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오래전 친구 정선이 꿈에 나왔다.
우리는 학교를 오가며 늘 지나다니던 그 오솔길 위에 서 있었다. 비가 그친 날이면 지렁이의 사체 혹은 아직 숨이 붙어 꿈틀거리는 그것들을 피해 깨금발을 하고 꺅꺅거리며 지나다니던 그 길. 학교로 가는 큰길이 있었지만, 정선은 조금 돌아가더라도 사람이 없는 그 길이 좋다고 했다. 학교가 끝나면 노란색 하얀색 꽃팔찌를 만들어 하나씩 나눠 차고 나는 리코더를, 정선은 한 손으로 하모니카를 불며 한참을 놀던 그 길 위에 정선과 내가 마주 서 있었다.
나는 빨리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자음과 모음들은 마땅한 짝을 찾지 못한 채 머릿속을 하염없이 부유할 뿐이었다. 그러다 허무하게 꿈에서 깨었다.
정선과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학기 초 청소 당번으로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정선의 왼팔이 의수라는 걸 알았다. 항상 ‘ㄴ’ 자 모양으로 구부리고 있던 정선의 팔에 의식적으로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고 친해진 뒤로도 그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어릴 때 장난을 치다 시골 할머니 댁 작두에 그만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만 어렴풋이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정선의 어머니는 학교에 급식 봉사자로 종종 오시곤 했는데 내 차례가 되면 항상 그날의 가장 인기 있는 반찬을 눈에 띄게 듬뿍 덜어주시며 인자한 미소를 짓곤 하셨다. 그 얼굴 안에는 염려의 눈빛과 당부의 입술, 경계와 안도의 표정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존재하는 듯했다.
우리는 온종일 붙어있으면서도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고 편지의 마지막엔 늘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라고 적었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이제는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정선이 문득 꿈에 나타나자 한동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베란다 창문 앞에 섰다.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유리창을 투과해 얼굴과 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밤새 내린 눈으로 거리는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지붕 위에 뽀얀 눈 모자를 쓴 자동차들이 조심조심 도로 위를 지나는 모습을 바라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정선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선을 마지막으로 본 건 정선의 결혼식에서였다. 졸업 후 나는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했고 정선은 아버지가 하시던 핸드폰 대리점 일을 도왔다. 그곳에서 정수기 물통을 교체하러 오던 생수회사 직원과 결혼을 했다. 정선이 스무 살 생일을 갓 지난 때였다. 다음 해 정선이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를 가고 난 뒤에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통화의 말미엔 여전히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라고 했지만 그 뒤로 다시는 정선을 만날 수 없었다. 정선이 남편의 도박 이야기를 얼핏 꺼낸 적은 있었지만 그 결혼생활이 어떠했는지 정선이 죽기 전까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정선이 결혼 후 지나고 있던 그 두려움과 고통의 길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기대와 흥분에 사로잡혀 내 앞에 놓인 새로운 길을 걷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래도록 나를 깊은 자책과 우울에 잠기게 했다.
하얀 드레스와 베일 사이로 보이던 정선의 익숙한 손이 떠오르자 나는 그냥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창문에 하얀 김이 올랐다 사라졌다.
그때 현관 벨이 울렸다. 화면 너머로 까만 단발머리에 쌍꺼풀이 짙은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고 서 있었다. 이 아파트 4층에 사는 동대표였다. 그 여자는 불쑥불쑥 “동대푭니다아“ 하며 벨을 누르곤 했는데 엘리베이터 교체나 경비원 교체 등 주로 무언가의 교체에 대한 안건들을 가지고 동의서를 받으러 올라오곤 했다. 나는 어차피 세입자라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여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사인을 하고 이따금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여자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길고양이가 너무 많아서요. 특히 저 쪽문 쪽 아시죠? 그쪽에 사람이 없으니까 새끼를 어마어마하게 낳고. 애들이 무서워하기도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에 민원도 많아서요”
장황한 이야기의 끝은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여자는 길고양이가 자력으로 먹이를 구해야지 이렇게 하면 생태계 교란이 일어나 큰일이 난다며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훗 하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다 이내 겸손한 표정으로 가다듬고 현관문 손잡이를 다시 당기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닫힌 문 사이로 ‘고양이들 다 죽여버리던가 해야지’라는 여자의 말이 어렴풋이 들렸다.
한겨울의 해는 짧았고 주말의 해는 더 짧게 느껴졌다. 나는 집에서 입던 옷 위에 발목까지 오는 패딩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차가운 공기에 볼살이 ‘악’ 하고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 맥주 한 캔, 구이맨 등을 사고 아파트 쪽문으로 바로 통하는 오솔길 쪽으로 향했다. 사람이 없는 길이라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길이었지만 한겨울 저녁의 바람은 너무 차가웠고 가늘던 눈발이 다시 굵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짱을 낀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다 의류 수거함 뒤쪽에서 또렷한 불빛 몇 개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아 조심스레 불빛을 비추자 까만색 고양이의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는 등을 한껏 웅크린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조심스레 한발 다가서자 그제서야 엉덩이를 높이 들며 금방이라도 도망갈 자세를 취했다. 그때 까만 고양이 옆으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새끼 고양이의 눈은 계란의 난각막 같은 것으로 뿌옇게 덮여 있었고 고름 같은 것이 달라붙어 제대로 뜰 수 조차 없어 보었다. 봉지에서 구이맨을 꺼내 작게 부수어 고양이 앞에 놓았다. 추위에 이빨이 달달 떨렸다. 나는 빨개진 손을 주머니에 다시 찔러 넣고 걸음을 옮기며 다시 고양이 쪽을 돌아봤다. 어둠이 내린 하얀 눈밭에 새끼의 몸을 핥으며 구슬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어미 고양이의 얼굴에서 어디서 본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경계와 당부, 안도와 염려가 복잡하게 그려진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집으로 뛰었다. 캔 안에 맥주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서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극세사 무릎담요와 참치캔, 후레쉬 등을 챙겨 나와 다시 고양이 쪽으로 서둘러 걸었다.
“1002호 아니세요? “
나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대표를 보고 하마터면 후레쉬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디 가세요?”
동대표는 내가 들고 있는 무릎담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 담요 좀 버리러 의류수거함에요 “
“아 이 밤에요?” 여자는 패딩점퍼의 모자를 다시 뒤집어쓰며,
“눈 많이 오는데 조심해서 가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동대표의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단지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고양이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렸다. 바람 탓인지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양이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었다. 하얀 눈이 오솔길 위로, 고양이의 까만 털 위로 애달프게 떨어져 소복히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