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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09. 2022

몇 번이나 울컥! 침묵이 주는 감동...

영화 <드리이브 마이 카> 리뷰

 영화 리뷰는 영화 자막이 올라가고 그 여운을 온전히 몸으로 흡수한 후 바로 커피 한 잔 마시며 써야 맛이다. 그런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본 지 벌써 2주나 지나버렸다. '좋았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때의 감상을 지금 다 옮겨 담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3시간 짜리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시간이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몇 자 적어보기로 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필요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큰아들이 6개월 전쯤부터 무척이나 기다렸던 영화다. 궁금한 마음에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읽었는데 리뷰도 쓰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책에 대한 느낌이 흐릿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 읽었다. 기대하는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 큰아들에게 원작 소설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했다. 


영화공간주안 <드라이브 마이 카> 포스터 앞에 선 큰아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미사키가 운전하는 사브처럼 조용하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연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픔도 살짝 꺼내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샘이 난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장편, 단편으로 계속 써낼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참 탐나는 능력이다. 하루키와 같은 대단한 이야기꾼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50페이지 정도 되는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가 3시간의 영상으로 어떻게 그려질지 생각하니 무척이나 설렜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보기 전에도 그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 영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렀었다. 물론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번에도 무라카미의 소설은, 그리고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드라이브 마이 카」의 문장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여자 없는 남자들》 p.37

"그건 병 같은 거예요, 가후쿠 씨. 생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죠.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도, 엄마가 나를 죽어라 들볶았던 것도, 모두 병이 한 짓이에요.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봤자 별거 안 나와요. 혼자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꿀꺽 삼키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연기를 한다."
"그럴 거예요. 많든 적든."
《여자 없는 남자들》p.59


 소설을 읽다보면 '그래, 내 마음이 이런 거였어' 하며 무릎을 칠 때가 있다. 사람의 심리를 언어로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는 순간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남녀 사이는 한 마디로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는, 아주 미묘하고 종합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특히 이성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대할 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닥칠 때 복잡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꿀꺽 삼키고 별거 아니라는 듯 연기하며 살아가라는 조언이 참 그럴 듯하다. 소설엔 작은 인생이 담겨 있다. 



가후쿠는 그 침묵에 감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마지막 문장이다.  좁은 차 안에서 서로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다 미사키는 아무 말도 없이 차를 운전하고 가후쿠는 그 침묵에 감사하며 생각에 잠긴다. 어색하지 않은, 편안한 침묵... 어떤 말보다 침묵이 주는 위안... 짧은 소설이 주는 여운이 꽤 오래 갔다.  


무라카미 하루키 「드라이브 마이 카」 독서 기록장


 소설에서는 12년 동안 탄 가후쿠의 차가 노란색 사브다. 영화에서는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주인공 가후쿠는  머릿 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생겼다. 여주인공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쁘지 않지만 무표정한 연기가 썩 잘 어울렸다.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참 독특한 조합이다. 새로운 건 소설이든 영화든 모두 흥미롭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힘들지 않은 상처는 없지만 견뎌내거나 극복하는 방법은 있다. 어떤 사람은 회피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헤집어내어 더 심하게 상처를 내는 경우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치료받지 못한 상처를 방치했었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만들어낸 아픔이라는 걸 깨닫고 그 상처를 덮을 수 있는 강력한 메디폼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서서히 아픔에서 벗어났다. 이제 그 상처를 소재 삼아 글을 쓸 정도로 여유도 생겼다. 미사키와 같은 친구는 없었지만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설에서는 없었던 인물, 우리나라 배우 박유림의 등장은 아주 적절했다. 수화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어떤 말보다 묵직하고 아름다웠다. 소설에서 느꼈던 침묵의 힘을 또 한 명의 인물이 가세해 전해주는 듯했다. 감독의 배우 캐스팅과 연출 감각에 박수를...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데 아주 선명하게 들리고, 울지 않는데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아주 여러 번 울컥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남아있는 상처마저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고 싶었다. 


  영화로 인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갔다. 큰아들은 2021년에 본 영화 중에 단연 1위라고 했다. 영화관 주차장에서 언니의, 공부 잘 하는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부를 잘 하지 못했던 큰아들과 샘이 많은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주차장을 나오면서 주차비 정산을 해 주시는 할아버지께 따뜻한 차 한 잔 사 드시라고 5,000원을 드렸다. 크리스마스 인사도 함께 전했다. 너무 좋은 영화를 봐서 따뜻해진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환하게 웃으시는 할아버지 인사는 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큰아들과 나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침묵이 아닌 수다로 풀었다. 그리고 오늘, 아들은 친구와 함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 번 더 보러 간단다. 


<드라이브 마이 카> 포스터


                                          추운 날씨 탓에 마음마저 얼어붙는 이 겨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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