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이 아름답다고 마음에 새긴 건 처음이다.
낯익은 가로수들이 지나가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부쩍 커 보여서.
하루 일을 잘 마쳐서.
아닌 것 같다.
반복 재생해서 들어도 설레는 자(전거)탄풍(경)의 멜로디가 흘러나와서.
내 작은 도요타로 한아름 들어오는 저녁노을이 그림 같아서.
그런 것 같다.
노을을 보자고 두시 반 퇴근을 여섯 시까지 늦춘 건 아니지만 차를 몰며 감상하는 노을은 깜짝 선물 같았다.
노을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유라서 오는 안도감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위해 아껴뒀는데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쳐버린 것들이 나중에 찾아와 묻고 반항했다.
그래서 일도 사랑하게 되었다.
매일 가는 여행에 비유해 보았다.
오늘은 단출하게 세명의 레이디와의 동행이었다.
우리 반은 기초반인데 오늘은 몇 명이 결석을 했다.
2 1 2, 2 2 4, 2 3 6 …
파투마가 구구단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교실 문이 열리고 와르다가 들어섰다.
작은 체구를 이불처럼 덮은 검은색 패딩과 흰 무명천 히잡을 쓴 그녀는 지각을 곰살맞은 미소로 뭉글리며 자리에 앉더니 파투마의 구구단에 가세했다.
2단부터 9단까지 단독으로 들어주려 했는데 덜꺽 끼어드니 나는 갑자기 ‘쉬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빵 터졌다. 파투마의 첫 웃음이.
아 이제다 싶었다. 항상 침울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었다.
누구나 맡겨진 제 몫을 사는 건 힘에 부치나 보다.
구구단은 차차 외우기로 하고 곱셈문제로 들어갔다.
시에라리온 출신 아미나타는 처음 해보는 것 같았다.
그 나라는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아프리카 서해 그곳은 젊은 숙녀에게 어떻게 기억됐을까.
영어시간에 셈하는 건 나도 낯설다.
어릴 적 산수를 더듬어 단계별로 설명한 후 문제를 내주고 들여다보았다.
한 번에는 안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다 이해하면 기초반이 아닐 터.
와르다는 곱셈을 곧잘 풀었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자 스낵을 먹기 시작했다.
말괄량이 여고생 같아서 주의를 주자 봉지를 가방에 쓸어 담는다. 눈치는 기본이다.
놀라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한번 더 설명해 주니 아미나타가 세 자리나 되는 곱셈 문제를 다 맞힌 것이다.
와르다와 함께 했냐고 두 번 묻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오후엔 스펠링을 연습하고 스펠링 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정신을 가다듬어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스펠링 명상이다.
와르다의 손가락에 끼워진 화려하고 길쭘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소말리아에서 온 거냐고 물으니 여기에서 샀다고 했다. 비눗물이 닿으면 변색한다고 했다.
파투나와 아미나타는 차분하게 써 나갔다.
와르다는 어질러놓은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들이 데리러 와서 밖에서 기다린단다.
정신을 떼어놓은 듯 와르다의 마음은 이미 교실에 없었다.
스펠링이 날아다녔다.
나에게도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추억을 뭐라고 할까 Memory 말고.
그림을 뭐라고 할까 Picture 말고.
귀갓길이 아름다운 건.
오늘이 한 편의 그림 같아서.
집에 닿으면 멀어지는 추억이 되어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