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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20. 2024

정병러 일지 03

지옥에 던져진 사람들

 “있잖아 자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있으면서도 근심과 걱정을 사서 해서 지옥에 사는 것처럼 살아.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살면서도 내일은 1도 정도 더 서늘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 “


신랑이 한 말이다. 그것도 나를 저격해서 한 말.

형광등인 나는 들을 당시 ‘그렇지’ 라며 가볍게 넘겼지만 곱씹어 볼수록 너무 화가 나는 말이었다


내가 그토록 정병러의 가족으로써 정병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렇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싶을 때 가질 수 있다면 그게 정병러일까?


정병러, 특히 우울증이 심할 경우는 가슴 중앙에 커다란 추 하나를 달고 사는 기분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느낀다. 바다에 떠오르고 싶어도 추가 매여 있어서 떠오를 수 없다. 내 힘으로 밧줄을 끊어낼 칼도 없다.


사람들은, 특히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가지세요, 감사하세요,라는 말로써 정병러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아프게 한다. 나도 제발 그러고 싶다고요.


비겁하게 신경전달물질 탓을 하고 싶진 않는데 약을 먹으면 정말 달라진다. 처음 정신과약을 먹고 선생님께 ‘요즘은 가볍게 느껴진다 ‘는 말을 했다. 선생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OO 씨,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요 ‘ 그때 느꼈던 충격과 배신감이란..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가끔씩 불안과 초조함, 우울한 마음에 시달린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다. 그곳이 지옥이라면 지옥에 같이 있어주는 일. 나의 불안과 우울을 오롯이 감당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아는 척, 고칠 수 있는 척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기.


정병러들은 천국 같은 상황을 두고 지옥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옥에 던져진 사람들이다. 이 지옥은 랜덤이라 어느 날 누구라도 빠질 수 있다. 그 사람의 평소 성격이나 의지력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한 번 갇히면 빠져나가기 어렵다.


더 이상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는 사절이다. 그냥 들어주라. 그것도 힘들면 가만히 있어라. 불쏘시개로 지옥불을 뒤적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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