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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Aug 07. 2023

[IP 비즈니스] ③ '광야'로 향하는 엔터테인먼트

바야흐로 '광야'의 시대입니다. '광야'라는 단어를 듣고 이육사의 저항시나 기독교적 용어를 떠올리셨나요? 그렇다면 아직은 K-POP에 대해 더 알아가실 게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K-POP 팬들 사이에서의 광야, 혹은 KWANGYA는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SMCU(SM Culture Universe)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광야는 'Ether(무의식의 세계)에서 여과되어 창조된 곳으로, FLAT(æ들이 살고 있는 세계) 너머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무규칙, 무정형, 무한의 영역' 이라고 합니다. 도통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개별 아티스트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내기 위한 메타버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K-POP에서 광야는 가상현실을 상징하는 하나의 개념어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상현실은 광야를 필두로 2020년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버추얼 아티스트'가 등장함에 따라 최근 스타트업 씬에서도 관련 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죠. 이번 글에서는 버추얼 아티스트의 대표격인 에스파, 그리고 해당 트렌드에 필요한 기술 & 스타트업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


에스파(aespa)가 누군데?

놀랍게도 에스파는 8인조 걸그룹이다.

가상현실 기반의 아이돌 중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입니다. 2020년 Black Mamba로 데뷔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는데요. 바로 현실세계의 휴먼 에스파(aespa)와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아이-에스파(æ-aespa)를 합쳐 4+4=8인조 걸그룹이라는 컨셉입니다. 메타버스 내 디지털트윈을 K-POP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첫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에스파의 세계관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에스파와 ae-에스파는 서로 다른 세상(현실과 FLAT이라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

2. 둘 사이의 결속(SYNK)이 강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블랙맘바(Black Mamba)가 존재함

3. 반대로 가상세계의 조력자인 나비스(naevis)는 에스파와 ae-에스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함

    3-1.  에스파가 나비스의 도움을 받아 ae를 찾으러 나서는 여정이 NEXT LEVEL

4. SYNK가 더욱 강해지면 REKALL 상태가 되어 ae가 현실로 넘어올 수 있음

5. 광야에서 베스트 프렌드를 지칭하는 용어는 MY(에스파 팬덤명)임

6. 멤버별로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 (나이순)

    6.1 카리나: 로켓펀처(Rocket Puncher) - 푸른색 펀치 능력자

    6.2 지젤: 제노글래시(Xenoglassy) - 외국어 능력자

    6.3 윈터: 아마멘터(Armamenter) - 무기 능력자

    6.4 닝닝: 해커(Hacker) - 해커


여기까지 읽고 '아이돌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SM에서 레드벨벳 이후로 6년만에 내는 걸그룹 에스파가 데뷔한 2020년대 K-POP 시장을 고려하면 상기 실험이 마냥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3개의 세대를 거쳐오며 섹시, 청순, 병맛, 건강, 아련 등 아이돌이 가져갈 수 있는 컨셉은 다 나왔습니다. 시장 확장과 더불어 신선함을 더해줄 수 있는 외국인 멤버를 적극 기용하는 SM이지만, 예전과 달리 K-POP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중소기획사에도 수준급의 재능을 갖춘 외국인 멤버가 등장해 더 이상 차별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AI나 가상현실 등 IT 기술에 대한 총괄 프로듀서의 관심을 결합한 결과물이 광야, 그리고 에스파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가상현실 세계관을 구축한 이유

*SM 공식입장과 무관한 개인 의견입니다.


1) 2차 창작에 대한 가이드 역할

팬덤 활동과 2차 창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Fan Fiction의 준말인 팬픽 문화는 1세대 아이돌인 H.O.T 시절부터 이어진 유구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M은 이러한 2차 창작을 더욱 활성화하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 것이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주요 팬덤인 10대 여성들이 주로 소비하는 학교 생활, 연애 등 통상적인 2차 창작을 넘어설 수 있는 판을 깔아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 원소스 멀티유즈(OSMU)

카리나 'The Rocket Puncher'

EXO를 통해 한 차례 보여주었던 '멤버별 능력 부여'는 에스파를 거쳐 조금 더 체계화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능력과 함께 실제 MV, 자체 컨텐츠, 무대의상 등을 통해 해당 능력을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원소스 멀티유즈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은 에스파 세계관을 그대로 차용하여 ae 캐릭터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외부 IP와 협업하기 위해 억지 설정을 추가하거나, 아예 새로운 컨셉을 구상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유기적인 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NFT 아티스트, 가상패션 브랜드, 케이스티파이 등 글로벌 단위의 컬래버레이션이 많은데요. 멤버 개개인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협업하는 일반적인 방식에 더해 에스파 특유의 미래지향적인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통해 새로운 협업 창구를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픽세븐에 출시한 신규 캐릭터 ae-에스파

3) seamless한 버추얼 아티스트 데뷔


K-POP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돌 연습생이 데뷔에 가까워지면 소속사 선배의 무대 피처링, 백댄서, MV를 통해 한 번씩 얼굴을 비춥니다. 더구나 대형 소속사는 연습생 또한 유명한 데다, 새로운 그룹의 멤버를 미리 맞추어보는 일명 '궁예'가 활발합니다. 소속사에서도 미리 바이럴을 돌리며 반응을 살필 정도죠.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불가능한 연습생이 있다면 어떨까요? 바로 버추얼 아티스트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해당 문제를 광야 세계관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나비스(naevis)인데요. 나비스는 사실 SM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버추얼 아티스트로, 솔로 데뷔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광야 세계관을 공유하며, 이미 에스파 MV에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나비스(Naevis)는 '24년 1분기 데뷔를 앞두고 있다

실제로 올해 발매된 에스파의 'Welcome To MY World'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바 있는데, 원래는 나비스의 솔로 데뷔곡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위 곡에서 나비스는 도입부인 '다라라-' 와 브릿지 일부를 부르며 목소리도 공개된 상황입니다. 12명의 성우 음성을 믹싱하였다고 하는데, 에스파처럼 현실 세계의 아티스트와 대응되는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서 다양한 가상인간이 CF 모델, 가수, 아나운서 등에 도전했지만 아직까지는 대중의 거부감이 큰 상황입니다. 그동안 다른 가상인간이 기술에 집중하여 '불쾌한 골짜기' 현상 해소에 집중한 것과 달리, SM은 광야 세계관을 통해 큰 거부감없이 나비스를 대중에 공개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버추얼 아이돌 시대에 필요한 기술은?


마지막으로, 벤처캐피탈 관점에서 버추얼 아티스트의 시대가 도래한 현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과, 이를 제공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모션캡쳐

흔히 SF영화나 버추얼 아이돌과 같이 최고 품질의 3D 트래킹을 필요로 하는 산업군에는 소규모 스타트업이 침투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초고가의 카메라와 소프트웨어, 마커에 필요한 인프라가 준비된 스튜디오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OptiTrack과 같이 글로벌 레벨에서 자리잡은 기업이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쉽사리 도전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마커가 필요없는 형태의 저품질 모션트래킹 시장은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VRChat과 같은 수준의 3D 모델링 정도라면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모션캡처가 가능합니다. 실제로, 플룸디, 플루언트 등 국내 스타트업도 해당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상황입니다.


2) 목소리 합성 + 실시간 음성변조 엔진

앞서 설명한 에스파, 라이엇게임즈의 K/DA,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피버스는 아주 엄밀하게는 버추얼 아티스트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ae-윈터가 솔로앨범을 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현실의 윈터 목소리를 기대하지, ae-윈터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버추얼 아티스트의 영역에서는 아예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내려는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SM의 나비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메이브와 같이 기존 성우의 음성을 여러 가지로 믹싱하는 형식에 가까울 것으로 보입니다. 타입캐스트와 같이 수 백개의 목소리 소스를 가지고 있는 곳이 선점할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훗날 콘서트나 팬미팅 등 실시간 발화가 요구되는 곳에서는 musicfy와 같은 믹싱 엔진의 고도화 버전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3D 디지털 트윈 솔루션

메타버스 열풍이 사그라들며 요새는 한물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아티스트의 패션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해당 분야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랙핑크 로제가 입은 치마는 250만원 상당의 롱스커트를 리폼한 것이라고 한다

위 사진과 같이, 점차 K-POP 아티스트는 매 무대마다 커스텀 의상을 입는 일이 많아짐과 동시에 명품 의류를 비가역적으로 수선하게 됩니다. 이 때, 버추얼 아티스트의 의상을 디지털트윈으로 모델링할 수 있는 솔루션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패션 브랜드 역시 기성 제품의 리폼 버전, 혹은 단종된 제품의 복각 버전 출시를 고민하게 될 때, 버추얼 아티스트를 통해 반응을 미리 체크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외에도 트리플에스와 같은 DAO(탈중앙화 자율 조직)형 팬덤과 함께 신진 디자이너의 의상을 적극 도입하고, 이를 공식 MD로 제작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IP 비즈니스에 대한 저의 이런저런 생각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다음 글에서는 새로운 주제로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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