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불편한 상황이지만
어깨 수술 전날 밤 12시부터 금식이었다.
어차피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고, 목마름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내 소변을 비워야 하는 S에게 미안해서 물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이 즈음 내가 어느 정도 안정권이라 생각했는지, S가 교통사고가 내 과실이라는 걸 알려줬던 것 같다.
난 그전까지도 내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헷갈려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미쳤지...' 했었다.
어깨 수술은 상체 마취를 하는 거여서 쇄골 있는 부분에 마취를 한다. 아예 안 아프진 않지만 척추에 비하면 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어깨뼈는 완전 으스러져서 인공관절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었다.
정확한 건 까봐야 (?) 알겠지만 일단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라고.
나의 두 번째 수술이었다.
똑같이 깨끗하고 밝은 방, 몸을 아예 쓸 수 없는 나 때문에 똑같이 곤란해하던 수술실 선생님들, 이때까지만 해도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아서, 난 이번 수술에 죽을 수 있음 죽기를 바랐었다.
첫 수술을 하고 나서 겪었던 고통과 앞으로의 치료과정, 벌어야 할 병원비를 생각하니 삶이 그닥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무리해서 내가 당겨 수술해 달라고 졸랐으니, 의사 선생님도 내가 죽더라도 죄책감은 적겠지...
하지만 나의 실수로 괜한 사고에 휘말린 트럭 운전사 아저씨가 떠올랐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내가 죽어버리면 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트라우마가 되지 않으려나, 법적으로 아저씨한테 피해가 가진 않겠지? 나 하나 죽겠다는데 뭐가 이렇게 걸리는 게 많은 거지...
이러저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차라리 내 삶을 당장 끝내주오 싶은 엑스레이를 찍고, 살아서 병실에 도착했다.
세 번째 수술은 거의 2주 뒤로 일정이 잡혀있었다.
사고당시 종아리뼈가 살을 뚫고 나와있었기 때문에, 외부에 철 구조물들로 고정을 해둔 상태였고, 첫 수술 후 2주가 지나야 봉합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건 조르거나 할 수 없었다. 기다렸어야 했다.
세 번째 수술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정말 길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았다.
난 피 빠지는 주머니를 두 개 달고, 심장에 바이탈 연결선, 손가락에 집게로 된 선, 소변주머니, 다리에는 철로 된 고정장치, 오른손은 붕대와 외부고정장치, 대퇴골엔 엄청나게 긴 상처와 거즈 사이로 계속 흐르는 진물들...
씻지도 못해서 머리는 기름져가고, 몸도 씻지 못하고, 양치도 못하고, 손과 얼굴은 물티슈로 겨우 닦아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계속되는 수혈과 채혈, 항생제, 진통제에 수혈로도 무슨 수치가 오르지 않아 이상한 끈적거리는 녹색 액체약과, 혈청도 맞아야 했다.
그동안 응가는 장 한 구석에 한 알씩, 한 알씩, 차곡차곡 모아 보관하고 있었다.
맨 정신에 첫 드레싱을 하게 되는 날, 나는 몸에 계속 붙어있던 바이탈이 너무 불편해서 떼어달라고 졸랐고, 결국 떼주셨다. 수술하는 동안 수면마취 되어있을 때 드레싱을 했었어서, 나는 맨 정신에 하게 될 이 첫 드레싱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거즈를 뜯어내는데 살이 쥐어 뜯기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아팠다. 이를 악 물고 눈물을 계속 흘리며 드레싱을 받았다. 대퇴골 쪽은 골반 부분이라 내가 몸을 살짝이라도 뒤틀어야 소독을 할 수가 있었는데, 움직이지 않는 몸을 왼손으로 억지로 잡아당겨 살짝이라도 들고 있어야 했다. 오른팔에는 수술자국보다 사고당시 쓸려서 난 상처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 부분이 더 아팠다. 그건 작은 상처여서, 드레싱 할 때는 그냥 큰 수술자국 위주로만 했기 때문에, 작은 상처 부위에 거즈의 접착면이 붙게 되었는데, 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 작은 상처가 계속 아팠고, 거즈를 떼기라도 하면 난 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철 덩어리가 달려있는 종아리... 내 힘으론 절대 들 수 없었고, S가 드레싱 때마다 도와줬어야 했다. 문제는 종아리 부분을 소독하려고 들면, 터진 대퇴골에도 자극이 가서 골반이 아팠다. 계속 울고 힘들어하는 나 때문에, 드레싱 해주시는 선생님도 힘들어하셨다. 3군데를 해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렸고, 나는 그래서 드레싱을 제일 마지막에 받거나 제일 먼저 받거나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지를 못하니 몇 날 며칠을 계속 똑같은 수술복을 입고 있었는데, 수술복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 부직포 같은 재질이어서 답답하고 더웠다. 게다가 사고 당시에 트럭의 헤드라이트 유리 조각 부스러기들이 몸 곳곳에 박혀있어서 난 그 유리 조각들을 떼어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괴로운 와중에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면 좋은 생각을 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 한국에서 치료받게 되는 게 어디야... 의료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나라라면, 병실에서 아이패드로 미드 보는 거는커녕, 에어컨도 안될 텐데...'
그러나 이렇게 힘을 내려하다가도, 끊임없는 고통에 몸이 지치면 다 때려치우고 그냥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S가 옆에서 계속 좋은말들을 해주고 웃겨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못 넘길 수도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