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1970년대 말 충청도로 간 시간여행이 가난과 차별과 시달림에 찌든 농촌임에도 행복했던 것은 이문구의 언어에 있었다. 그의 토속어와 비속어는 그가 성장한 그 시절의 일상언어였는지, 그가 얼마간 공들여 불러들인 순우리말이었는지 속으로 물음표를 던져가며 그 상황에서는, 그 면전에서는, 꼭 그렇게 응수했을법한 그들의 정서가 내게 남다른 울림을 줬기에 이 소설을 읽는 감회란, 터지는 웃음이란, 쓰린 심정이란, 내 알량한 필치로는 어림잡지 못하겠다. 나는 이런 정서 한 편으로도 이루어진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의 언어를 나도 합심해서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는 그 동네서 그리 가깝지 않은 전라도 출신이다. 그전엔 충청도 사투리가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이문구 소설을 읽자 하니 이문구 소설어 사전이라는 책도 함께 주문해야 했다. 이건 외국어보다 모르는 낱말들이 천지였는데 나를 붙든 건 전라도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꼬름한 문장 뉘앙스와 그것이 불러오는 진득한 촌 정서였다. 책을 열면 어릴 적 내 작은 창문 아래에서 서성이는 내가 보였다. 문학이 불러오는 이런 정서를 충청이나 전라가 아닌 타 지역 사람들이 체감하는지도 궁금했다. 내가 운이 좋은 건 지도 몰랐다. 이문구는 강한 얼굴선만큼이나 입이 걸었다. 열매 달 감나무에 주렁주렁 여문 홍시처럼 그가 차린 말 잔치는 한정없이 풍성하다. 문장의 리듬이 감정 자체이고 감정이 리듬을 타게 한다. 동네 자잘한 스캔들을 하나씩 캐내는 재미가 오져 나름 아껴가며 읽었다. 우리 동네는 아홉 편의 연작 단편집이다. 아홉 개 성씨를 가진 가장과 그 가족들을 중심으로 안팎으로 일이 난다. 그들은 김승두 리낙천 최진기 정승화 류상범 강만성 장일두 조태갑 (김봉모) 황선주. 어디서 들어봄직한 실명 같은 이름 석자에 친근감부터 일 것이다. 마냥 구리고 마냥 분하고 마냥 웃겨도 픽션 아닌 팩트 같다.
다 웂어(없어) 비단이여. 시간 웂구 인건비 웂구… 도섭 아버지두 일웂어보셔. 쇼핑빽에 정구채 꽂어 메구 근강(건강) 찾어나슬 테니. 자배기(질그릇) 구정물에 설겆이허는 년 따루 있구, 펭긴표 씽크대루 개수통(설거지통)허는 년 따루 있간디.
___우리 동네 강씨
아무것두 웂는 동네서 라이칸지 야시칸지, 카메라에 녹음기에 우황청심환까지 고루 갈어줬으면 그만만해두 과만(과분)허잖여? 동네 사람 쳐다보구 칼라테레비에 카페트할래(까지) 가져왔다니, 게는 대관절 무슨 정신으루 사는 사람이여? 지사(제사)지낼 때 아니면 있는 돗자리두 깔아볼 저를(겨를)이 웂는 사람덜더러 아리비아(아라비아) 카페트를 깔어라 그거여?
___우리 동네 조씨
챙근(창근) 엄니는… 말을 귀루(귀로) 안 듣구 입으로 들유? 수재민이라구 홋것(홋껍대기)만 입으라는 벱(법)이 워디 있슈.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한 끄니(끼니)래두 끓이라구 추렴(여럿이 얼마씩 돈이나 물건을 나누어 내는 일)해 준 양석(양식) 팔어 빤쓰버텀 사입으야 쓰겄수? 게, 다 나두 생각이 있어 내논 겐디 뎁세(도리어) 나를 트집헐류? 말에 도장웂다구 함부로 입방아찧지 마유. 이게 왜 흔 게유(헌것이유). 남대문표는 삼 년을 입어두 새물내(빨래하여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만 납디다유. 공중(공연히) 넘 우세스럽게시리 이유삼지 말구 얼릉 딴 디나 가보유
___우리 동네 황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