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없는 행복을 기대하며...
나는 알코올 의존증이다. 나의 병은 현재 진행형이다. 30년 동안 술에 의지해 왔다. 술이 빠진 채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나에게 맛있는 음식은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였다. 봄이면 꽃향기에 먼저 취해 마시고, 여름이면 더워서 살얼음이 낀 시원한 술이 생각나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 후에 산밑에서 마시는 술이 일품이었다. 눈 내리는 겨울엔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 잔이 제격이다. 술과 함께 한 생활은 지루하지 않았다. 작은 실수는 술이 면죄부가 되어 주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시간이 약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주당으로 분류했고, 나는 그 부류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나이 50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심각하게 단주를 고민했다. 일하는 여자로 사는 동안엔 사회 생활하면서 어떻게 술을 안 마시냐고 나의 음주 생활을 합리화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술이 빠진 나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술을 마실 시간은 더 많아졌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지면서 자꾸만 술이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면서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게 3년, 4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알코올에 의존해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내가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즐거워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마셔줘야지 하며 부어라, 마셔라 흥청댔다. 축하할 일이 생기면 평소보다 더 많이 마셨고, 우울한 날엔 낮부터 더 오래 마셨다. 재취업한 후에는 ‘열심히 일한 자여, 마셔라’가 남편과 나의 건배사가 되었다. 퇴근 후 저녁 상에는 항상 술이 놓였고, 저녁 메뉴는 술안주를 겸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해야 했다. 동네 술집을 찾아 외식을 하는 날이 많아졌고, 단골 술집도 생겨서 집처럼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도 있었다.
2,30대에는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지만 40대에는 별탈없이 술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었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심한 숙취로 괴로워하는 일도 없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50이 되어서 난생처음 책을 출간하고 꽤 좋은 조건으로 이직까지 했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해도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병명을 붙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래 술에 의존해왔고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남에게 심하게 피해를 주는 않는데 굳이 술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버텨왔지만 내 첫 책의 제목처럼 ‘일을 그만두고 설레는 꿈’이 생긴 이후로 나는 호시탐탐 술과 이별한 기회를 노려왔다. 3년 전 다니엘 슈라이버의 책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읽으며 내가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건강했던 아빠가 2년의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엄마가 요양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면서 남편과 나의 노후와 건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스무 살 이후 30년 만에 술과의 이별을 결심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좀 다르게 살고 싶다. 가진 거라고는 건강한 몸밖에 없는데 지금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계속 찌는 살을 빼고 이제는 정말 가볍게 살고 싶다. 내 꿈을 향한 길에 아무리 생각해도 술은 백해무익이다. 이제 정말 술과 결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21년 상반기에는 책 출간, 하반기에는 단주 실천으로 의미 있는 한해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30년을 알코올 의존증으로 살았다. 부끄럽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은 그랬다. 이제 앞으로 남은 인생은 술에 기대지 않고 내 진심에 기대어 살고 싶다. 내 마음이 닿아 있는 곳으로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걷고 싶다. 난생처음 나이 50이 되고 올해가 3개월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렇게 나의 50대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오래된 습관, 술과 이별하는 중이다.
습관이 되어버린 것을 끊어내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심각한 상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병이 더 무서운 법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다. 결국 스스로 느끼고 결정하고 실천해가는 것이다. 나이 50이 된 올해 가을, 3개월도 남지 않은 어느 날, 이제 술을 안 마셔도 되지 않을까, 술 대신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술이 없는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그리고 그래, 한 번 해보지 하는 결심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올해 마지막날까지만 가 보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제 겨우 단주 20일을 넘겼다. 체중은 3kg 정도 빠졌지만 내가 느끼는 가벼움은 그 이상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술이 빠진 내 몸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술 대신 채워지는 것들로 바쁜 하루를 살아간다. 생각보다 잘 해내는 자신이 기특하고 술이 없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021년 12월 31일, 88일 간의 단주 성공을 축하하며 희망찬 2022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술 없는 행복을 기대하며 나의 단주 생활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