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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18. 2024

정병러 일지 01

이야기의 시작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조울증 환자의 삶에 대한 것이다.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고 다시 조울증으로 바른 진단을 받기까지 약을 먹어도 조절되기 어려운 자살충동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힘드신 분들은 조용히 뒤로 넘어가시라.


 그녀를 만난 건 2013년 가을이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생을 전전하던 나는 제2의 삶을 살겠다며 귀농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귀농학교에서는 해마다 학교를 알리는 행사를 하는데 큰 규모의 행사장에 부스를 빌려 진행하다 보니 주변에 여러 박람회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마침 행사장을 지켜야 하는 교대 근무가 끝이 나고 다른 박람회나 구경해 볼까 하다가 심리학과 부스에서 해주는 간단한 심리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고른 것은 스트레스 지수 알아보기. 교수즈음 되어 보이는 사람이 도화지 한 장을 주며 비 내리는 날 풍경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우산도 없이 저 멀리 서 있는 덩치 큰 나무 (너무 멀리 있어서 도화지에는 그리지도 않았다)를 향해 돌진하는 소년을 그렸다. 그런데 그분이 깜짝 놀라며 해석을 해주셨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데 보호해 줄 장치가 없다며. 무엇이 서러웠을까? 별 것 아니고 누구에게나 할 법한 이야기에 눈물이 쏟아졌다. 교수는 당장 심리치료를 받거나 정신과에 가는 것을 추천했다. 마침 아는 동생이 심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어서 그녀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꽤나 잘 나가는 상담심리학과 교수. 자그마한 체구에 똑 부러지게 생긴 그녀를 처음 만났던 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가드를 제대로 올리고 철저히 나 자신을 방어하려 했던 기억은 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어땠을까? 시작이 너무 뻔할지 모르지만 나의 원가족은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이삼일을 멀다 하고 욕을 하고 치고받고 싸우기를 지겹도록 했다. 특히 아버지와 오빠가 그랬다. 막내였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감정적으로 나 자신을 차단했다. 마치 나는 그곳에 있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하면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을 수 있어 라며. 처음으로 만난 정신과 선생님은 내게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소아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아마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행스럽게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사업이 부도가 난 아버지는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느라 집에 들어올 수 없었고 대학생이던 오빠도 자신이 돈을 벌어 학교를 다니겠다며 집을 떠났다. 당시 나는 감정적으로 원가족과 분리되지는 못했다. 다만 가난이 지긋지긋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성적은 공부한 만큼이나 좋게 나왔다. 의도적으로 대학은 먼 곳으로 갔다. 돌이켜보면 나의 원가족과 물리적인 거리를 뒀기 때문인지 대학이 주는 자유 때문인지 몰라도 꾹꾹 눌려져 있던 나의 어두운 감정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힘이 들어 다음 학기만 하고 휴학해야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장학금 때문에 매번 휴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학비를 보태줄 만큼 집안 사정이 녹록지 않았을뿐더러 휴학하며 그 비싼 학비 (사립대였으므로)와 생활비를 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질질 끌려가듯이 학교를 마치자마자 쉬려 했지만 당장 급한 것은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인턴 과정을 거치고 정식으로 입사를 하였다. 문제는 입사 후 3년 뒤에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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