소리로 더 기운 빠지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어제 못한 설거지를 말끔히 끝냈다. "오빠, 늦겠다. 얼른 씻어야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나 갔다올게."하며 현관에 나서는 남편에게 "응, 잘 다녀와. 나도 수업 잘하고 올게. 이따 저녁에 보자고요."하며 밝음을 가장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힘이 되고 두 아들에게 든든한 엄마이고 싶어 애쓰고 있는 나, 우리 부부는 요즘 슬럼프다. 함께 산책하고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눌 때가 가장 행복한 우리는 그런 시간이 항상 아쉽다. 5년 후면 우리가 결혼한 지 딱 30년 되는 해다. 우리는 그때 두 아들을 독립시키고 지방 곳곳을 다니며 6개월이나 1년 살아보는 생활을 하는 게 꿈이다.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없이 아침에 함께 산책하고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재래 시장에서 제철 재료를 사다가 소박한 저녁 밥상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살고 싶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다. 한쪽이 지치면 손을 잡아주고 천천히 속도를 맞춰 간다. 한쪽이 너무 빠르게 앞만 보고 가면 "같이 가." 하며 뒤돌아보게 한다.   


 우리 부부의 슬럼프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극복한다. 내가 지치고 힘들면 상대방도 함께 기운 빠지니까 내가 먼저 힘을 내야겠다. 출근하는 남편의 마음도 아마 같을 것이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예쁜 이모니콘을 골라 함께 힘을 내자고 문자를 보냈다. 마음 먹는다고 금방 기분이 회복되고 몸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어쩌랴, 이렇게 해서라도 어거지로 기운을 차려야지. 비가 내리는 목요일, 차분하게 마음 정리하고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목금토 3일 근무의 첫 날인데 슬럼프 타령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직업인으로서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엄마로서 든든하게 버텨내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힘이 되어야지. 블로그에 썼던 '슬럼프' 관련 글을 찾아보니 1년에 한 번씩이다. 올해도 잘 넘기고나면 앞으로 1년은 괜찮겠지. 어서 빨리 내가 좋아하는 하루 루틴으로 돌아가야겠다. 우선 지금은 콩나물국에 든든하게 해장하기로...




2019. 9. 10.

 나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 슬럼프가 왔나보다. 책이 잘 읽히질 않는다. 책은 붙잡고 있는데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은 더하다. 노트북의 커서는 깜박깜박 나를 재촉하는데 손가락이 자판 위에 멈춰 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노트북을 덮는다.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일에 의욕이 떨어지니 초조해진다. 이대로 주저앉게 될까봐 겁이 난다.

 자꾸 피곤하다. 밤에 푹 자지 못하고 몇 번씩 자꾸 깬다. 새벽 4,5시면 일어나 요가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요즘엔 기상 시간이 제멋대로다. 요가는 생각날 때마다 잠깐씩 스트레칭하는 정도고 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리는 일도 고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다가,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문득 배가 고프다. 진짜 허기가 아닌 것 같은데 판단할 틈도 주지 않고 마구 먹는다. 과식 후엔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배는 더부룩하고 기분은 더 가라앉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다음 날 아침이면 빵빵하게 부은 호빵맨이 거울 속에서 내게 인사한다.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 눈은 무엇이 낀 듯 흐릿하고 다리는 수시로 저린다. 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힘들다. 글 쓰기는 엉덩이 힘이라는데 아예 방석을 장착하고 나온 듯한, 살집 좋은 내 엉덩이가 요즘엔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슬럼프는 극복하고 지금의 좋지 않은 몸과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숨 쉬고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은 내 몸을 관찰하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를 좀 다독여야겠다. 지금까지 잘 해 왔다고, 좀 쉬었다 다시 가면 된다고, 천천히 다시 힘을 내 보자고.

2020. 6. 18.

 스트레스를 푸는 자기만의 방법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 한다. 요즘 나를 괴롭히던 우울과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두 아들이 먹을 김치볶음밥을 해 놓고 내가 찾은 곳은 광화문 교보문고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재래 시장과 서점이다. 특히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내 자잘한 고민들이 거대한 책의 파도에 묻혀버린다. 너무나 많은 종류의 책들을 보면 '내가 죽을 때까지 이 많은 책들을 얼마큼이나 읽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바빠진다. '이렇게 좋은 책이 많으니 난 늙고 할 일이 없어도 심심할 틈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에 부자가 된 것 같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진열대에서 내가 쓴 책을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 어서 가서 글을 써야지!'라고 주먹을 불끈 쥔다. 

'글쓰는 사람 유쾌한 주용씨'라고 새긴 펜


 이제 지겨운 슬럼프 극복하고 다시 글쓰는 사람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면서 교보문고의 문구 코너 핫트랙스에 들렀다. 내 책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 노트와 책쓰기 전용 펜을 구입했다.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내 이름이 새겨진 펜으로 새 노트에 계획과 결심을 적는다. 은은한 골드 색상의 이 펜은 삼색 볼펜과 샤프까지 된다. 글씨를 새겨 넣을 수 있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 새 공책에 나의 이름이 새겨진 펜을 들고 나의 이야기를 써야겠다. 


글쓰는 사람 유쾌한 주용씨


2021. 6.  24.


 읽고 쓰는 삶을 꿈꾸고 첫 책 출간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했지만 사실 난 요즘 슬럼프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2주 내에 다 읽지를 못하고 반납하기 일쑤고,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는 것 외에는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새벽 명상 시간에는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호흡에 집중하지 못하고, 몸에만 집중하는 요가 시간이 그나마 마음 편하다. 집안일을 하다보면 출근할 시간이 바싹 다가와 있고, 퇴근하면 다음날 새벽 요가를 위해 바삐 잠을 청한다.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항상 우선 순위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도서관에 들렀다.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마음이 가는 책들을 빌려 왔다. 그 중에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 있다. 그냥 손이 갔다. 집에 오는 길에 동네 서점에 들러 정유정의 신간 소설 『완전한 행복』도 사 왔다. 지금 당장 소설을 쓰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설을 쓸 자신은 더욱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정유정의 책이 나를 다시 읽는 재미에 빠지게 할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다시 읽고 쓰는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2022. 10. 20

2022. 10. 21.

 2019년부터 올해 2022년까지 3년 넘게 품고 있는,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내맘이 애틋하다. 많이 읽고 잘 쓰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먹고 마시는 걸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슬럼프의 확실한 징후다. 과식과 잦은 음주는 숙면을 방해한다. 그러니 새벽 기상이 힘들 수밖에 없고 아침 운동까지 거르게 한다. 

 새벽에 일어나 남편과 아침 산책을 하고, 혼자 남은 조용한 집에서 오전엔 글을 쓴다. 오후에는 시장에 다녀와 집안일을 마치고 여유로운 독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저녁을 준비해 가족과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함께 식사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하루 일기를 쓴다. 잠자리에서 읽을 소설책을 들고 10시 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 스탠드 아래서 잠시 책을 읽다 잠이 든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하루 루틴이다. 목금토 3일은 학원 수업을 하지만 월화수 3일 이런 일상을 보내면 충전이 된 듯 수업도 수월하다.  

 1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슬럼프, 이번엔 확실히 끊어봐야겠다. 허리 통증으로 새벽 기상과 아침 산책은 걸렀지만 오늘부터 16:8 간헐적 단식과 가벼운 식단을 실천하려고 한다. 몸을 가볍게 하고 퇴근 후엔 야식과 술 없이 일찍 잠을 청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새벽 5시 기상과 아침 산책을 시작으로 평화로운 나의 루틴을 찾아갈 것이다. 어제는 다이어리에 남은 올해의 계획과 버킷리스트를 프린트해서 붙여 놓았다. 매일 아침 읽으며 나와의 약속을 다짐하고, 나의 꿈을 선명하게 떠올린다면 슬럼프를 극복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키다리 아저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