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와 글쓰기의 관계

평생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by 유쾌한 주용씨

평생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첫 책을 출간하고 그 다음 책은 어떤 소재로 쓸까를 고민했다. 책 한 권을 쓰고 이제 소원 풀었다며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의 한계가 느껴졌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내 일상 에세이가 지겨워졌다. 나처럼 평범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싶어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글쓰기에 게을러질까봐 글 쓰는 여자들의 모임에 끼어서 마감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글에 대한 내 열등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는 사람부터 책을 몇 권씩 출간한 사람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 글쓰기에 매달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의 경력, 독서량, 글에 대한 집착이 너무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과연 내가 계속 글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의심하며 술을 마셨다.

가끔 작가들 중에서 술에 의지해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나는 과연 그들이 작가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마땅히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글 쓰는 데에 문제가 생길 때 더 많은 술을 마셨기 때문에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이 아닐까? 결국 그것도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려는 일종의 회피이고 게으름인 것이다.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 쓸데없이 술에 취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마라.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P.85

술을 마실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술 마실 시간에 더 많이 읽고, 더 열심히 글을 써야 하는데 하면서 그 생각을 잊으려고 또 술을 마셨다. 오늘만 마시고 내일부터는 더 많이 읽고 더 잘 써야지 했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어쩌면 술을 끊는 괴로움보다 글을 쓰는 고통이 더할 지도 모른다. 술도 끊어내지 못하면서 무슨 글을 쓰겠다는 거냐고 글쓰기 선생님들이 호통을 쳤다. 다른 작가들보다 독서량은 적고 습작의 기간도 턱없이 짧다. 나이 50에 이제 겨우 첫 에세이를 출간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즐길 거 다 즐기고 하고 싶은 다 해 가면서 과연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시키려면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켜가며 집중적으로 몰두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은 제가 대하소설 세 편을 20년 동안 썼다는 사실과, 그 세월 동안 술을 한 번도 안 마셨다는 사실 같은 것을 믿을 수 없어 합니다. 그건 바로 시간을 단축하려고 했던 몸부림, 예, 몸부림의 결과였습니다.
우리 문인들, 술 한번 걸판지게 잘 마시지 않습니까. 저도 말술을 밤새워 마실 수 있는 정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시려면 하루가 없어집니다. 그 다음엔 숙취에 시달리며 또 하루가 흘러갑니다.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컨디션이 회복되려면 또 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그럼 술 한 번 마시고 사흘을 탕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술을 한 번도 안 마시고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을 써냈고, 그러고 보니 20년 세월이 흘러 있었습니다. 그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의식이 없습니다.
그 후로도 작품을 쓸 때는 더욱 집중하고 몰두하기 위해서 세상과 절연 상태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자꾸 늙어가기 때문에 더 치열해지지 않으면 작품마저 늙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정래의 시선』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글은 힘이 세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짱짱한 상대도 조용히 넘어뜨릴 수 있는 대단한 파워를 지녔다. 30년 세월 동안 내 몸의 일부와 같았던 술을 떼내는 거사에도 글은 동기 부여를 하고 실천 다짐를 굳히고 성취 후의 뿌듯함까지 미리 맛보게 한다. 단주 88일의 기록을 시작했다. 나에게 절실한 문제이자 꽤 신선한 글쓰기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애주가라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힘들어하는 중년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단주를 결심한 용기 있는 이들에게 나의 단주 성공기를 들려주고 싶다.


평생 글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단주를 결심했다. 이제 글쓰기의 괴로움을 술로 달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능력 부족에 대한 열등감을 피해 술 뒤로 숨지 않기로 했다. 술 마실 시간에 모든 에너지를 글에 쏟아붓는 노력을 해보고 싶다. 술이 빠진 나의 삶에 글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단주의 날들과 함께 나의 글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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