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 문정희
해탈이란 무엇일까? 신의 경지에 다다름이란 무엇일까? 소위 도(道)에 관심이 많은 나는 종종 깨달음의 경지를 갈망한다. 그러나 계룡산의 도사도 아니고 인도의 요기도 아닌 일개 중생일 뿐이라는 사실. 그래도 절에 가면 신성한 기분을 느끼며 마음이 평안해진다. 금으로 된 불상보다는 석불을 더 좋아한다. 더 투박하지만 더 매력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없음의 있음이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도가도 비상도', 즉 '도를 도라 부르면 도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는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도마에게
'너는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이가 더 복되다'
라고 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신성 (도라는 단어 대신 신성이라는 단어를 써보았다). 어느 곳에나 깃들어 있는 신성. 노자가 자연무위사상을 이야기했다면 서양에는 켈틱 영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 안에는 작은 나뭇잎 하나, 바람 한 줌에도 신성이 깃들어 있고 기도 소리가 숨겨져 있다.
문정희 시인은 세월로 인해 바래가는 석불의 흔적 앞에서 그 신성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해 어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신성. 따라서 완성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는 자연 그대로의 신성. 그런 그녀를 나는 시인을 넘어 도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돌아가는 길 /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https://youtu.be/2IK-8 b9 OJcw? si=xMxXYQbFWCwSLaV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