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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19. 2020

중년 경단녀, 재취업 후 자꾸 사표를 쓴다

직장과 꿈 사이 어디쯤...

2020. 11. 27

꿈에서 사표를 썼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속은 시원했다. 어젯밤 너무 피곤해서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빈 속으로 잠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꿈 때문이었다. 꿈에서나마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었나보다. 꿈에서 시원하게 사표를 썼다. 49세 경단녀가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의기양양했던 것이 불과 3개월 전인데 벌써 그만둘까를 생각한다는 것이 나 스스로 못마땅하지만 사실 요즘 고민이다. 


가장 힘든 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읽고 쓰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출간 계약서까지 썼는데 주 5일 하루 6,7시간씩 수업을 하니 피곤에 지쳐 책상에 몇 시간 앉아있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 좀 글이 써지나 싶다가도 금방 출근할 시간이다. 나를 따르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는 일 자체는 좋지만 이대로 간다면 내가 원했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3시부터 수업 준비하고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열심히 떠들고 나면 밤 11시, 이미 목은 잠겨서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고 허기진 채로 퇴근하는 내 몸에선 말라버린 낙엽처럼 바스락 소리가 난다. 


일은 안 하고 글쓰기에만 몰입하겠다는 욕심을 부릴 수는 없다. 두 아들의 학원비와 앞으로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면 그런 마음은 엄두를 낼 수도 없다. 단지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학원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나와 너무 다른 가치관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양식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를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동네에서 이름 나 있는 영수 학원에서 국어 과목을 신설하겠다며 내년 1월부터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과중한 수업 시간과 너무 다양한 학교의 많은 학생들로 정신 없는 내게 차근차근 내 수업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과 멀지 않은 곳이라는 점과 지금의 고정된 전임 강사 급여를 포기하고 당장은 적은 수입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또 책을 써야 하는 이 시점에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선택일까 싶어 주저하고 있다. 


11월 말까지 결론을 내고 선택해야 한다.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누군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면 좋겠지만 결국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




결국 나는 다니던 학원에 머물기로 했다. 기말고사 기간까지 잘 견디고 나면 약 3개월은 주 5일 근무이고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으니 책 쓰면서 내 앞날을 천천히 생각해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자꾸 고비가 온다. 




2020. 12. 19.

재취업 후 자꾸 사표를 쓴다!


꿈에서 재취업한 학원을 또 그만두려 했다. 벌써 두번째다. 이번에는 다른 강사들 앞에서 내가 원장에게 시원하게 쏘아붙이고 당장 사표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장면에서 꿈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꿈 속 학원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원과는 비교도 알 될 만큼 규모가 훨씬 컸다. 너무 많은 강사들과 학생들이 나의 도발을 주시하는 바람에 나는 위축되고 말았다. 사직서를 쓰러 가는 내 발걸음이 점점 약해지고 '내가 이런 직장을 또 어디서 구하겠어?' 라며 기가 한 풀 꺾인 채로  꿈에서 깼다. 

새벽에 일어나 쿠팡에서 도착한 물건들을 정리하다 문득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 탓일까, 크게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요즘 나름대로 올해 마무리를 건전하게, 잘 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걸까?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은 무언가 지금 상황이 불만족스러워서 나오는 말일 텐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무엇이 문제니?' 하고 '나'에게 물었다. 

학원일과 내 꿈 사이에서 선 긋기가 잘 되지 않고 있다. 아니, 선을 그어야 하는 건가 판단도 잘 서지 않는다.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글을 쓰는 데 학원일이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내 글의 소재도 될 수 있고 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에 체력은 고갈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 학원장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학원의 아름답지 않은 경영 철학과 체계적이지 않은 운영 방법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내 에너지와 시간을 이런 곳에 쏟아 부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너무 예쁜데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일이 돼버리는 이 이상한 구조가 싫다.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기분 좋게 하고 싶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는 주제에 너무 이상적인 꿈을 품고 있는 것일까.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일 뿐더러 그 과정에서 나는 한뼘씩 자란다. 글쓰기는  내 삶을 조금씩 달라지게 할 거라는 믿음으로 더 잘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아이들의 성적만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또 하루 6,7시간씩 밥도 먹지 못하고 미친 듯이 떠들어대는 이 일을 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 그만둘 수는 없지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온라인 과외 선생으로 학생들을 모집해서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을 하면 어떨지 생각한다. 그래도 이 학원에서 내가 얻은 것은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학생들에게 괜찮은 선생일 수 있다는 나의 쓸모와 온라인 수업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얻은 자신감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나 혼자 하는, 부끄럽지 않은 수업을 구상해본다. 

관동별곡을 지었던 정철도 관찰사라는 공적인 책임과 자연 속에서 신선처럼 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나랏일을 먼저 하기로 하고 개인의 즐거움은 나중으로 미뤘다. 10년 과거 공부를 하고 11년 관직 생활을 하다가 유배를 가게 된 정약용은 귀양지에서 비로소 '본질적인 나'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과 소위 성공했다고 칭송받는 위인들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갈등과 고민, 후회와 자책 속에서 살았다. 하물며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야 말해 뭐할까. 앞으로 남은 인생도 나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내가 바라는 일보다는 원치 않는 상황 속에 놓여지는 일이 빈번할 것이 뻔하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니 너무 속 끓일 필요없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일은 아직 시간이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못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다. 2주도 남지 않은 올해의 달력을 보며 마음 정리에 더 힘을 쏟아야겠다고 결심한다. 확실하게 결론짓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내가 원하는 길만을 가자는 생각은 욕심이다. 그저 2021년에는 어떤 일이 닥쳐도 좀 덜 흔들리고 내 본질적 자아를 잃지 않도록 마음을 굳건히 하고 건강을 챙기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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