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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검 Mar 06. 2023

거기가 고향이랬지

트리반드룸

여름 막바지 마른 공기가 뜨거웠다. 한낮의 열기로 달궈진 집 밖엔 낯선 차량들이 보였다. 옆집 이웃은 작년에  건너의 집을 사들였다. 오늘 점심모임은  축하의 자리였다. 현관에 이르니 안주인이 얼굴을 내밀며 지금 예배 중이라 했다. 거실에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차로 운반해  듯한 의자에 앉아  중년 신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말라얄람 사람들. 안주인이 말라얄람이란 걸 그동안 잊고 있었다. 말라얄람이 아닌 바깥양반은 주일마다 운전수로 교회에 간다고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들을 앞에 두고   방은  개며 세를 놓을 거라는 등의 얘기를 귀엣말로 주고받았다. 마음 한켠에는 따스한 흙먼지가 일었다.


예배가 지루했는지 내가 따분해할 것을 염려했는지 바깥양반은 작년에 옆옆집으로 이사 온 이웃을 불러내어 소개주었다. UAE에서 태어나고 첸나이에서 컸는데 부모가 말라얄람이라 자기도 말라얄람이라 했다. 형제들은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당시 9.11 테러로 비자 정책이 바뀌어 혈혈단신 멜번으로 오게 되었단다. 이곳에서 정착하고 결혼했는데 아내는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부모가 역시 말라얄람이라 했다. 나는 전에 알던 말라얄람 친구얘기를 꺼냈다. 트리반드룸 출신으로 학창 시절을 오만의 머스켓에서 보낸  멜번으로 유학을 와서 이웃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줄거리였다. 두껍고 짙은 눈썹에 눈이 크고 선한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요즘 치솟는 이자율, 트리반드룸, 여행 얘기를 주고받았다.


베이스볼 캡을 눌러쓰고 있어 앞머리숱이 얼마나 적은 지는 알 수 없었으나 투박한 남인도형의 얼굴은 아니었다. 얼굴선이 뚜렷하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풍겼다. 화사하면서 소박한 인상의 그의 아내는 뒤뜰에 피는 나스터티움 같았다. 아빠 품에 잠든 한 살 배기 딸아이는 어른들의 수다에도 아랑곳없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점심식사 시작  이웃처럼 지내자는 인사 잊지 않았다.


점심으로 인도식 뷔페가 마련되어 있었다. 코코넛 수프를 끼얹은 생선요리가 남인도 풍이라고 동석한 말라얄람 아낙이 알려주었다. 트리반드룸 친구가 다시 생각났다. 코코넛과 바닷생선, 묽은 카레라니 왠지  친구와 연상되지 않았다. 긴 시간 몸에 축적되어 풍기는 카레냄새보다는 수퍼에서 팩으로 구입해 쓰던 팜올리브 비누향이 그에게선 났었다. 말라얄람이 어려서 오만에 갔다고 아랍문화에 동화될 리도 없었다. 나라색도 지방색도 티가 안 났던 그는  멋쩍은 이방인이었나 보다. 이제 와서야 그의 남인도 시절 얘기가 무척 듣고 싶어졌다.


트리반드룸에선 태양에 그을은 건지 흙바람을 쓴 건지 거울 속 얼굴이 얼룩덜룩 갈변되어 있었다. 4월은 무척 더웠고 마음은 왠지 편안했다. 북부와 다른 남쪽 땅끝 마을 특유의 정취가 있었다. 룽기(남성용 치마)를 허리춤에 걸치고 길 위에 선 남부신사들이 별스럽고 멋스러웠다. 백 워터스에선 꽃단장한 동네 아낙들이 지붕 없는 케투발람(전통 목조보트)에 올라타며 우아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지면이 울퉁불퉁하던 비포장도로가 이제는 아스팔트로 변해 있을걸 상상하마음속찬바람이 일었다. 시장 분위기였던 소박한 공항이 모던한 고층 건물로 변신해 있는 구글 이미지에 소스라쳤었다. 도심만 개발이 되었거기를 벗어나면 예전모습 그대로라는 UAE 태생 말라얄람 이웃의 귀띔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방인의 고향

뜨거운 바람

짙어지는 피부

불타는 말라얄람


한 사람의 보람을 거두기 위하여, 인생과 싸우기 위하여 친구는 떠나갔을 것이다. 나만 변하고 세상은 그대로 여야 한다면 세상이  배반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배반한 걸 거라는, 트리반드룸도  친구도 내가 배반한 걸 거라는 생각을 하며  내리쬐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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