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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19. 2024

정병러 일지 02

자기 파괴 본능

  상담을 꽤 오랜 기간 받았다. 거의 4~5년의 시간이 걸렸다. 1년 정도의 상담 후 상담 교수는 정신과 치료와 병행을 추천했다. 그래서 약도 꾸준히 먹었다. 그렇다고 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나는 내 정신질환과 싸우고 있고 가끔은 그 싸움에 너무 지쳐서 차라리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을 때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붙잡을 동아줄이 내려오곤 했다. 그래서 아직은 살아있다.


상담 교수는 꽤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대개 조용히 듣기만 하다 가끔씩 한 마디 하곤 했는데 그 말이 정곡을 찌를 때가 많아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상담이 아니었다면,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상담 기간 동안 나는 두 번의 전이를 겪는다. 전이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특정 감정을 투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양성애자인 나는 그녀에게 끌렸다. 꼭 연인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나를 받아주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다운 자세로 일관성을 유지했다. 다행스럽게도 나 또한 어렵지 않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상담을 받기 시작하기 6여 년 전, 즉 정식 입사 후 3년이 지나 나는 내규에 따라 2달 동안 서울로 파견을 갔다. 파견 기간은 내 생의 최악의 날들이었다. 서울의 직원들과는 달리 내 일처리 속도는 너무 늦어서 날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거기다가 발표 준비도 제대로 못해 번번이 회의 분위기를 망쳐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교회에서 만나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사연이 많다.) 2달 후 나는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내려왔다. 정신착란이 극에 달한 나는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액팅아웃(정신과 환자들이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해버렸다. 그리고 직장도 교회공동체도 잃게 되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다. 당시는 그게 악마의 손이라는 것을 몰랐다.


  악마의 손, 그건 정말 악마의 손이었다. 당시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하고 극도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기에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나의 판단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땡전 한 푼 없었다. 부모에게도 보이기 싫은 내 모습이었고 어차피 부모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는 내 몸을 노리개 삼아 온갖 짓을 다 했다. 뿌리칠 힘이 없었다. 죽을힘도 없었고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려면 어때라는 생각을 했다. 도망칠 힘도 없었다. 다만 끔찍한 것은 그는 목사였고 그래서 주일이면 그가 이끄는 예배시간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힘이 생겨서 그 사람과의 분리가 이루어진 후에도 나는 그를 찾아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나는 비참함을 느꼈다. 나를 그토록 파괴해 버린 사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찾아갈 이가 그 밖에 없다는 외로움, 상실감, 그에게 나를 던짐으로써 느낄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파괴본능 같은 것들을 느꼈다. 힘든 순간마다 점점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를 파괴해 갔다. 그 파괴의 절정에 첫 번째 자살 시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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