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May 24. 2021

나이 50, 남편과 함께스터디카페에 간다

남편이 든든했다가 안쓰러웠다가...

주말에 나는 남편과 함께 스터디카페에 간다. 학생 때는 돈이 없어 이용하지 못했는데 나이 50이 되어 남편과 함께 즐기고 있다. 여유를 부려도 되는 토요일인데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요가로 스트레칭을 하고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셨다. 어쩐 일인지 남편도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다. 지난 주에 스터디카페에 가 본 이후로 집중이 잘 된다며 너무 좋아했던 남편에게 아침 일찍 스터디카페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흔쾌히 그러자 한다. 


휴일이라 늦잠을 잘 두 아들이 먹을 김밥을 싸 놓고 콩나물국도 끓여놨다. 김밥 꽁다리로 대충 아침을 먹고 9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커피 머신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뽑아 편안한 스터디카페 의자에 앉았다. 남편 뒷자리에 앉아 나는 책 원고 수정을 하고, 남편은 내 앞에 앉아 승진 시험 공부를 한다. 


젊었을 때는 남편과 내가 참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함께 20년 넘게 살면서 우리가 참 잘 맞는 부부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주말 아침 함께 스터디카페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남편과 나의 일상이 참 평온하고 감사하다. 서로의 일에 대한 존중, 각자의 시간에 대한 배려,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고 편안해지는 기분… 남편과 나, 이대로 참 좋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남편과 스터디카페에 갔다. 커피 한 잔 내려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에 몰두한다. 내 자리 앞에 남편이 앉아 있다. 남편의 뒷모습… 조금 슬프다. 항상 든든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날은 왠지 어깨가 처져 보이고 넓직했던 등도 좀 작아진 것 같았다. 


전날 토요일 저녁, 우리 네 식구는 삼겹살 파티를 했다. 동네 식자재 마트에서 세일하는 삼겹살을 사다 놓았다. 남편은 6시에 퇴근하는 나를 위해 상추를 씻고 큰아들은 고기를 굽고 작은아들은 수저를 놓았다. 소박한 밥상에서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웃고 떠들었다. 이렇게 살면 되지 싶었다.


당시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큰아들이었다. 군대를 가야 할지, 공부를 다시 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아들은 쉬고 있고 남편과 나는 아무일 없는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이니 지원해서 얼른 다녀오면 싶은데 아들은 아무것도 해 놓지 않은 채로 군대에 가는 게 선뜻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미술이 아닌 다른 진로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삼수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삼겹살 파티의 끝에 남편의 얼굴이 좀 어두워졌다. 큰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언제 끝날지 모를 자식 걱정에 좀 기운이 빠진 듯했다. 워낙 싫은 내색을 안 하는 사람이라 별일 없는 듯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는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의 눈빛은 흐려졌고 어깨는 늘어지고 숨소리는 고르지 못했다. 


잠자리에서 자꾸만 남편의 팔을 쓰다듬었다. 진짜 힘들다고 할까봐 두려워 '왜 그래?'라고 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남편에게 속으로 말했다. '내가 있잖아? 우리 같이 나눠서 짐 지면 돼. 혼자 너무 힘들어 하지마. 내가 더 애쓸게.' 진심으로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나라도 남편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너무 당연한 소망이 더욱 간절해졌다.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깬 남편을 향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굿모닝 인사를 건넸다. 스터디카페에 가자는 남편의 말에 집안일 얼른 마무리하고 바로 따라 나섰다. 그날만큼은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대로 기꺼이 따라 줄 생각이었다.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이 남자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터디카페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뒷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작가의 이전글 일을 그만두니 설레는 꿈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