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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21. 2024

정병러 일지 04

자살시도

 그러니까 정확히 나를 파괴하려는 사람과의 간헐적인 만남을 유지하던 시기와 자살시도가 이루어진 시기 사이에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자살시도를 하는지 모른다. 유서를 쓰고 못했던 일들을 하고 깔끔한 옷을 입고 하는지. 내 자살 시도는 너무나도 충동적으로 이뤄졌다. 원래도 자살 충동이 있었다. 스크린 도어가 없던 시절,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며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네 하는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그 충동들을 이겨내기 위해 느끼는 불안은 자살 충동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나 같은 경우는 주말 저녁에 이루어졌다. 언니와 조카들과 잘 놀다 왔는데 집에 수북이 놓인 정신과 약과 잠복결핵약 (당시 잠복 결핵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을 한꺼번에 먹으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약은 큰 그릇 하나에 빨려들 듯이 담겼고 나는 그 많은 약을 꿀떡꿀떡 삼켰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듯이. 그리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문드문 꿈같은 장면들이 떠오르고 누군가 말하기를 일주일 즈음 지나서 중환자실에서 깼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상담 교수는 난리를 쳤다. 다시는 자살 시도나 자해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지 않으면 상담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서명을 해다. 이 일로 인해 상담 교수와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는 아니었다. 상담이 강제 종료되기 몇 달 전부터 나는 상담 교수에게 상당한 분노를 느꼈다. 원인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죽여버리겠다는 공갈 협박을 했다. 그렇지만 이건 그녀로서는 상담한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나 보다. 우리 원가족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인데... 나는 행동함으로써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도망가려는 걸 보니 더 화가 났다. 그때 그녀가 괜찮다고 내 분노를 이해하고 달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지만 당시 그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리라. 그녀로서는 그녀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므로 그렇게 상담은 애매하게 종결되었다.


 나는 다시 기댈 곳을 잃었고 이는 순전히 나의 우매함 때문이었다. 그 후 직장을 구해봤지만 한 군데 정착을 잘하지 못하였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문제 앞에서 도망치기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내 감정은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망아지처럼 걷잡을 수 없이 들쭉날쭉했다. 그럴 때마다 든 생각은 자살이었다. 그러나 실패와 그 후유증에 대한 불안 또한 컸다. 무엇보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타나토스의 의지보다 에로스의 의지가 1%라도 더 강렬하기에 비겁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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