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검 Sep 09. 2023

그립다고 떠나진 않아




리디아는 평생을 멜번에서 살았다. 고등학교에서 15년간 불어와 영어를 가르쳤고 지금은 AMEP(이민자 영어교육) 매니저이다. 작년에 나는 그녀에게 침봉 꽃꽂이를 소개했다. 그녀가 핀들이 달린 침봉과 쟁반 같은 화병을 만난 건 숙명일까. 겨울날 꽃이 궁할 땐 검트리(gum tree)라도 담기지 않는 날이 없었고 남의 집 화단이건 어머니집 정원이건 동백, 국화, 라벤더, 꽃들을 꺾어와 그녀 오피스와 우리의 복도를 장식했다.


그녀 사무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흑백사진이 붙어 있었다. Why are they here? 내가 물었다. My favourite, I read it three times. 그녀에게 이런 감성이 있다니, 순간 어느 누구보다 그녀가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오만과 편견을 오래도록 읽고 있었다 (고전은 어렵다). 내게 그녀는 여지껏 감성이 결여된 직장 상사였나 보다.


그녀는 이탈리안이다. 시칠리안 어머니와 베네치안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곳에는 이제 연락하는 친척이 없다고 했다. 평생 돈을 벌고도 돈이 없어 여행을 못한다는 말과 비슷했다. (멜번에는 그런 멜버니언들이 수두룩하다.) Just boring… 지구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 나라가 어쩌다 그녀에겐 세상 지루한 곳이 되었을까. 지루한 걸 다시 캐물어 그녀의 심성까지 풀어헤쳐 보고 싶었다.


그녀에겐 다른 열정이 있는지 모른다. 붕 뜨지 않게 일상이라는 땅 위에 무게중심을 단단히 묶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열정. 그런 열정으로 유난히 정돈하고 치우는 걸 좋아하는지 모른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좋을 즈음, 내가 있는 교실로 와선 오래된 건 떼어내고 치우고 비우고 학생들의 수작업을 걸고 매달았다. 그런 부지런함도 누군가 옆에서 장단을 맞춰줘야 맛이라는 듯 이런저런 잡담을 풀어가면서.


어느새 나는 멜버니언이다. 멜번에서 지내온 날들이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많아져 버렸다. 여기가 고향인 리디아와 달리 내겐 바다 건너 멀리 고향이 있다.  고향도 그녀의 조국 이탈리아도, 이젠 곁에 있어도 그리운 연인 같은 로망이 되었다. 아름다운 그곳들, 나는 항상  곳만을 꿈꾸나 보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랬다. 막연히 외국을 동경했고 다행히 실행에 옮겼다. 멜버니언으로서의 생활은 이미 지난한 일상이 되었다. 옆으로 치운  일상은 그래서 내일로 내일로 향해 부웅 떠있는 것만 같다. 내일로 미룬 일상 위에는 먼지가 쌓여갔.

 



나비 표본이 진열된 상점 안에 초로의 남자가 힘없이 앉아 있다. 독일인 가게주인의 이름은 필그람. 가게 경기가 시원치 않아 추가로 문구류를 파는데 나비를 찾아온 어른이나 학용품을 사러 온 아이나 손님을 대하는 건 짜증스럽다. 그에게는, 그와 함께 하는 일요일 산책을 일주일 내내 기다리는 착한 아내가 있었다. 그런 아내에게 그는 자주 으르렁댔고 거슬리는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비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필그람은 사실 몽상가였다. 그의 열정은 가게 캐비닛에  세계를 망라하는 나비 표본함으로 빼곡히 채워졌고 그가 열망하는 것은  나라에 가서 가장 희귀한 나비들을 자기 손으로 잡아보는 것이었다. ‘아그로티스 필그라미라는, 그의 이름을  희귀종 나방이 있을 정도로  분야에서 그는 알아주는 곤충연구가였다.


필그람은 평생 베를린과 그 근교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외국으로 몇 주 채집여행을 떠나기에도 빠듯하게 금전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시간은 우울하게 흘러갔다. 그는 꿈을 꾸었다. 까만 밤, 이국의 작은 호텔 방이다. 열린 창문으로 흰 나방 한 마리가 돌진해 들어와 천장 곳곳의 자기 그림자에 춤추듯 키스한다. 그 소리에 잠을 설치고 만다.


© Philippe Halsman / Magnum Photos

번데기(Aurelia) 찾아다니는 그들 몽상가를 옛날 사람들은 오릴리언이라 불렀다. 오릴리언 필그람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단편 안에 있다. 그는 자그마한 가게를 하며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았고 세상사에 무지했고 일상에 무신경했다. 일상은 그에게 아무 의미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용기가 있었다. 꿈을 좇아 떠날 용기가. 집에    남기지 않고 아내와 상의도 없이 떠날  있는 뱃심을 주는 용기가. ‘오래되어 쭈글쭈글해진 고치 찢고 나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오릴리언은 천국의 나비 떼를 만날까.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나는 일단 응원하는 편에 섰다. 이탈리안 멜버니언 리디아는 어느 편에 설까. 멜버니언들은 어느 편에 설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처럼 남아 주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