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조원. 지난해 HYBE가 벌어들인 매출액입니다. 'K-POP은 아시아에서만 듣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K-POP 들으면 이상한 취급받는다'는 비아냥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듯 합니다. BTS와 블랙핑크의 성공 비결에 대해서는 수많은 곳에서 서술하고 있으니, 이번 글은 2023년 K-POP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상과, 성공요인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2022년 3월, '바흐-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이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프로모션 이미지를 시작으로 바흐의 생일에 앨범을 발매하고 서울시향의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공개되며 SM의 기획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K-POP 차트에는 한동안 샘플링 기반의 음원이 쏟아졌습니다.
공통적으로 대중들이 기존 매체에서 익숙하게 접해왔던 곡을 활용했고, 기존 곡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사실 국내 가요계에서 유명한 곡을 샘플링하는 트렌드가 처음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 H.O.T, 신화, 아이비, 씨야 등이 있었고 그 곡 또한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심지어 그 때도 SM이 주도적으로 샘플링 기법을 K-POP에 도입했었습니다.
근 20년 만에 SM이 이 트렌드를 가져온, 그리고 다른 엔터사들이 이 흐름에 편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요인을 꼽고 있습니다.
1) 주요 시장의 뉴트로 열풍
20년 전과 달리, K-POP의 주요 시장은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입니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 글로벌 미디어를 관통하는 IP 또한 뉴트로입니다.
<음악>
- 70년대 필리 소울 기반의 Silk Sonic(브루노 마스, 앤더슨 팩)
- 80년대 신스팝을 주로 활용하는 The Weeknd
<영상>
- 기묘한 이야기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패션>
- 집게핀
- 부츠컷 바지
- 크롭 티셔츠
이와 같이, 자연스레 예전의 향수에 소구하는 방식의 K-POP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2) IP의 펀더멘탈 구축
앞서,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이 오케스트라 버전의 연주로 재해석되었다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SM은 생각보다 클래식에 진심인지 SM Classics라는 레이블을 따로 세웠을 정도입니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의 '근본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ScreaM Records라는 EDM 레이블과 같이 장르의 버티컬을 추가할 수도 있구요.
앞서 언급한 레드벨벳,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엔믹스는 엄밀히 뉴트로를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일종의 변주를 주는 개념으로 트렌드에 적절히 편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초기 컨셉부터 확실히 뉴트로를 표방하는 아티스트도 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이 또한 글로벌에서 이미 반응이 오던 컨셉입니다.
1) 뉴진스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아티스트입니다. SM에서 기획력을 인정받은 민희진 대표가 프로듀싱을 하며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고, 데뷔 후에도 국내 음원차트를 매번 석권하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장르와 세계관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저지클럽
90년대 후반 뉴저지에서 파생된 음악 장르라고 합니다. BPM이 130-140대로 굉장히 빠른 것이 특징이며, 안무 또한 스텝이 현란한 편입니다. 기타 설명은 제가 즐겨보는 채널인 우키팝 영상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Ditto가 처음 나왔을 때, 여고생들의 아련함을 불러일으키는 멜로디와 대조적인 안무로 리스너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퍼포먼스 비디오를 보면 춤이 굉장히 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뉴진스가 저지클럽을 선택한 이유는 정말 명확합니다. 틱톡에서 굉장히 핫하기 때문입니다. 춤추기에 좋고, 대부분의 K-POP과 달리 맥시멀리즘 대신 이지리스닝을 추구하며 글로벌 Z세대에게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트렌드가 글로벌에서는 사운드클라우드나 스포티파이를 거쳐 틱톡으로 전파되지만, 국내에서도 이러한 파이프라인이 유효한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반희수
사실 뉴진스가 정말 철저한 기획 하에 등장했다고 판단한 요소는 '반희수'였습니다. 저지클럽 기반의 이지리스닝 음원 정도로 뉴진스가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 겁니다. 반희수는 뉴진스의 팬덤명인 '버니즈'에서 따온 것으로, Ditto M/V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영상을 보다보면 '희수'는 90년대 후반의 학교생활을 즐기는 뉴진스 멤버들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친구'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갑자기 Ban Heesoo라는 채널에서 Ditto 비하인드로 보이는 영상이 '19981222'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됩니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한 달간 영상이 올라오다가 OMG 영상을 끝으로 업로드가 중단됩니다. 모든 영상의 제목이 YYYYMMDD로 이루어진 점, 캠코더로 찍은 듯한 480p 영상, 설명란에 적힌 이런 저런 말을 보면 마치 반희수의 개인 유튜브 채널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러한 컨셉은 뉴진스의 팬인 '버니즈'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국적, 나이, 성별 등 다양한 구성의 버니즈를 '반희수'라는 가상의 페르소나로 결집시킵니다. 90년대를 겪은 팬에게는 노스탤지어를, 겪지 못한 팬에게는 신선함을 제공합니다. 또한, 팬덤과 아티스트라는 다소 상업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에서 '98년도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로 전환하며 마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전 몇 년간 굉장히 핫했던 하이틴 컨셉과 대척점에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예쁘고 고급진 착장을 한 '아이돌'에서 한 단계 더 팬에게 다가간 것이죠. TV에 나오는 스타 대신 '옆 반에 춤 잘 추고 예쁜 걔'로 포지셔닝하며 아이러니하게 더욱 따라하고 싶게 만든 것입니다.
2) 피프티피프티
뉴진스에 비해 피프티피트피의 성공은 조금 더 직관적입니다. 곡이 다 했습니다. 사실, HYBE의 자본력 + 민희진 대표의 기획력을 기반으로 한 뉴진스가 특이한 것이지, 대부분의 기획사에게는 어찌보면 유일한 성공루트이기도 합니다.
K-도자캣 전략
피프티피프티가 도자캣의 카피캣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국내에서 도자캣에 영감을 받은 곡이 굉장히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디스코 팝 장르 + 핑크 계열의 분위기 + 뉴트로 컨셉을 선택한 이상 도자캣이 언급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태연 - Weekend이 대표적이었죠.
개인적으로 Weekend 또한 준수한 퀄리티의 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K-도자캣 전략만이 피프티피프티의 성공비결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뉴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한 최초의 K-POP
앞서 글로벌에서는 스포티파이와 틱톡을 통해 곡이 바이럴된다고 설명했습니다. 'SZA - Kill Bill', 'Hoang Thuy Linh - See Tinh(띵띵땅땅)' 등이 이러한 경로를 통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피프티피프티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Cupid의 성공에 대해 잘 서술된 글을 공유드립니다.
1. Cupid 음원 공개(한국어, 영어, MR)
2. 틱톡에 후렴 부분 Sped-up & 안무 버전 공개
3. 스포티파이 'New Music K-POP' 플레이리스트 등록 - 단순 신곡 갈무리
4. 스포티파이 'Pop Sauce' 플레이리스트 등록
5. 스포티파이 'Pop Rising', 'Big on the internet' 플레이리스트 등록
6. 빌보드 '버블링 언더 핫 100', '핫 100', 스포티파이 'Today's Top Hits' 진입
예전 원더걸스의 빌보드 진입을 위해 Nobody 앨범을 아동복 가게에 비치해두었던 것이 고작 2009년입니다. 고작 14년 사이에 피지컬 싱글(실물 앨범)과 아이튠즈, 에어플레이(라디오) 대신 틱톡과 스포티파이가 인기의 척도로 바뀌었습니다. 플랫폼의 위력, 그리고 K-POP IP의 영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K-POP에 관심이 많다보니 계속 글감은 모이는데 한 편의 글로 완결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음 글은 K-POP의 또다른 트렌드인 '가상현실‘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