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리로

튀르키예에서

by 블루검

여행을 다니며 기행문은 그 비슷한 것도 쓸 엄두를 못 내었다. 여행은 찰칵찰칵 찍기 쉬운 사진으로 남았고 기억은 자연스레 소멸해갔다. 남기고픈 여행 이야기를 이제는 좀 끄적여 볼까 한다. 기록으로 남을 첫 행선지는 터키가 되었다. 1년의 반을 터키에서 머무는 터키인 옛 동료와 얘기하다 자연스레 마음이 끌렸다.


올해는 둘이서 가기로 했다. 두 마음 두 경험 두 인생이 여행이라는 제목 아래 다시 만나 같은 것을 체험한다니. 한 사람은 외국에서 싱글로, 한 사람은 한국에서 현모양처로 살아왔다. 사촌동생 현진이다. 어릴 때 우린 3년 동안 한 방을 썼다. 대학엘 다닌다고 상경해서 이모네 집에 비집고 들어가 살았을 때이다. 서로 부대끼며 지내던 지난 시절이 있었기에 부담 없이 이번 여행에 의기투합하게 된 셈이다. 그냥 아는 사촌 간이었다면 쉽사리 함께 여행을 기획하지 못했으리라.


D-37. 기대 기대하는 현진이는 걱정도 앞선다. “벙어리 귀머거리 까막눈의 심정을 언니가 어찌 알겠어.” 영어를 못해도 별 탈 없이 잘 사는 여기 사람들을 보며 그런 환경에 예민하지 않은 나는 그런 걱정 말라고 되뇔 뿐이다. 내 입장에선 영어가 통하지 않는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이 더 문제일 것 같다. 더욱이 우린 동부로 가서 더 진한 터키를 맛볼 예정이다.


사는 게 뭐라고 연락도 자주 못하고 지내다가 강산도 우리도 훌쩍 변해버렸다. 이제라도 시간을 내어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대학 학과목에 얽매여 지내던 내게 고등학생 현진은 넓은 세상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조지 마이클, 존 본 조비에 빠져 있었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어디서 듣고 왔는지 여러 팝가수와 팝송에 얽힌 일화도 곧잘 들려주었다. 내가 조정현, 이문세를 테이프가 늘어지게 듣던 때였다.


현진이는 최근 양고기를 몇 번 먹어보고는 맛있다며 나도 도전해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터키는 돼지고기는 물론 소고기 요리도 그리 흔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터키 고전 음료인 보자와 전통 디저트 바클라바를 첫날부터 먹을 작정이다. 여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딱일 것 같다. 세계 어딜 가나 고향 같은 먹거리가 있고 세계 어디에서 온 나그네라도 위로가 되는 소울 푸드는 금세 알아본다. 더구나 터키 요리는 프랑스, 중국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주목받고 있다. 자칭 위대한 현진이와 더 위대한 나의 이번 여행은 음식 기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왔다.

남동부로의 여정

그래도 가장 큰 기대는 역시 건축물이 아닐까. 오늘은 여유롭게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찾아보았다. 거기서 멋진 영화를 찍었던 배우 리암 니슨은 비잔틴과 오토만 양식으로 빚어진 이슬람 사원을 언급하며 “Oh my God!”이라 하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코즈모폴리탄 메트로폴리스 이스탄불은 고대 왕국이 남겨준 찬란한 건축 유산으로 볼거리가 많아 가본 중에 손에 꼽곤 한다. 리암에게 그 정도였다면 내 입에선 ‘오 마이 갓’ 이 두 번 이상은 튀어나올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나의 화두는 사람 사람들이다. 서로를 마주 보며 인간다움을 느끼는 그 순간이 우리 자신의 역사이자 살아 있는 순간이니까. 어느 장엄하고 위대한 문화유산보다 살아왔을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웃음 짓는 어느 저잣거리 상인의 얼굴이 더 감동일 때가 있다. 그들의 뭉툭 투박한 손도 한몫한다. 나도 이래 저래 살아왔다고 내 사연 털어놓고 싶어 질라 한다. 여행지로 선진국이 좋다는 서울 사람 현진인 주책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이스탄불 출신 작가 오르한 파묵의 회상록 ‘이스탄불’은 못 읽고 가게 되었다. 눈송이 펑펑 나리던 동부의 카스 거리를 배회하느라 그에게 할당된 시간을 다 써버렸다. 카스에서 헤드스카프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로 터키 내부 무슬림 사회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현진이는 ‘내 이름은 빨강’을 도서관에서 빌려 볼 거라 했는데 아직 경과 보고가 없다.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렸건만 간접 독서로 덕 보기란 애저녁에 틀린 게 아닐까.


도시 전체가 올드 타운인 낭만지가 있다. 영국의 바스, 프랑스의 아비뇽, 이태리의 시에나가 그랬고 터키에선 마르딘이 아닐까. 거기 11세기에 서면 돌계단 돌담 사이를 걷다가 길을 잃어도 서럽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에 길을 묻다 당신은 왜 여기 있느냐며 밑도 끝도 없는 대화를 이어간대도 실없지 않을 것 같다. 그 시간여행을 즐겁게 지면에 옮겨 놓고 있을것 같다.


미뤄뒀던 호텔과 비행 편 예약을 숨 가쁘게 마쳤다. 우리 인생처럼 우리 여행은 드라마틱할 것이다. 각자 인생역정을 뒤로하고 순식간에 하나가 되어 두 마음이 부딪히고 한데 모이며 일렁일 것이다. 시험을 통과하듯 인생 몇 고개를 넘고서야 떠나는 기쁜 우리 여행 날이 다가오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단순한 풍경이 아닌 우리만의 추억으로 마음속에 스미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