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앞두고 마지막 전체 근무 날이었어요. 저는 연가를 쓴 상태인데, 마지막으로 학생들이랑 함께 했던 1인 1 독립출판 프로젝트 결과물이 택배로 도착해서 마지막 짐을 정리할 겸 학교를 갔어요. 앞전에 다 처리 못한 서류를 또 열심히 파쇄하였고, 이것도 갈아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뭔가 학교 체계가 부족함을 느꼈어요. 한 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저에게서 전문성의 부족함도 느꼈고요. 파쇄기는 정말 매력적인 기계예요. 집에 수동 파쇄기를 자꾸 샀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나 봐요. 가끔 집에서 자기 성찰을 하기 위해 자동 파쇄기를 하나 사야겠어요.
독립출판물을 퀵으로 배송받았고, 25명의 25가지 각기 다른 출판물을 받아보니 너무 뿌듯했어요. 저는 학생들의 개별적인 책을 만들게 해주고 싶었어서 한 권 한 권 사양도 다르게, 주제도 다르게 자율권을 주었고, 매번 다른 활동들을 할 때도 모든 학생들에게 개별화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인쇄소 사장님도 그러셨고, 이전에 저와 교류했던 담당자분들도 하나같이 제가 고생이 많데요. 참 교사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정말 필요 이상으로 힘들게 고생하고 있어서 그런가? 하고 물어보면,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봐주고, 쉽게 찍어낼 수 있는 걸 개별화해주시는 노력이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참 신기해요. 저는 그냥 모든 학생들이 각자 하고 싶은 말이 다르고, 각자 가진 특성도 다르니까 존중해서 당연히 다르게 해야 하고, 제가 그 다름을 표출할 수 있게 중간에서 다리를 놔줘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게 당연한 게 아니래요. 보통은 다 똑같이 틀에 맞추고, 약간의 차이만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아, 나도 대충 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저는 기뻤어요. '그래! 내가 좋아하고 당연하다 생각하는 게 학생들에게 이렇게 좋은 거라면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했죠.
독립출판 수업을 진행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지역의 독립서점 사장님께 책을 들고 찾아뵀어요. 사장님은 학생들 책을 흥미롭게 하나씩 다 봐주셨고, 그중에 5권 정도에 입고 의사를 표현해주셨어요. 뭔가 5권이라는 숫자만 생각하면 아쉽지만, '입고'라는 단어를 들으니 너무 뿌듯했어요. 저라고 해서 독립서점에 첫 책을 입고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없잖아요? 그리고 참 신기한 점이 주 2 시수 밖에 안 되는 실습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수업보다도 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집중해줬었어요. 학기말 평가가 끝났는데도 큰 태도 변화 없이 겨울방학까지도 투자하면서 책을 만들었어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힘을 엿볼 수 있던 순간들이 펼쳐졌고, '성적이 아닌 성장을 위한 움짐임'에 저 역시 같이 움직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 '그 학생이 이렇게 썼다고?' 할 정도로 글솜씨 수준이 아주 높더라고요. 특히 내성적인 학생들의 글이 정말 깊이 있고 완성도 있었어요.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는 게 글이구나.' 생각하였죠.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지만 솔직히 너무 감동적이었답니다. 이 책들을 직접 만나 전해주지 못한다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책 안에 축하 카드를 적어 뒀으니 제 마음을 전달했다고 생각하려고요. 제가 학생들의 책을 보고 감명 깊었던 것처럼 학생들도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의 그 멋진 목소리를 좀 더 용기 내서 표현하는 학생들이 되길 바라고요.
정말로 이제는 학교 짐도 다 정리했고, 파쇄도 다 했고, 학생들과 선생님과 이별 준비도 다 했고, 이제 미련 없이 휴직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말로 표현하면 다들 떠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휴직은 이별 준비를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봐요. 하지만 저는 오지랖이 넓다 보니까 딱 깔끔하게 끝을 내야 정말 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절 위한 휴직 시간에 일을 위해 쓰기 싫었어요.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를 타고 교문을 빠져나와 처음 걸린 신호에서 카톡방을 나갔어요. 8개는 넘는 단체 카톡방을 미련 없이, 고민 없이 다 나왔어요. 와, 내가 이렇게 카톡방을 나갈 일도 생기는구나! 이렇게 많은 카톡방에 속해 있었구나! 이제 쉽게 나에게 일을 핑계로 연락하는 사람은 없겠구나! 후련하더라고요. 무엇보다 학교 현장 소식을 접하지 않을 테니, 제 오지랖도 얌전해지겠죠? 한동안 좀 궁금하겠지만 그만큼 저의 자기다움과 더 대화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