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애주가에게 권하는 영화 <어나더 라운드>
술, 마셔야 할까? 끊어야 할까?
만국 공통 '술술' 명언
- 영화 <어나더 라운드> 포스터에서 -
죽은 후 백두성에 닿을 만한 돈을 남기더라도
생전의 한 잔 술만 못하다
백거이
술을 마셔도 죽는다.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몽고 격언
신은 물밖에 안 만들었는데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
빅토르 위고
3년 동안 술을 마셨더니 돈이 없어졌다.
3년 동안 술을 안 마셨는데도 돈은 없어졌다
중국 격언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
탈무드
30년 음주 생활 중 가장 긴, 100일 단주를 끝내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술을 안 마실 때보다 술을 마시고 있는 지금이 훨씬 즐겁고 재미있다. 100일 동안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말자는 결심을 지키기 위해 나의 의지력을 탈탈 털어 썼다. 기대처럼 체중 감량의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나 자신의 의지력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결이 다른 삶을 꿈꿔보기도 했다. 하지만… 술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고 결국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술을 찾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았다. 다행스러운 건 이제 더 이상 나의 음주 생활을 후회와 자책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단주 생활 끝에 술을 진정으로 즐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음주 초보자 큰아들과 30년 넘게 애주가로 살아온 엄마가 술에 관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함께 봤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영화가 술에 대한 긍정의 입장일지, 술을 끊어야 한다고 권유하는 내용일지가 궁금했는데 영화가 시작되면서 흥미로운 전개에 그냥 빨려들었고, 엔딩 씬에서는 일어나 함께 리듬을 타고 기립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감탄했다. 영화가 끝나고 적당히 취하고 싶어졌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젊음과 열정을 잃어버린 중년의 이야기다. 덴마크의 고등학교 교사인 40대 친구 네 명은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힘을 잃어버린 가장이다. 각자 조금씩 다른 환경에 놓여 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내 남편을 비롯해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축 처진 어깨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에게 술은 젊었을 때의 용기와 뜨거웠던 시절의 에너지를 다시 찾게 해 주는 묘약 같은 것이다. 엉뚱해 보이는 그들의 술에 관한 실험은 다시 한 번 젊음과 열정을 되찾고 싶은 중년의 몸부림 같아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부와 성공을 목표로 한다면 술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술을 안 마시는 날이 더해 갈수록 나 자신이 대견하게 여겨졌고 어쩌면 나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부자가 되거나 큰 성공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산다는 게 무미건조한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좀 기운빠졌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것이 가끔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코로나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현저히 줄어서인지 적당히 취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그 시절이 무척 그리워졌다.
술 마셔야 할까? 끊어야 할까?
나는 다시 술을 마신다. 어느 날은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지만 아주 가끔은 흠뻑 취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더 깊이 음미한다. 큰 목표를 세우고 흔들림 없이 똑바로 걸어가는 삶 대신 인생의 파도를 리듬 삼아 적당히 흔들리며 살기로 했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돋보이고,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인 영화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위안이 될 수 있다. 술을 안 마시는 사람도 한 잔쯤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지도 모른다. 혹시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술을 끊기로 결심할 지도…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약간만 취하면 인생은 축제다
- 영화 <어나더 라운드> 포스터에서 -
오늘처럼 비 내리는 휴일에 보면 더 좋을 영화다. 비와 휴일은 술과 잘 어울리니까. 특히 중년의 애주가들에게 권한다. 영화 볼 시간이 없다면 유튜브에서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엔딩을 찾아보거나 영화의 OST를 들으며 심장의 힘찬 박동을 느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