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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28. 2020

나는 재수생 아들의 엄마다 !

아들과 함께 성장하는 엄마

2020년 11월 5일 

수능 한 달 남았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재수생 아들...


작년에 고3이었던 아들의 수능은 11월 14일이었다. 올해 재수생 아들의 수능은 12월 3일,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말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을 살고 있다. 작년 수능 전날 '수능을 보는 큰아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눈물 섞인 글을 썼었는데 그때만 해도 내 아들이 재수를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에 비해 수험생 엄마로서의 긴장감은 확실히 덜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들의 수능 결과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 일 년 동안 큰아들을 지켜보며 내 새끼지만 이놈이 공부할 스타일은 아니라는 걸 실감하고 확인했다. 


큰아들의 게으름, 부족한 절박감, 재수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여유, 나보다 더 많은 잠, 거울 앞에 서 있는 너무 긴 시간 등 재수생 엄마가 지켜보기에 참기 어려운 요소들이 참 많았지만 재수생 아들과 나는 큰 갈등 없이 여기까지 왔다. 


20년 학원 국어 강사로서는 우리 큰아들의 재수를 막았어야 했다. 재수한다고 수능 점수가 나아지는 건 아니라고, 너처럼 공부해서는 네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고 매몰차게 말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그러지 못했다. 수능을 망쳤다는 큰아들의 실망을 이해하고 위로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보겠다는 안쓰러운 도전과 용기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재취업해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있으니 큰아들 뒷바라지를 남편과 함께 짊어질 수 있다. 작년처럼 재수하겠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지 않고 좀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 큰아들에게 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재수생답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못했어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 년이었을 테니 마지막 결과가 절망스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앞으로 남은 한달, 수능을 보는 재수생 큰아들의 건강과 마음의 근육을 기원한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흔들리는 어깨를 잡아주고 고개 들어 앞을 보게 해 줄 엄마가 곁에 있다는 걸 몸으로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언제나 아들보다 먼저 일어나고 먼저 울고 먼저 웃어야 하는 사람이다. 



고개 숙인 재

2020년 12월 5일

재수생 아들의 수능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괜찮다.


힘겹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수능을 본 큰아들은 어제부터 미술 학원 정시대비 수업에 가기 시작했다. 가채점을 제대로 안 해봤다며 수능 점수는 나와봐야 안다고 했다. 흡족한 점수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번엔 작년처럼 수능 하루만에 재수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수능 후 아들의 행보를 작년보다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8월에 재취업에 성공한 덕분이다. 학원 전임 강사로 고정적인 급여를 받고 있으니 아들의 미술 학원 특강비와 대학 등록금 등을 남편과 함께 부담할 수 있게 되었다. 일 시작하기를 잘 했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 잘 참았다. 


'난 떡을 썰 테니 넌 글을 쓰거라.'는 한석봉 어머니의  교육 방침이 맞았다. 내가 아들만 바라보고 있다고 수능 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들 밥상의 반찬 가짓수를 늘렸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무심한 듯 난 내 일을 하면 되는 거였다. 아들이 글은 못 쓰더라도 내가 썰어 놓은 떡은 남을 테니까. 그 떡으로 아들이 다시 배우고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지원해주면 될 일이다. 


토요일, 큰아들은 아침 일찍 미술 학원에 갔고 나는 미술 학원의 부담스러운 특강비를 보며 출근 준비를 한다. 아들은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나는 학원에서 수업을 한다. 7시에 우리 가족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들은 아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각자 자기의 시간을 산다. 이렇게 살면 되는 거다. 사는 거 별거 아니다.  


재수생 아들의 수능이 끝났다. 긴장했던 마음을 좀 내려놓았다. 흘러가는 대로 내 몸과 마음을 맡기기로 했다. 전과 다름 없는 일상이다. 그런 대로 괜찮다. 



2020년 12월 28일

고개 숙인 재수생 큰아들에게...


한 달 만에 휴일이 되어 찾아온 일요일이었다. 4주 동안 학원 기말고사 대비 기간으로 일요일에도 6시간씩 수업을 했다. 오랜만에 온전히 네 식구가 같이 있는 휴일이라 아침 일찍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오후엔 기말고사가 늦은 우리 작은아들의 국어 시험 대비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미술학원 수업으로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는 큰아들과 수능 결과와 대입에 대해 의논도 해야 했다. 


아침 산책을 함께 하며 남편과 나는 큰아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수능 결과가 좋지 않은 재수생 큰아들은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지망하고 싶은 학과를 갈 수 없다. 그런데도 굳이 4년제 대학을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지만 무엇보다 아들의 생각이 중요했다. 우리 부부는 큰아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큰아들은 말했다.


가고 싶은 대학,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따로 있지만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고 수능 점수가 이렇게 나온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잖아. 군대를 갈까 생각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지금 지원해도 6월 이후에나 갈 수 있다고 하고, 대학에도 가지 못한 채 군대에 가면 불안할 것 같아서 지금은 그냥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고개 숙인 큰아들에게 엄마가 말했다.


이제 겨우 20살인데 왜 방법이 없어? 정말 네가 원하는 일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지. 가고 싶지 않은 대학에 점수 맞춰서 입학하면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시간과 돈 낭비 하는 거 아닐까? 지금까지 그림을 그렸으니 그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그냥 미술을 하겠다고 하는 건 네 인생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10년, 20년을 한 분야에서 일하다가 다른 일로 돌아서는 사람들도 많아. 너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도전을 하기에 너무 젊은 나이야. 엄마는 20년을 넘게 학원일을 하다가 50이 다 되는 나이에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써서 7000명이 넘는 이웃이 생겼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출간 계약서도 썼잖아. 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 엄마아빠가 부자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네가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응원할 거야.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갈 필요는 없어. 가고 싶지 않은 대학이라면 가지 마.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그곳에서 네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아. 아예 모든 걸 완전히 뒤집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말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너만 생각하고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봐. 그래도 괜찮아. 언제든 엄마아빠에게 상의하고 손 내밀어줘. 넌 결코 늦지 않았어. 


내 말이 큰아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엄마의 진심이 아들의 현명한 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고개 숙인 재수생 큰아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 고민과 갈등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왔다.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니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아들의 아픔만큼 엄마도 성숙한다. 내년엔 아들과 나의 마음이 한 뼘쯤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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