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슈토 안 깨치면
영어 애써도 말짱 도루묵이거든 끙——.
알아듣게 반복 타이르고 전화를 끊을 땐 토욜 오후 할 일이 없어서 오지랖을 넓히는 중이라고 동료교사가 봤으면 눈흘길 터였다. 나는 휴머니스트 차원까진 아니라도 활인적덕(사람을 살려 덕을 쌓는다) 하는 셈 쳤다. 언니가 까막눈에서 벗어나도록 동생인 니가 옆에서 좀 도와주라고 당부했더니 알았다고 해 볼란다고, 전에 해보긴 했는데 언니가 진득허니 못 버텼다고 했다.
여자는 학교에 다녀봤자 쓸모없다 하신 할아비 뜻에 따라 그 아비는 졸졸 매었던 모양이다. 할아비 돌아가시자 바로 아래 여동생은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어릴 적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Z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을 꼽는다. 고사리 같은 손에 단것 살 돈을 쥐어 주면 그렇게 신이 났더란다. 밝고 명랑하게 자란 맏손녀는 의도치 않게 의기소침할 때가 있다. 전화를 받으면 몇 마디 하다가 옆에 있는 동생에게 건네주곤 가만히 듣고 있다. 함께 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통역 역할을 해주곤 한다. 열 살 어린 다른 여동생의 기억(?)으로는 할아버지가 아니고 탈레반의 여성 교육차별로 큰 언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망할 놈의 탈레반 씽——.
모국어가 뒷받침이 되어야 외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읽고 쓰는 언어습득이 선행되어 있지 않으면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래지 않다. 단어와 단어를 이어 붙이는 데 필요한 매듭과 실마리를 교실에서 보고 들으며 익혀 가는데 Z에게는 그 과정이 가로막힌 장벽을 허물고 나아가는 셈이다. 모로 가다 모국어로 빠꾸다. 모국어 파슈토를 일단 읽고 써보자는 전략을 세워봤다. 영어보다 어려울까 끙——.
Z, 그녀 뇌세포의 회로를 확장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두뇌 나이가 일곱 살로 돌아가지 않는 한? 스물두 살 두뇌도 말랑할 것 같긴 한데.. Z양, 배움은 일차원적인 반면 주변 정리는 다차원적이다. 새로 온 반친구는 옆에서 단짝처럼 챙기고, 누구는 또 결석이네, 누구는 오늘 땡땡이네.. 두뇌가 다망하다. 눈치 안 보는 입바른 소리로 주변인들 속을 시원케 한다. 쓰기 싫으니 복사해 나눠주셔, 교실서 먹지 마라 해놓고 선생은 먹고 있네, 쉬는 시간 됐는디.., 우리 반 수준이 높아, 저 반 수준이 더 높아? (도토리 키재기)등 듣고 흘릴 수 없는 돌직구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
무지식이 상팔자라고 Z양에게는 영어 빼고 다른 고민은 없어 보인다(단순한 나의 착각일지도). 불타는 향학열 속에 고대했던 쉬는 시간은 가방 속 챙겨 온 주전부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마실 나온 동네 아낙이 된다. 취미이자 특기인 요리에는 자부심과 일가견이 있다. 지난 오월 해안 공원(coastal park)으로 소풍 간 날은 다른 세 명과 미리 합심해 우리 반 먹일 먹거리를 한 보따리 장만해 왔더랬다. 대절한 버스는 와서 기다리는데 늦장 부리는 네 명 앞에서, 속 모르는 선생은 모닝티는 거기서 준다고 기운 빨리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려 해안가로 향하는데 달인 차를 주전자채로 들고 나르는 Z양을 목격하고는 앞서가는 남학생에 바통처리를 해주었다. 정성껏 만들어 온 아프간 피자와 팔라오를 다른 반 학생들까지 먹이고는 활동 개시. 해안가 숲을 도는데 Z양은 음식 담았던 찬합을 쇼핑백에 들고 다녔던 모양이다. 소풍날 벌서는 걸까. 옆에 가는 클라스메이트에 SOS하는 장면이 멀찍이서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번 달 로즈가든에 놀러 갈 때는, 먹거리는 Z양에 일임하자는 제안을 농담조로 했더니 재료 살 돈은 줘야 될 것 아니냐고 맞받아친다. 소풍 당일, 직접 튀긴 치킨 파코라와 셀러리 처트니소스에 아프간식으로 구색을 맞춰 밀크티와 블랙티를 보온병에 담아 왔으니, 아침에 한 짐 지고 버스 타는 모습이 어땠을까 상상이 가능했다. 스물 갓 넘긴 나이, 내 몸 단장하기도 바쁠 나이에 집에서는 여덟 동생 건사하고 학교서는 교실 친구들 해먹이는 품이 자못 넉넉하고 쏠쏠하다. 자기를 표현하는 소통 방식으로 이해하고, 나눌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어여삐 여겨 부담 없이 받아주기로 했다.
일 년을 한 교실에서 지지고 볶고 나서야 그녀 존재감인지를 살짝 알게 되었다. Z양이 즐겨 앉는 맨 앞줄 자리가 안 보고도 대강 훑고도 허전할 때가 있다. 가끔 지각하거나 결석할 때면 텍스트를 보내기도 하지만 교실이 비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교실이 빈 거라기보다는 내 안이 빈 거였겠지. 어느새 그녀는 나의 하루를 채워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샐리 루니 소설 Normal People의 텍스트를 가지고도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는 레벨의 학생들과는 교감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에겐 있었다. Normal하지 않아서? 초록은 동색이라서? 타고난 단순함이 닮긴 했지.. 아무렴 어쩌랴. 그녀도 내 수업방식이 미세한 그녀의 지성을 자극한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었다. 우리는 이제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Z양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멋진 약혼남이 있다. 고운 마음씨와 요리솜씨로 사랑받을 테지만 영어로 파슈토어로 맞장뜰 수 있는 예쁜 아내, 당당한 엄마가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오늘부터 요리 말고 글자 써라잉?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