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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24. 2020

행복했던 전업주부가 화가 난 워킹맘이 되었다!

경단녀 전업주부 & 재취업한 중년 워킹맘

나는 자발적 경단녀였다. 20년 동안 학원일에 매달려 있다가 스스로 끈을 끊어내고 전업주부로 3년 남짓 살았다. 그 기간 동안 많은 걸 얻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일하고 돈 번다는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내로, 엄마로 정말 따뜻했다. 경단녀이며 전업주부로 행복했던 2018년 당시 중2, 고2였던 두 아들의 기말고사 기간에 썼던 글이다. 




두 아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워킹맘이었을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일을 그만두면서 아이들의 시험 기간에 엄마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다. 우선 시장이나 마트에 가 두 아들이 좋아하는 메뉴의 장을 본다.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 보면 당이 떨어질 수 있으니 초코바도 간식으로 준비한다. 중간중간 까 먹기 좋은 귤은 2학기 기말고사 기간엔 가성비 최고의 비타민이다.


스터디 카페에 가겠다던 큰아들이 "엄마, 나 그냥 집에서 공부할까?"한다. 오랜만에 두 아들과 저녁 시간을 함께 하며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저녁 메뉴는 고등어 김치찌개와 오징어 볶음이었다. "등 푸른 생선이 두뇌 회전을 도와준대. 아들들 고등어 많이 먹어~"라고 말을 건네며 김치를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내 논에 물 들어오는 거랑 새끼들 입으로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옳다. 정말 밥 안 먹어도 배 부르다.


고등학생 큰아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아직 중학생인 둘째아들은 거실에서 나와 함께 했다. 나는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작은아들은 옆에서 중얼중얼거리며 시험 공부를 한다. 안방에는 퇴근한 남편이 TV 소리를 낮추고 농구 중계를 보고 있다. 작은 집에 우리 네 식구의 온기가 따뜻한 행복을 만들어낸다. 함께 있음에 감사하다.


쟁반에 간식을 담아 책상에 놓아 주기도 하고 실내 온도를 체크하기도 하면서 드라마에 나올 법한 자상한 엄마의 모습을 흉내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절대로 부담을 주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 감시하는 눈초리는 금물이다. 


우리 막내는 안방에서 우리 부부와 함께 자는 일이 많다. 가끔 남편이 불만을 토로할 때도 있지만 그리 길지 않을 아들과의 동침이 나는 좋다. 새벽 1시쯤 시험공부를 마무리한 막내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거실의 찬 기운이 느껴진다. 아들의 차가운 발과 팔을 따뜻하게 데워진 내 손으로 비벼대며 "어서 자~ 우리 아들, 공부하느라 고생했네."하며 토닥인다. 진심이다. 시험 결과에 상관없이 아들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큰아들의 방을 노크한다.

 "아직 안 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얼른 자." 

평소 좀 까칠한 우리 아들의 대답이 말랑말랑하다. 

"어~ 엄마 먼저 자."


요즘 나는 초저녁에 1시간쯤 졸다 깨고나면 새벽까지 소설책을 읽곤 한다. 옆에 누운 막내의 쌔근거리는 소리를 음악 삼아 오래오래 깨어 있었다. 새벽 2시쯤 밖에서 큰아들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자려나보다.' 아들의 방문 닫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하루도 마감한다.


2018. 12. 12.




그런데 재취업을 한 후, 나는 차가운 아내, 화가 나 있는 엄마가 돼버렸다. 3년을 쉬고 다시 시작한 학원일은 전임 강사 급여 이상의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도 집안일에 식구들 저녁 준비하다 정신없이 출근하고 거의 매일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지쳐 돌아온다. 남편과 아들들에게 환하게 웃어줄 여유가 없다.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표정은 싸늘하고 말이 줄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바닥 난 통장을 조금 채워주기는 했지만 나의 여유와 자유를 앗아갔다. '다 괜찮아'하며 여유를 부렸던 마음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산책하고 요가하고 읽고 썼던 나의 새벽은 피곤에 전 무거운 몸으로 의무감에 글을 쓰는 부담스러운 시간이 되어버렸다. 

재취업 후 첫출근을 하고 첫월급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의 체력과 열정, 에너지로 무엇에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네 번째 월급을 받은 나는 체력은 달리고 열정은 식었고 에너지는 방전되었다.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니 남편과 두 아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일에도 온힘을 쏟아야 가능하다. 

어제는 재수생 큰아들의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며  고1 작은아들의 기말고사 첫날이었다.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았던 큰아들과 두달 동안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시험대비를 했던 작은아들의 좋은 성적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시 퇴근 후 두 아들에게 좋지 않은 성적을 직접 확인하고 나는 결국 무릎이 꺾이고야 말았다. 

어리석게도 '내가 잘못 키운 걸까?'라는 자책이 뒤따랐다. 어릴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일, 일한다는 핑계로 공부며 준비물이며 살뜰하게 못 챙겨줬던 일,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한 일, 좋은 식재료로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지 못한 일, 아이들 학교나 학원에 소홀했던 일, 성적표에 너무 신경쓰지 않았던 일 등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너무나 부족한 엄마였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눈물이 나오려는 침울한 기분을 가까스로 달래며 두 아들의 방 앞에서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굿나잇 인사를 건넸다. 내가 이래 봬도 두 아들의 엄마인데 이렇게 무너지면 안되지 싶었다. 완벽한 엄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 아들들에게 편안하게 쉴 곳이 되어주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충전소가 되어주어야 했다. 시리고 아픈 만큼 상처를 이겨낼 힘이 솟는 걸 느꼈다. 나는 씩씩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여유롭고 행복이 묻어나는 예전의 글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평온한 마음을 기억해내려고 애쓰고 있다. 공부는 못해도 특별히 아픈 데 없이 잘 자라준 두 아들이다. 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많이 웃어주고, 어깨 처져 있는 아들들에게 엄마의 유쾌한 에너지를 전해 주리라 다짐한다. 힘겨운 일상이 아무리 나를 흔들어도 나는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파이팅! 유쾌한 주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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