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너무 유명한 책이라 읽어야지, 읽고 싶다 하다가 마침내 완독했다. 『앵무새 죽이기』는 여성 작가 하퍼 리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퓰리처상을 받고 지금까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책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이토록 흥미롭게 쓴 작가가 대단하다 싶다. 그런데 1960년 이 책을 출간한 이후로 소설 출간을 하지 않고 있단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에서 일어난 1930년대 흑인 차별로 인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 작가의 첫 소설은 이렇게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앨라배마는 하퍼 리가 태어난 곳이다)을 배경으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식(하퍼 리는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을 동원해 쓰는 것이 편할 것 같기는 하다.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173
이 책의 주인공은 9살 여자아이 스카웃(진 루이즈)이다.작은 마을 메이콤에서 변호사 아빠(애티커스 핀치)와 네 살 많은 오빠(젬 핀치),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주는 캘퍼니아 아줌마(흑인)와 함께 살고 있다. 이야기는 주로 스카웃과 오빠 젬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눈으로 민낯을 드러내고 재해석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주는 건 양심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아빠 애티커스와 그런 아빠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모디 아줌마 같은 이웃이다.
톰 모리슨 사건
밥 이웰은 톰 모리슨이 자기 딸(메이웰라 이웰)을 강간했다고 고발하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진실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집안에만 갇혀 지냈던 메이웰라 이웰(백인)이 톰(흑인)을 유혹했고 톰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톰이 무죄라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결정한다. 결국 톰 모리슨은 탈출하려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죽게 된다.
마을 사람들 모두 반대하고 비난하는, 톰 모리슨(흑인)의 변호를 맡은 애티커스의 말과 행동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감동을 준다. 부모가, 어른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는 비록 톰 모리슨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재판을 지켜보던 흑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응원이 되었고, 흑인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생각할거리를 제공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아빠는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 바른 태도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떤 흑인은 거짓말을 하고, 또 어떤 흑인은 부도덕하며, 또 어떤 흑인은 여자를 옆에 맡겨 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 전체에 해당하는 진리이지 어느 특정한 종족에만 적용되는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의 법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어 있습니다.
· 모리 아줌마의 말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역시 걸음임에는 틀림없어."
·스카웃, 우리가 궁극적으로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
『앵무새 죽이기』는 흑인 차별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종뿐만 아니라 사는 지역, 경제력, 학벌이나 집안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평가한다. 아서 래들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잘못으로 너무 오랜 시간을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편견과 잘못된 소문으로 그를 보통 사람과 다르게 분리해버린다. 하지만 이야기 마지막에 스카웃과 젬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모습을 드러내고 어린아이들을 구해낸다.
『앵무새 죽이기』는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모든 사람들, 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을 비판하는 책이다. 그것도 순수한 아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서. 이 책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예전에도 지금도 많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신분 차별이나 여성 차별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우리 두 아들에게, 나와 논술 수업을 하는 아이들에게 스카웃의 아빠처럼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한다. 편견 없이 본다면 이 세상엔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아이들이 느끼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이 배운 사람,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양심을 지키는 사람, 정의로운 사람, 반성할 줄 아는 사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대우받고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은 좋은 태도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