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야간 근무였다. 저녁부터 회색빛을 띠던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고 2월의 찬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있었다. 낮에 근무하던 인원이 모두 떠나면 나는 요양원을 한 바퀴 돌아보며 문단속을 했는데, 요양원은 3층 건물에 지하 1층이 있는 구조였다. 2층과 3층은 치매 노인들이 생활하는 곳이었고 1층은 사무실과, 면회실, 식당, 물리치료실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순찰을 도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지하 1층이었다. 지하에는 봉사자들과 어르신들이 공연과 관람을 할 수 있는 큰 강당이 있었고 기계실, 세탁실, 그리고 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곳이 있었는데, 시신 안치실이었다. 왜 요양원에 안치실이 있을까. 노인에게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노인의 부양을 포기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망한 노인의 시신은 안치실에서 하루에서 이틀을 보낸 후 요양원을 떠났다.
안치실에는 시신을 이동할 때 쓰는 가벼운 느낌의 은색 스테인리스로 만든 이동식 침대가 놓였고 한쪽 벽으로 시신 보관용 냉장고가 길게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지나가고 싶지만 순찰을 돌 때는 안치실 안을 꼭 확인해야 한다. 내가 일했던 요양원은 별도의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요양원은 출입구가 비밀번호로 봉쇄되어 있었지만 양로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은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다. 가끔 양로원에 계신 분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순찰을 돌 때 꽤 꼼꼼하게 살피는 편이었다.
안치실 안은 냉장고를 가동하지 않을 때도 이상하리만치 차가웠다.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사람은 상상만으로도 주변 온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강당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며칠 전 강당 화장실에서 한 노인이 발견된 터였다. 밖에는 바람이 더 거세어진 것 같았다. 기계실 한쪽 벽면에 높이 설치된 작은 창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강당 출입구 문은 음악 공연 등의 소리가 내어나가지 않도록 크고 두꺼웠다. 방음처리가 된 문이었다. 문을 열자 낡은 경첩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훅하고 마른나무 냄새가 밀려왔다. 강당은 바깥과 마주한 한쪽 벽면에만 큰 유리창이 있었는데, 강당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놓았다. 이 암막 커튼은 노인들이 영화 관람을 할 때에는 요긴하게 사용되었지만 밤이 되면 강당을 칠흑 같은 암흑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강당에는 이십여 미터의 텅 빈 공간과 그 너머에 바닥보다 30센티미터 정도 높은 나무로 만든 무대가 있었고 그 위에 나무 단상이 놓여 있었는데, 순찰을 돌 때는 암막 커튼이 만든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구를 알리는 플라스틱 안의 작은 전구가 내비치는 엷은 빛이 나의 수정체가 모을 수 있는 빛의 전부였다. 내 작은 홍채는 안간힘을 다해 동공을 키웠다. 망막에 연결된 시신경들이 뇌에 정보들을 전달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어둠 속에서 사물의 윤곽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그는, 아니 그들은 허공 속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처음에는 희미한 형상이었는데,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 모양이었다. 여덟 개의 얼굴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몸은 없었다. 얼굴만 보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잘 못 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나는 잘 못 본 것이 아니란 것을 금세 알았다. 여덟 개의 얼굴들은 더 선명해져서 옅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예수님을 떠올렸다. 나는 교회에 꾸준하게 다니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기도문을 애써 떠올렸는데 놀란 마음 때문인지 끝까지 기억나지 않았다. 온몸에 한기가 들었고 이마 위쪽으로 머리털이 모두 사라진 느낌이었다.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나는 한쪽 눈만 살며시 떴다. 그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어둠 가운데에서 여덟 개의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저한테 왜 그러시는데요?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을 노려봤다. 그런데 처음 본 얼굴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얼굴들. 한 사람 한 사람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분들을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ㅇ ㅇ 할아버지, ㅇ ㅇ 할머니…….
그분들은 모두 작년에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얼굴들이 알고 있던 분들임을 알아차린 후 내 공포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내가 씻겨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린 분들. 내 얼굴을 쓰다듬고 안아주시던 분들이었다. 살을 부대끼며 함께 지냈던 분들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이분들이 왜 내 앞에 나타난 건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분들에게 무어 잘못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수 있을 것이었다. 많은 노인들을 살펴드려야 했기에 부족했을 것이고 빠트린 일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저승에서 다시 돌아올 정도로 내가 잘못을 했단 말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어르신들과 지냈던 일들을 빠르게 떠올렸다. 역시 못 해 드린 일들이 생각났다. 나는 여덟 개의 머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가. 그때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내 눈동자가 새로운 형상들을 담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얼굴 주위로 사각의 테두리가 보인 거였다. 나는 얼굴들에게 다가갔다. 금세 상황 파악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노인들의 얼굴 아래로 검은색 보자기가 있었고 보자기는 책상을 덮고 있었다. 보자기 위에 세워진 것은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이었다. 그제야 내일이 작년에 돌아가신 분들과 가족들을 위한 추모예배 날이란 것이 떠올랐다. 잠시 동안이지만 예수님을 찾고 내 죄를 탐색한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여덟 분의 얼굴들을 찬찬히 바라봤다. 모두 빙그레 웃고 계셨다. 영정 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당을 나와 3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에 ‘전설의 고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내레이션이 생각난다. 요즘 젊은 분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이 프로그램에는 각종 괴수와 귀신들이 등장했는데, 꼬리 아홉 개가 달린 구미호, 천 년에서 일 년이 빠지는 구백구십구 년을 살아온 곧 용이 될 이무기, 사람을 잡아먹는 지네, 밤에 사람이 손톱을 깎으면 그 손톱을 먹고 손톱 주인 흉내를 낸다는 쥐(나는 아직도 밤에 손톱을 깍지 않는다)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공포를 주는 귀신이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귀신, 화장실을 갈 때면 꼭 엄마를 깨우게 만들었던 귀신, 바로 처녀 귀신이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긴 머리카락에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입가에는 피를 묻힌 상태며 항상 울고 있었다. 흐~흐~흐~(웃는 것 아님). 나는 지금도 처녀 귀신이 무섭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는데 누군가 처녀 귀신의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서있었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한 처녀 귀신은 억울함이 뼛속에 사무쳐 그리 나타난 것인데 뉴스에서 처녀 귀신 흉내를 내는 그녀는 그리 억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나는 사람도 귀신도 무섭지만 사람 같은 귀신보다 귀신같은 사람이 더 무섭다.
그 밤에 여덟 개의 영정 사진이 계속 생각났다. 해프닝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떠올렸던 그분들에게 못 해 드린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내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꾸준히 생각하는 편인데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내 삶의 마지막이 후회 없기를 바라고 내 죽음의 순간에 웃으며 죽기를 바랐다. 나에게만 집중된 생각이었다. 그동안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상대방에 대한 후회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못 해 준 것, 좀 더 찬찬히 살펴봐 줄 걸 하고 돌이키는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더구나 삶의 마지막을 살고 있는 치매 노인들에게는 오늘 밤이 마지막일 수 있으니까.
저승에서 돌아온 여덟 개의 얼굴과 마주하며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후회할 일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을 테니까.
나는 주기도문을 다시 외우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줄줄 말할 수 있도록. 효과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