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OST STORY2

감자조림을 보고 그녀가 울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by 고재욱

점심시간에 감자조림이 반찬으로 나왔다.

나는 스스로 수저를 못 잡는 어르신께 식사를 드리는 중이었다. 옆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반찬 집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보였는데 감자조림을 드시지는 않고 뒤적거리고만 계셨다. 나는 얼른 그분의 수저에 감자 조각 하나를 올려드렸다.

할머니는 감자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감자를 좋아하시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강원도에 감자가 흔해서 너무 많이 드시다 보니 지겨워진 것 아니냐고 나는 덧붙였다.

할머니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집었던 감자 조각을 내려놓은 할머니가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 아이 생각이 나서 그래. 4살 때 죽은 막내아들…….

40년 전쯤의 일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다섯 아이 밑으로 막둥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할머니는 40대 초반이었다.

큰 애들이 학교에 가면 그녀는 동네 밭에 가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4살 아들도 늘 함께였다.


엄마가 밭고랑에 앉아 일을 할 때면 아기는 엄마 옆을 멀리 벗어나지 않고 흙장난을 하며 지냈다. 아기와 함께 밭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여섯 명의 아이들을 기르는 일은 소작농인 남편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꼬물거리던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그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밭일 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 그녀는 웬일인지 밭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쯤 쉬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돌아올 아이들의 월사금(다달이 내는 학교 수업료)이 생각났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작은 신발이 눈에 밟혔다. 4살 막둥이가 마루에 누워 빤히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호미를 손에 쥐었다. 포대기에 쌓여 엄마 어깨를 더듬거리는 작은 손이 따듯했다.


며칠 전 씨감자를 심었던 밭이었다. 당시에는 밭에 비닐 피복 작업을 하지 않았다.(두둑을 검정 비닐로 덮는 것) 오늘 할 일은 두둑과 고랑에 난 잡초를 뽑는 일이었다. 감자는 벌써 땅 위로 싹이 솟아 있었다. 그녀는 고랑에 비료포대를 깔고 아기를 그 위에 내려놓았다.

멀리 연산(連山)을 따라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에서 나타난 새들이 무리를 지어 허공을 쥐락펴락하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4월 초순의 강원도 고지대 날씨는 선선했지만 그녀의 이마에서는 땅방울이 쉬지 않고 흘렀다. 평소에도 성실한 그녀였는데 오늘은 더 쉬지 않고 일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기 때문에 일이 더디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머리에 큰 대야를 올린 밭주인이 나타나고서야 그녀의 손이 멈췄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비닐 포대위의 아기를 쳐다봤다. 아기는 심심해서인지 엎드린 채 잠이 들어있었다. 그녀가 아기를 깨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무릎에서 벽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엎드린 아기의 몸을 돌렸을 때, 그녀는 너무 놀라 아들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의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달려왔다.

아기의 얼굴은 창백했다. 입술은 파랗고 입은 하얀 거품으로 덮여 있었다. 사람들이 아기를 둘러싸고 있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아들의 이름을 되뇌기만 했다. 그녀의 두 손은 멈추지 않고 떨고 있었다.


밭주인이 씨감자를 심기 전에 감자 눈 소독을 위해 농약을 뿌리 것이 원인이었다. 농약이 묻은 감자를 땅에 심었고 감자 싹이 나왔을 때에도 농약은 사라지지 않고 싹에 고스란히 묻어있었던 거였다. 땅에서 솟아 나온 싹이 신기했던 아기는 그걸 꺾은 후 입으로 가져가서 먹었는데, 아이가 먹은 싹은 농약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아기가 감자 싹을 먹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마저도.


막둥이가 죽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오늘 죽은 아기의 모습이 어제의 살아있던 아기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기를 멍석에 말아두고 하루를 기다렸다. 막내아들이 살아날 것만 같았다. 이틀 후 막둥이는 앞 산 햇살 잘 드는 곳에 묻혔다. 그게 끝이었다.


밭주인은 씨감자에 농약 묻히는 것도 모르냐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들을 죽인 당사자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을 한다며 아들이 거품을 물고 죽어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막둥이와 함께 죽기로 작정했다. 보름을 굶었다. 정신을 놓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의 주위에 다섯 아이들이 모여서 울고 있었다.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아이들마저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막둥이가 못 받은 사랑을 이 아이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녀는 딸 넷, 아들 하나, 다섯 아이들을 기어코 지켜냈다.




안구 건조 증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 할머니의 마른눈이 촉촉했다.

나는 감자 싹을 먹고 속이 타들어가던 네 살 사내아이를 생각했다.

네 살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의 마음과 남겨진 다섯 아이를 생각했고 감자조림을 보며 40년 전 막둥이를 떠올리는 할머니의 젖은 눈을 생각했다.


나는 감자조림 대신 숙주나물을 할머니의 수저에 올렸다.

할머니는 숙주나물이 아삭하게 잘 삶겼다고 딴청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살아온 분들에게는 반찬 하나에도 눈물이 스며있구나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눈물을 나는 못 본 척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감자조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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