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Nov 15. 2024

마음은 나만의 것! 마음이 시키는 대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책장에 꽂혀 있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그 전에 읽었던 책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가끔 너무 유명한 책은, 게다가 그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으면 내가 읽었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기록이 없으면 확인할 길이 없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2017년 이전의 나는 '읽지 않은 사람'이다.


지금도 읽은 모든 책에 대해 독후감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서, 읽는 거에 비해 쓰는 건 힘들어서, 할 말이 너무 많은 책이라 내용을 정리하느라, 그닥 공감이 되지 않는 책은 할 말이 없어서...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이유는 이토록 다양하다. 오늘도 못 쓰고 지나갈 뻔 했는데 "읽었다면 한 줄이라도 써라. 모든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된다."라는 말에 자극을 받았다. 최근에 알게 된 서평가 김미옥의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의 표지에 있는 말이다. '그래,  줄이라도 쓰자.'라는 생각에 노트북을 열고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한다.


너무너무 유명해서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들어는 보았을 이름,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대표적인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년, 괴테의 나이 25세에 발표)이라 감상을 쓰는 것 자체가 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이미 다른 남자의 약혼자가 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가 결혼한 후에도 식지 않는 청년의 열정에 공감하고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20대였다면, 뜨거운 사랑에 대한 로망이 남아 있을 때였다면, 떨리는 마음으로 읽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20대 두 아들을 두었고, 갱년기 증상으로 수시로 냉온탕을 왔다갔다하는 50대 아줌마다. 젊은 베르테르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보다는 괴테의 문장, 표현력에 집중하며 읽었다. 책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그 감상이 달라지는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읽고 걷고 쓰는' 삶을 살고 싶은 지금의 나에게는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한 베르테르의 이야기보다 평생 여행하며 글을 쓴 괴테의 삶이 더 눈에 들어온다.


소설 속 베르테르는 샤를로테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괴테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괴테는 한때 자신의 친구인 케스트너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했었고, 상관의 부인을 연모하던 친구 예루잘렘은 케스트너가 빌려준 권총으로 자살했다. 가슴아픈 자신의 경험을 소설로 썼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샤를로테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도 놀랍다. 소설가는 이런 사람인가, 이렇게도 할 수 있어야 뛰어난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걸까.


많은 사람이 민생고를 해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지. 그러다가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 여가 시간이라도 생기면 괜히 좌불안석이 되어 이내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갖은 애를 쓰니 말이야. 아, 인간의 운명이란! (p.18)

세상의 일이란 따지고 보면 다 하잘것없다네. 제 열정이나 욕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돈이나 명예나 그 밖의 무엇인가를 움켜쥐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자들은 언제나 바보 소리를 듣는 거지. (p.61)

분명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또 반대로 우리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우리와 관련된 대상에 달려 있는 것 같네. (p.94)

서로 눈치나 보는 뻔뻔한 인간들의 허울 좋은 비루함과 그 지리멸렬함이라니!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인간들의 출세욕, 비참하고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병적인 집착. (p.97)

문학동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8세기의 괴테가 그린 인간들의 모습이나 21세기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행복과 불행을 왔다갔다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요구나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시 괴테가 보기에도 그런 인간들의 삶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나 보다.


마음은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유일한 것으로, 모든 에너지와 모든 행복 그리고 모든 불행의 원천이네. 아,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이 마음은 나만의 것이라네.

문학동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p.114


그래서 괴테는 오로지 자신의 것인 마음이 시키는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에 상관없이 사랑했고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에 절망하고 생을 마감한 베르테르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자 했던 괴테의 분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나의 것인 '마음'이 시키는 오늘을 살아야겠다. 가장 솔직하고 가장 나다운 오늘이 될 것이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파우스트』를 읽어봐야겠다.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괴테의 매력을 꼭 느껴보고 싶다. 괴테 친구의 아내, 샤를로테가 또 등장한다는 소설 『선택적 친화력』도 궁금하다. 이 책은 요즘 내가 관심갖고 있어서 출간한 책 2권을 모두 구입해 놓은 김미옥 서평가가 언급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