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ar at VSL
이것 좀 봐요 너무 웃겨.
다 했어요 이제 뭐해요?
이거 끝나면 뭐해요?
알아요 몇번이나 가봤어요.
이거 하나 줄게요 일본 초코렛이에요.
12시에 가방 싸야해요 적어도 십분 전에는.
이제 가방 싸야돼요.
이거 뭐야 싫다 이거.
의자는 다 올려야 해요.
함께 교문까지 가는 거에요.
울 아빠랑 면담해야죠.
토요일 아침 일어반. 이번주부터 3/4/5학년 반을 맡게 되었다. 다른 캠퍼스,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다.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생각나는 말을 몽땅 쏟아내는 아이가 있었다. 책상 위는 아이가 자율적으로 열거한 한자학습용 책들, 상처용 밴드들이 정돈된 듯 흐트러져 있었다. 책 속에 들어있는 만화를 보여주며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따라와주다가 조금 따분해하는 나머지 아이들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언어수준은 제각각이었고 수업 준비며 교실 환경도 여의치 않아 속으론 진땀을 뺐다. 베테랑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쩔쩔매는 모양이란.
하나 먹어봐요. 하나만요. 하며 아이는 엄마가 정성껏 싸준듯한 조그만 스낵박스를 내밀었다. 일본 거랍니다. 아이 나름 대단한 호의였다. 중간 쉬는 시간까지 아이가 보인 호감은 수업 종료가 가까워지며 예기치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나름 여러번 상기시켰음에도 교사는 가방을 싸고 집에 갈 준비를 서둘러 해주지 않았다. 플로어에 둘러앉아 반친구들 이름을 기억해내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이 지연됐고 아이는 혼자서 자기 좌석과 플로어를 오가다 결국 두눈이 좌절감으로 붉어졌다. 당황한 교사가 아이에게 친구들 이름이 뭔지 여러번 기회를 줬음에도 아이는 한명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말하기 쓰기 언어습득은 남달리 빠른 아이였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혼자 몰두할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새로운 교실에서 하는 첫 수업은 생각보다 지치게해서 누구보다 일찍 가방을 싸고 싶은 사람은 그녀 자신이었으리라. 수업 세시간 동안 그녀는 아이의 언어 습득방식을 효과적으로 배웠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지런함이었다. 끊임없이 말하기 쓰기 시간 챙김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 안의 모든 생각들이 아이의 입을 통해 술술 표현된것만 같았다.
애들아 재밌지 이거?
다음은 뭐할까 어떤 순서로 하지?
그 다음은.
이것 좀 들어봐. 함께 할수 있겠어?
지금 몇시지.
드디어 끝날 시간이네.
의자는 무거워 안 올려도 돼.
그럼 잘가 여기서 안녕.
그 아이에겐 계속해서 과제를 주는 방식으로 했어요. 전 교사의 노하우였다. 그래야 말수가 줄으니까. 집에서 가져온 이런 저런 소집품을 다시 챙겨 넣으려면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미리서 가방을 싸고 싶어하죠. 안 그러면 패닉해요.
샘, 중등보다 초등이 힘드네요.. 초등 교실에선 아이들 다루는게 더 중요해요. 전 직장 동료의 메시지였다. 아이들은 차분한데 좀 따분해해서요.. (따분한 걸 채우는 건 교사의 몫이죠.)
그녀에겐 수업이 따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그 아이가 수업의 절반은 이끌어준 셈이다. 이런 생각은 의식일까 무의식일까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아이 가방에서 나온 미니 화이트보드와 마커가 생각났다. 나름 무척 아끼는 물건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