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을 지키기 위해 휴직합니다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잠시 멈춤

by 코랄코튼




표면적 휴직 사유는 난임 휴직, 하지만 친한 선생님들께는 결국 제 속마음인 '자기다움을 지키고 싶어 휴직해요.'라고 말하고 휴직을 신청하였어요. 휴직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학교 근무를 하고 왔어요. 이번 주는 계속 전체 근무이지만 저는 연가를 쓰고 근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연가를 쓰고 이제 정말 다 끝이다! 생각하려 했는데, 자리 정리만 5시간 넘게 해도 끝이 안 나고 서류 처리, 인수인계, 점심식사, 수업코칭.. 하루가 그냥 다 가버렸어요.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짐만 빨리 싸고 나와야지 했는데, 저도 모르게 익숙했던 오늘 학교에서의 8시간은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주었고, 동시에 미련으로 보냈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 오후가 돼서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인사해주시고, 따로 내선전화도 주시고 하셨습니다.

- 짐을 바리바리 싸는 저에게 뭐 그렇게 짐을 다 가져가냐고, 다시 돌아올 거 아니냐고 하시는 선생님

- 부디 꼭 좋아하는 거 하면서 푹 좀 쉬라고 하시는 선생님

-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하시는 선생님

- 평소 대화도 한 번 안 하면서 휴직 사유가 궁금해 친히 발걸음 하셔서 물어보시는 선생님

- 이제 개학부터 어떡하냐고 걱정하시는 선생님

- 학교가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이 안된다는 선생님

- 인사도 한 번 안 하는 선생님

- 평소와 다름없는 선생님

- 마지막이니 더 조언을 구하고 배우시는 선생님


참 다른 모습을 보여주신 선생님들. 다시 한번 선생님 한 분 한 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와의 관계는 어땠었구나, 앞으로 어떻게 지내시겠구나 등등 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정리되었습니다.


지난 학생들의 수행 평가지를 파쇄하는데 한 장 한 장 다시 새롭게 보이고, 학년별로의 특징도 다 보이더군요. 한 명 한 명 수행평가마다 빨간펜으로 피드백 적어준 걸 파쇄하면서 '내가 참 열심히 했구나.', '간직하고 싶었는데 이미 갈아버렸네.', '그때 얘가 그랬었지, 그런 애들이 일 년 사이에 이렇게 변했구나.', ' 그래 그때 얘가 그렇게 변화하고 성장했잖아.', '내 수업 재밌었겠다, 내 수업 참 좋은 수업이지.', '아니지.. 내 수업이 독특한만큼 어떤 학생에게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어떤 학생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을 거야. 다른 수업들도 마찬가지인 거처럼. 그냥 난 내 수업에 잘 맞는 학생들이 성장하고, 좋아하고 하는 반응을 확인한 것뿐이지. 그래.. 잠깐 또 겸손하지 못했네. 모든 학생에게 최대한 맞췄다 생각했는데 결국엔 내 스타일을 강요한 거였고, 보고 싶은 반응에만 내가 주목한 것도 있어.' 하면서 양가감정에 잠겼습니다. 파쇄기와 함께한 5시간은 정말 참 많은 깨달음의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업무 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온갖 종이 자료를 다 파쇄해버렸어요. 지금은 그냥 전산으로만 확인하고도 끝낼 수 있는 교육사업을 초임 때는 혼자 도맡아 떨면서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클리어 파일 양면에 가득히 형광펜 그어 가득 채웠었어요. 예산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으니 몇 번은 더 확인하였고, 혹시나 다음 교사에게 인수인계할 때 도움이 되라고 누가 봐도 알아보기 쉽게 정리를 해두었지요. 그 덕이였는지 그 사업의 적임자는 제가 되었고, 인수인계할 기회도 없이 저와 4년을 같이해왔어요. 그 교육사업에 고수가 된 지금 그때의 자료들을 다시 보니 오히려 번거로워진 쓰레기가 되었더라고요. 그땐 이런 자료 정리가 당연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정말 열심히 했었네, 아니 정말 진지하게 성실하게 제대로 일했다. 그때도 정말 잘했었다.' 하고 스스로의 노력에 칭찬을 해주었어요. 그때 얼마나 손 떨렸고 두려웠을까요? 지금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능률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은 '이런 자세에서 시작된 거구나.' 하며 제 스스로가 대견했습니다.


제가 6년간 지도해온 온 자율동아리를 그냥 무책임하게 두고 나올 수 없어서 학생들을 잘 맡아주실 수 있을 선생님께 지도를 부탁드렸고, 이와 관련하여 동아리 대표 학생과 통화를 했습니다. 저의 첫마디는 '선생님, 휴직해.'였고, 학생은 '네?'하고 당황하며 말을 잠시 이어가지 못했고, 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선생님도 계속 선생님답고 싶어서 잠깐 휴식이 필요하고, 이제는 2세도 가지려고 해.'라고 했더니 잠시 정적이 흐르더라고요. '왜 그래~' 했더니 '선생님이 없으시다는 걸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어요.'라고 하네요. 평소 내성적인 학생이었지만 항상 진정성 있게 활동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뛰어났던 학생이었고, 제가 정말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갔던 학생이었죠. 그만큼 이 학생에도 저는 의지할 수 있는 어느 정도는 허락된 존재였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 언제든 네가 원하면 연락하면 되니까~ 근데 너 이래 놓고 나 없어도 잘 지낼걸?' 했더니 '연락을 그렇게 못할 거 같은 게 문제예요. 제가 먼저 표현을 못할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는 그냥 이모티콘 하나 보내. 아니면 헉! 잘못 보냈어요!!라고 보내~ 선생님이 그 신호를 다 알아줄게'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어요. 이후로도 계속 대화를 나눴고, 그래도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안 학생은 너라며 다독였고, 졸업 전에는 꼭 다시 보기로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어요.


휴직을 계획하면서 제가 담임을 했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기다렸고, 솔직히 그 학생들 이후로는 제 발걸음이 아이들한테 붙잡히지 않게 하려고 후배들한테는 더 큰 정성을 쏟지 않았어요. 원래 수업이 아니어도, 우리 과가 아니어도.. 눈앞에 보이는 학생들의 현상에 대해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챙겨주고 하던 저였는데.. 그냥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수업에 한해서만 최선을 다했었어요. 그래서 전 미련이 없이 떠날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제 수업을 들었고 동아리도 같이 했던 학생으로부터 제 존재를 느끼게 되니까 동시에 마음이 슬퍼졌어요.


아, 얘들은 꼭 내가 밖에서라도 챙긴다. 졸업생들 중에서도 '얘는 내가 꼭 챙긴다.' 각오를 했던 학생들은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달려가고 친구처럼, 언니 누나처럼, 선생님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이제 그렇게 챙길 학생들이 끝났다 생각했는데 '아직 있구나!' 생각에 감사하고 기뻤어요.


이번이 마지막 출근이어야 했는데, 학생들과 수업으로 다 못 끝내서 방학 때까지도 진행했던 1인 1 독립출판 프로젝트의 결과물 책들이 이번 주에 학교로 배달이 올 예정이라 책들을 확인하고 해당 교과 선생님께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할 겸 다시 또 학교를 잠깐 들려야 했어요. 진로 선생님과 제가 교과수업에서 진행했던 진로 수업과 3학년 학생들의 진로 진학에 대해, 1, 2학년들의 진로 탐색에 대해, 진로 생기부 관련해서 열띤 대화를 나누다가 짐 빼는 것을 또 미뤘답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또 하루는 출근하게 되었어요. 뭔가 끝이 아닌 끝이 느껴져서 찝찝하게 되었지만 괜히 또 좋긴 했어요. 학생들에게 온라인 커뮤니티로 내일 책이 배송 올 예정인데, 교과 선생님께 전달 부탁드려놓겠다 했더니 왜 직접 주지 않으시냐고 댓글이 올라왔어요. 한데 그렇잖아요. 휴직을 하는 와중에 전년도 건으로 현년도 수업에 영향을 최대한 미치고 싶지 않았고, 조용히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있고 싶었어요. 현직 선생님들께 예의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또 제가 생각나서 저를 찾는 학생들에게 제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은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러다 보니 괜히 학생들에게 갑자기 이별을 선물하는 방식이 애매해져서 마지막이니까 저답게 이별 표현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너의 첫 독립출판을 축하해'라고 손글씨를 쓴 카드를 학생들 책 한 권 한 권에 끼워 넣어 놓고 올 거예요. 저는 원래 그런 선생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