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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19. 2021

중년 아줌마가 매일 스터디카페에 간다.

내 꿈과 마주하는, 나만의 작업실이 생겼다.

 학원 국어 강사가 나의 직업이다. 평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수업이 있고 금요일은 쉬는 날이다. 몇 주전  내 첫 책의 초고를 쓰기 위해 동네 스터디카페에 처음 갔었다. 학원 학생들에게 추천받은 곳이었다. 가족들에게 공표하고 그날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원고 작업을 할 테니 12시간 동안 '나를 찾지 마시오!'라고 선언했다.


 장소가 어디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 꿈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소중할 뿐이다. 그날 하루 집안일은 접어두고, 식구들 끼니는 각자에게 맡겨두고, 가족의 안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내 일만 생각하기로 했었다. 오롯이 나만 생각할 수 있는, 그 이기적인 시간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스터디카페라는 공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 주 토요일, 남편을 데리고 스터디카페에 갔다. 좋은 곳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으로 남편에게 스터디카페를 소개하고 싶었다. 회사 승진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남편은 집중이 잘 된다며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커피 머신은 물론 다양한 차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는 스터디카페가 우리 부부의 주말 데이트 코스가 될 것 같았다. 가난했던 남편과 나는 학생 때 돈이 없어 이용하지 못했던 독서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스터디카페를 나이 50이 되어 즐기고 있다. 


 남편 맞은 편에 앉아 나는 책 원고 수정을 하고, 남편은 내 맞은 편에 앉아 회사 업무 관련 책을 보며 시험 공부를 했다. 젊었을 때는 남편과 내가 참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함께 20년 넘게 살면서 우리가 참 잘 맞는 부부라는 생각을 스터디카페에서 새삼 하게 되었다. 주말에 함께 스터디카페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남편과 나의 일상이 참 평온했다. 서로의 일에 대한 존중, 각자의 시간에 대한 배려,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고 편안해지는 기분. 이렇게 살아도 참 좋겠다 싶었다. 


 1월 말에 출판사에 초고를 넘기고 목차를 정비하고 원고를 수정하는 중이다. 헤밍웨이가 말했다고 하던가.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더니 다시 읽어보는 나의 원고는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학원 수업으로 체력은 달리고 시간은 부족하지만 내 첫 책의 완성도를 위해 눈을 부릅뜨고 덤벼보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매주 하루이틀씩 스터디카페에 가다가 한 달 만에 스터디카페 150시간 시간권 결제를 하고 매일 오전 스터디카페에서 글을 쓴다. 


 이상하게 집에서의 작업은 몰입도가 떨어진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도 아들들 밥반찬이 걱정되어 주방에 가 있다가 수건이 모자란 것 같아 빨래를 돌리기도 하고 바닥에 먼지가 보여 청소기를 들기도 한다. 중요한 일이 있는데도 매일 하는 집안일이 불쑥 불쑥 나의 일을 방해한다. 많은 작가들이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하더니 그맘을 확실히 알겠다. 집과 직장 가까운 곳에 맘에 드는 나의 작업실이 생긴 셈이다. 


 스트레스를 풀 곳, 내 몸과 마음의 피신처는 많을수록 좋다. 몸이 찌뿌둥하면 요가 매트 위에서 몸을 늘리고 접고 뒤집는다. 마음이 답답하면 청량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기분이 처지면 재래 시장에 가서 목소리 큰 상인들에게 에너지를 얻는다. 이제 집중이 안 되면 외투 하나 걸치고 가방에 노트북과 책을 집어넣고 스터디카페로 달려와 앉으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냈을 때 마음은 한없이 관대해진다. 아침을 안 먹어도 스터디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몇 시간 열심히 작업하고 집에 가면 늦잠 자는 두 아들의 점심도 기분 좋게 챙겨줄 수 있다. 4시까지 학원 출근을 하고 밤 11시까지 6시간을 강의해야 하지만 오전 시간을 오롯이 날 위해 쓴 덕분에 기꺼이 돈벌이를 감당할 수 있다. 퇴근 후 피곤하고 허기지지만 다음날 아침 더 일찍 스터디카페에 나와 내 꿈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중년 아줌마가 매일 스터디카페에 간다. 입시를 앞둔 학생들 틈에서 엉덩이 힘을 자랑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집안일은 잠시 미뤄두고, 자식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배고픔도 잊은 채 오롯이 내 꿈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나에게 스터디카페는 억지로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곳이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다. 나는 요즘 스터디카페의 맛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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