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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22. 2024

정병러 일지 00

진짜 에필로그

 나는 의료인이다. 그리고 정병러이다.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보자면

 1) 정신질환자

 2) 마약, 대마, 항정신성의약품 중독자

 3)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4)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였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


 이런 사유로 보면 정병러인 경우는 의료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예외 없는 조항은 없다고 했다. 

 위 의료인의 결격사유에 대한 세부사항을 살펴보자면,

  1) 정신보건법 제3조 제1호에 따른 정신질환자. 다만 전문의가 의료인으로서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그러지 아니하다. 

 라는 문구가 있다.

 

 즉, 나는 정병러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 의해 의료행위가 가능한 자라는 인정을 받고 의사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 마디로 조건부 의사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 나는 환자를 보는 의사가 아니다. 나는 병리과 의사이다. 환자 몸에서 채취한 조직 및 세포 등을 통한 검사를 진행하는 일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의사가 존재한다.) 그래서 일반 직장인이나 마찬가지고 상대방을 해칠 우려가 아주 낮다. 실제로 정병러가 공격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경우는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높지 않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세상을 오도할 때가 있다. 


 한 때는 나도 오만할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인턴 때 환자를 대할 때 나는 영원히 의사일 것처럼 또 그들은 영원히 환자일 것처럼 대했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을 반성한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그리고 내 주변의 의사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아프고 죽는 것을 보다 보니 세상에 있어서 질병이나 죽음만큼 공평한 것도 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 글은 내 이야기를 주먹구구씩으로 적은 글이다. 아프지만 토할 때가 없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나 자신이나 타인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은 글들도 있다. 그냥 내 삶을 반추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 마치 감기몸살로 밤새 앓은 열이 떨어지는 것처럼 마음의 열이 식어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쓴다. 남이 아닌 나보라고... 나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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