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 후 달라진 나의 하루
4년 전 일을 그만두고 나서부터 시작한 새벽 기상은 습관이 되어서 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벽에 혼자 깨어있는 기분, 동이 트는 하늘을 볼 때의 감동은 매일이 새롭다. 그런데 술을 과하게 마신 다음 날엔 새벽 기상이 힘들 뿐만 아니라 새벽에 일어나더라도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수가 없다. 숙취로 몸은 무겁고 머리는 맑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술을 마시지 않는, 어색한 저녁 시간을 보낸 후 맞이한 새벽은 달랐다. 술 마시고 습관처럼 대면한 새벽의 맛이 아니다. 새벽의 신선한 기운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동이 트기 전 거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술 취하지 않은 어젯밤에 떠올랐던 글쓰기 소재로 열심히 글을 쓴다. 그동안 술 때문에 놓쳐버린 생각들이 아쉽다. 술이 빠져나간 내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 내 마음에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글로 쏟아낸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술 마시는 시간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있고, 저 책도 읽을 수 있다. 한 달에 다섯 권쯤은 독서량이 늘 것 같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두 번째 책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밖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해서 아침 산책을 할 때 외투를 걸쳐야 한다. 평소에는 이어폰을 끼고 혼자 나섰던 산책길에 남편이 일주일에 3,4일씩 나를 따라 동행한다. 단주를 하며 건강 전도사가 된 나에게 자극을 받아서 남편도 아침마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아침 산책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새벽 기상 시간이 빨라진 덕분이기도 하고 맑은 정신으로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아침 산책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고 아침 산책까지 하고나면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기 일쑤였는데 단주와 함께 병행하고 있는 16:8 간헐적 단식을 의식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허기진 속을 달랜다. 어제 저녁을 6시 전에 끝냈으니 오늘 아침은 9시 이후에만 먹으면 된다. 전날 술을 마셨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술 마신 다음 날의 허기는 이성적으로 조절 불가능할 정도니까. 그런데 취하지 않은 내 머리는 똑똑하게 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괜찮아, 좀 더 참을 수 있어.’라며 먹는 행위가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이끈다. 결국 16시간의 공복을 지켜냈다.
탄수화물을 최소화한 아침 식사를 한다. 밥이나 면 대신 두부와 달걀 위주로 먹는다. 농산물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한보따리 사 온 채소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맘놓고 먹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끊고 있는데 당이 많은 음식을 다른 식재료로 대체하는 것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러다 정말 날씬한 여자로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행복한 상상에 혼자 쑥스럽게 웃기도 한다. 책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건강한 다이어트 방식을 실천하고 있으니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일주일에 3일 출근하는 직장은 나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주고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에는 고된 노동으로만 여겼던 일이 이제 더 이상 견뎌내는 일이 아닌 기꺼이 잘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 함께 읽고 말하고 쓰는 논술 수업은 읽고 쓰며 강연하는 삶을 살겠다는 나의 꿈과 맞닿아 있다. 직업은 이런 것이어야 했구나 하는 걸 나이 50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 든든한 어른이고 싶어서 열심히 일을 한다. 술 마시지 않는 시간에 논술 수업 연구를 더 많이 하게 되면서 직업적으로도 큰 포부를 갖게 되었다.
술을 마실 때에는 먹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기름 냄새 풍기는 전이 생각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매운 게 당기고, 날씨가 추워지면 따끈한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내 취향을 잘 아는 남편이 ‘오늘 술 한 잔 어때?’하며 전화해주길 저녁마다 기다렸다. 외식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겉치장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소박한 안주에 소주 한 잔 정도는 괜찮은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그렇게 소비한 외식비도 만만치 않다. 한 가정의 주부가 술을 안 마시면서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대부분이 되었다. 한두 번 외식할 돈으로 일주일 식단을 풍성하게 꾸린다.
저녁 9시나 10시만 되면 졸음이 쏟아진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바쁜 하루를 보냈으니 당연하다. 6시 전에 저녁 식사를 끝낸 덕분에 소화는 다 되었고 뱃속은 편하다. 하루의 마무리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 얼굴에 팩을 붙이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머리맡에 스탠드와 책이 있지만 오래 보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날 새벽을 마중나가는 기분으로 잠을 반긴다. 숙면에 들어간다.
성형 전후처럼 음주와 단주 전후로 나의 하루는 확 달라졌다. 하루 24시간이 길어졌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맑은 정신으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여유가 생겼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인다. 내일을 기대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