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워"

영화 <내 말 좀 들어줘> 를 보고...

by 유쾌한 주용씨


오랜만에 <영화공간주안>에 가서 혼자 영화를 보고왔다. 평일이니 관람료가 7,000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000원만 결제한다. 알고보니 '국민 영화관람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입장료가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평일에는 천원, 금토일 주말에는 3,000원이란다. 세상에... 요즘 CGV나 메가박스의 영화 관람료를 생각하면 정말 거저다. 메가에서 산 아이스라떼가 2900원인데 90분 넘는 영화를 천원에 본다는 게 뭔가 균형이 틀어진 것처럼 살짝 불편했다. 생각보다 커피맛도 별로였다.


1.jpeg?type=w966


지난 주에 내가 선택한 영화는 <내 말 좀 들어줘>이다. 큰아들이 먼저 보고 엄마도 좋아할 것 같다며 권해줬다. 영국 드라마 장르로 러닝 타임은 97분, 2시간이 안되는 적당한 시간이다. 재미없는 영화가 너무 길어지면 시간이 아까운데(다행히 이번엔 돈은 아깝진 않을 것 같아 안심했다) 이 영화는 몰입해서 보기 딱 좋은, 1시간 30분 정도 길이다. 게다가 재미있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 가족, 이웃 이야기라 충분히 공감이 된다.


7.jpeg?type=w966
8.jpeg?type=w966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버거워


살면서 이런 생각을 안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누군가 곁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가도 함께 지내다보면 다 내맘 같지 않아 짜증나고 지칠 때가 많다. 주인공 팬지는 내 나이쯤 되는 중년의 흑인 여성이다. 영국의 꽤 좋은 집에서 산다. 남편은 작지만 개인 사업도 하고 있다. 걱정이라면 22살의 뚱뚱한 아들이다. 잠깐의 산책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아직 진로도 정하지 못한 채 집에만 있다. 자식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름 여유로운 중년으로 보인다. 그런데 팬지는 웃지 않는다. 항상 화난 표정에 심하다 싶을 정도의 말을 쉬지 않고 해댄다. 그래서 그녀는 어딜 가나 트러블 메이커이다.



2.jpeg?type=w966
3.jpeg?type=w966


말을 걸기도 힘든 그녀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고 말을 건네는 건 여동생이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다큰 두 딸과 함께 살고있는데 두 집안의 대조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팬지네 집은 식탁의 조명부터 어둡다. 남편과 아들은 묵묵히 식사만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팬지만 떠든다. 이야기의 소재는 모두 이웃들에 대한 불만과 비방이다. 그런 팬지의 말에 대해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쓸데 없는 말을 혼자 떠들 뿐이다.


4.jpeg?type=w966


여동생의 집은 팬지의 집 분위기와는 달리 밝고 유쾌하다. 세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딸에게 질문하고 딸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떠든다. 두 딸은 춤을 추면서도 엄마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가정에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5.jpeg?type=w966


영화 <내 말 좀 들어줘>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 같다.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속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털어놓지 못하고 필요없는 말들을 떠들어대는 사람들,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해서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아픔 없는 사람은 없다. 아들이 준비한 꽃 한 다발에 눈물을 쏟아대는 팬지도, 엄마의 눈치를 보며 주눅들어 있는 아들도, 항상 불평불만만을 늘어놓는 아내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도 모두 하나같이 안쓰럽다.


10.jpeg?type=w966
9.jpeg?type=w966


자기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다른 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마음을 살피고, 기꺼이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참 귀하고 아름답다. 나는 과연 우리 가족과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나, 그들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나 하는 의문과 반성이 들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도록 나만의 단단한 삶의 철학과 방식이 있어야 한다. 함께여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버겁지 않도록 관심과 존중, 배려가 필요하다.


6.jpeg?type=w966


단돈 천원에 이렇게 좋은 영화를 봐서 너무 황송한 날이었다. 앞으로 내 이야기는 좀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 곁에서 외롭지 않도록, 함께여서 행복할 수 있도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0대 가장 멋있는 남자, 브래드 피트 영화 <F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