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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랄코튼 Mar 21. 2022

영화 The Class(2009) 분석 - 2

영화 대사를 바탕으로 

00:47:56~00:49:07

교사와 학생의 신뢰 편

존경심, 청소년들은 그들을 둘러싼 위협과 두려움 때문에
서서히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 어른이라면.
영화에서 학생 쿰바는 주인공 교사와의 부딪힘에서 '무례함'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낸다. 학생다운 어설픔도 있지만 학생답게 솔직한 표현을 용기 있게 편지로 건넨다. 그 안에는 '먼저,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존경이란 본디 쌍방향이어야 한다.'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에 이어 '예를 들어, 내가 선생님이 신경질적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선생님은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하나? 난 항상 선생님을 존경했는데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써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이 나한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걸 알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다.'라고 깊은 울림을 표한다. 이는 깊은 소통이자 내면의 소통을 못하고 있는 교사 역시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실망하면서 표현하는 말 중 '난 항상 널 사랑하고 아꼈는데, 왜 내 말을 듣지 않니?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네가 선생님을 싫어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 있는 거처럼 말이다. 

  '이제부터 교실 뒤쪽에 앉아서 더 이상의 충돌을 피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거리를 두게 된다.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조용히 멀어져 간다. 하지만 '당신이 날 부르기 전까지.'라는 표현처럼 학생들은 항상 기다린다. 선생님이 자신을 알아봐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존경심을 받아주고, 자신을 존중해줄 것임을. '무례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자꾸 날 자극하니까 어쩔 수 없다. 내가 무례해 보인다는 말을 안 할 때까지 나도 그를 쳐다보지 않을 거다.' 이 표현을 다시 해석하자면, 내가 더 노력할 방법도 그 힘도 이 이상은 모르겠고 이것이 나의 최선이고 진심이다. 난 선생님을 믿고 기다릴 뿐이고 제발 먼저 와주길 바란다는 표현으로 들린다.






01:17:45~01:23:30

낙인 편

선생님한테 하는 얘기 아녜요. 

  교사로서 재직할 때 가장 경계하고 경계했던 것이 '낙인'이었다. 낙인은 문제아로 찍는 것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갖는 학생에 대한 부정적 편견 역시 포함된다. 이는 자동적으로 태도에서도, 말투에서도, 학생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다 묻어 나오게 된다. 나도 모르게 갖는 선입견, 편견, 낙인은 한 학생의 가능성을 막아버릴 수 있으며, 기회를 박탈시킬 수 있으며, 탈선을 유도할 수 있으며, 자존감을 깎을 수 있고, 실패 경험을 누적시켜줄 수 있는 아주 엄청난 위험성을 지닌다. 
  누구나 그렇다. 자신이 분노하고 용납이 안 되는 무언가의 자극제가 있다. 사람마다 다른 그 자극제는 우리 각자의 경험에서 누적되며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자극에 격한 반응을 하며 감정까지 휘말리게 되어도 합리화를 하기 쉽다. 왜냐하면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극제를 마주하게 되면 이불 킥으로 마무리를 짓거나, 괜한 찝찝함 또는 후회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리고 반복될 때마다 난 원래 그래! 에서 난 왜 이런가.. 하며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자극제에 대해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노력을 통해 그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교사는 '무례함'에 대하여 노이로제가 있다. 당연히 교사니까 그러겠지! 싶겠지만 모든 교사가 학생들의 무례한 행동에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진 않는다. '선생님한테 하는 얘기 아녜요.'라는 말에 '난 너한테 얘기하는 거야.'라는 것은 옳은 의사소통 표현이 아니다. 권위를 지키기 위한 공격적인 표현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존경을 받고, 존대를 받아야 한다 생각하는 것처럼 그 이전에 교사는 학생의 무례함을 바로 잡아줄 이유가 충분히 있다. 학생은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자신의 미숙함에서 비롯되는 무례함을 꾸짖어 달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표현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례함에 자극을 받아 자기 보호를 위해 이성을 잃은 교사의 무책임한 발언에 학급 분위기는 충격으로 휩싸였고, 그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격한 학생의 분노 행동을 도발하게 된다.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시선을 의식하고 교사는 학생을 더욱 몰아세운다. 교감실로 가는 길에 운동화 끈을 묶는 것뿐인 행동에서 '낙인'이 찍힌 학생을 보는 교사는 '딴짓하는 거 지겹지도 않나'라고 치부해버린다. 낙인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내가 본 그것이 나쁜 행동이었다고 판단한 것을 착각 또는 나만의 생각으로 인식하기보다 윤리적으로, 인간적으로 맞다는 것을 고집하고 증명해 보이려고 계속 그러한 문제가 있음으로 강조하고 강요하며 만들어버리게 되고, 타인들을 동요시키고 결국 당사자가 수긍하게 만들어버린다.

  교감에게 불려 간 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시작해놓고 '어쩐 일로 선생님이 수업 중에 여기까지 오셔야만 했지?'라고 다그친다. 이 순간 학생은 역시나 하며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학교를 대표하고 있는 사람으로 '교감'의 자리가 또 한 번 학생이 요청하는 도움의 손을 내밀기도 전에 거절했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교사', '어른'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임에도 말이다. 이는 한 아이의 성장과 꿈과 미래를 누구보다 나서서 책임감 있게 짓밟는 행동과 유사하다.





01:31:48~01:47:57

교사 권위 퇴색 편


이걸 잊지 마라. 난 선생으로서 해야 할 말이 있고,
 학생이 그걸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지, 그렇고 말고.

 

   교사가 권위 행세로 경솔함이 탈로 남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공격이 시작된다.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에 앞서 그렇게 정당히 내세우던 교사의 지위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한 인간의 비참한 모습이 비칠 뿐이다. '니들이 그렇게 자지러지며 웃는 게 꼭 길거리 나가요 같았다.'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과거 학교 현장에서는 더욱더 입에 담지 못할 표현들로 학생들을 찍어 누르려했다. '예의는 갖출만하면 갖출 테니'라는 표현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교사들은 항상 말한다, 두 쪽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하더라. 한쪽만 보면 꼭 자기는 피해자일 뿐이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동일한 입장이 되어보는 경우 경위서 내용에는 자신의 가해 내용은 빠지게 된다. 권위를 지켜야 하고, 난 정당했다며 합리화하기 바쁘다. 나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한 아이를 나락으로 보내버리는 것보다 더욱 가치로운 것이라고 이기적이고 잔인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결정이 나기 전에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교사의 말에 이미 판단을 끝났다는 것을 학생들은 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덮어 포장하여 말하면 학생들이 모를 거라 생각한다. 

  '네가 부상당한 당사자라는 걸 잊지 마라.'라는 표현에서 공범을 만드는 치졸함이 느껴진다. '일부러 그런 게 아녜요. 걔 가방에 쇠붙이가 붙어있었거든요.'라고 말할 정도로 학생도 인지하는 것을 교사가 전혀 인지하지 못할 리가 있을까. 자신이 만든 자신의 위기에 색안경으로 눈이 더욱 멀어가다 보니 부정해야 하고 부정해야 할 뿐인 것이다. '선생님, 화는 누구나 낼 수 있잖아요.'라는 말을 부정할 수 있는가. 본인 역시 지위와 역할도 잊은 채, 감정에 지배되어 이성을 잃은 판단과 행동을 하며 화를 내었지만 자신은 정당하고 자신이 타깃으로 삼은 약자는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걸 잊지 마라. 난 선생으로서 해야 할 말이 있고, 학생이 그걸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지, 그렇고 말고.'라는 어른이 할 수 있는 말 중 이보다 더 비열한 표현이 더 있을까. '우리 모두 냉정을 잃지 말자.' 자신이 엎질러 놓은 물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무지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시작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 소명할 기회는 분명히 있잖아요?', '막상 위원회에 불려 가면 아무 말도 못 하게 되죠. 겁먹어서 얼어버리거든요.'이러한 조언을 듣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면서도 자신이 망가뜨린 권위를 약자인 학생에게 덧씌워 밀고 나가며 벽 뒤에 숨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학생이 벌 받으면 집에 돌아가는 즉시 부모의 체벌에 시달린다는 걸 안다고 해서 교사가 벌을 안 줄 수는 없잖아요. 부모의 체벌을 이미 알고 있다 해도 교사가 처벌을 중단할 이유는 못되죠. 정도를 넘어선 경우에는요. 안 그러면 학생이 교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요.'(이 여자.. 아오) 정도를 넘어선 경우를 떠나서 부모님의 체벌에 '시달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 따른 조치는 필요하다. 학교는 학부모와의 소통도 중요히 해야 하며, 교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집안일은 집안일이고, 우린 모르는 일이다라고 넘겨짚는 것은 어느 곳에도 이 아이를 받아줄 곳은 없으며 같은 어른으로서 똑같이 편견과 낙인으로 아이를 낭떠러지로 밀어야 한다는 생각과 같다. 학생의 잘못에 경중을 두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학생에게 행하는 체벌이 상황에 맞는 결정인 건지, 그 경중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 먼저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학생이 가정에서 체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고려하는 이유는 그 학생이 그만한 체벌을 받을 이유가 없으며, 그 이유는 그 학생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교사의 잘못을 모두가 눈감아주고 있음에서 풀리지 않는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니 어이가 없긴 해요. 하지만 학교가 내쫓는 게 아니라 그 녀석 스스로 일탈한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학생의 손을 잡아줄 교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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