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어새를 보지 못 했는데, 자주 저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보며 저어새는 그녀를 닮았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할머니는 늘 저어~ 라며 말을 시작한다.
- 저어~ 물 좀 주세요.
- 저어~ 어디 가서 밥 한술 얻어먹을 데 없을까요?
- 저어~ 신발이 없어졌는데.....
- 저어~ 난 돈이 하나도 없어요.
그녀는 매 끼니를 걱정하고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신발을 찾았고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해 줄 돈을 걱정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그녀의 친자식이 아니었다. 아들 둘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자신의 자식을 낳지는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먼저 죽고 그녀가 아이 둘을 길렀다고 했다. 할머니의 기억으로는, 그녀는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에도 가난했고 요양원에 온 이후에도 가난하다.
한 달에 두어 번쯤 장성한 손자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나는 할머니와 그녀의 손자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손자의 얼굴이 할머니를 닮아있음을 보았다.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그들은 가족이었다.
그녀는 손자가 가지고 온 덧버선 다섯 개를 세고 또 세었다. 검은 바탕에 금색 꽃무늬가 있거나 살구색 천 위에 붉은 수가 놓인 덧버선 다섯 개를 할머니는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중 하나를 세탁했다. 근심을 숨기지 않고 그녀가 말했다.
- 저어~ 내 신발(덧버선)이 하나 사라졌는데.....
세탁 중이니 곧 갖다 드리겠다는 대답에도 할머니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 저어~ 신발을 찾아야 하는데.....
그녀는 지나는 모든 이에게 하소연했다. 세탁이 끝나고, 건조기가 돌기를 멈추고, 그런 다음에야 덧버선은 돌아올 것이었다. 두어 시간 동안 할머니의 걱정은 계속되었다.
치매 환자의 기억법은 다소 이기적이다. 어떤 기억은 칠팔십 년이 지나도 선명했다. 근 백세에 가까운 노인들이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그들은 일제강점기를 떠올렸고 6.25 전쟁에서 죽은 오라비를 기억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는 그들 중에는 자녀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노인도 있다.
가까운 기억은 사라지고 먼 기억이 선명한 치매 환자의 기억법은 원시의 눈동자 같다. 원시는 원거리 사물보다 가까운 사물의 초점이 더 흐려 보인다
나는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는데, 먼 것도 잘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서는 노안이 시작된 것 같다.
저녁 여덟 시가 가까워지면 요양원의 평균 나이에 비춰볼 때 젊은 피에 속하는 육십 대 초반의 남자를 내 옆으로 모셔온다.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배회가 심한 환자였다. 다른 노인들은 모두 잠자리에 든 상태이기 때문에 그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른 사람의 잠을 깨우지 못하도록 내 옆에 붙들어놓기 위함이다.
남자와 나의 대화는 간결하다. 우리 대화는 5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리셋된다.
그가 엉덩이를 들며 내게 말한다.
- 어유, 집에 갈게요.
- 여덟 시에 약 드릴 거예요. 여기 앉아 계세요.
그가 답한다.
- 지금 몇 신데요?
내가 말한다.
- 일곱 시 삼십 분이에요.
그가 고개를 들어 복도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를 힐끗 본다. 그가 다시 말한다.
- 어유, 삼십 분이나 기다리라고. **(별이라고 쓰고 18이라 읽는다.)
- 어르신! 욕은 하시면 안 돼요.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 욕 안 했어요.
시간이 5분쯤 지난다.
그가 엉덩이를 떼며 내게 말한다.
- 어유, 집에 갈게요.
나는 시계를 한번 보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말한다.
- 여덟 시에 약 드릴게요. 앉아 계세요.
그가 덤덤하게 묻는다.
- 지금 몇 신데요?
나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 일곱 시 삼십 오분입니다.
그가 고개는 들지 않고 눈동자만 치켜떠서 시계를 본 후 말한다.
- 어유, 그럼 이십 오분이나 기다리라고. **(별이라고 쓰고 이번에는 19라고 읽자.)
- 어르신! 지금 욕하신 거예요?
그가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 욕 안 했어요.
이런 내용이 5분 간격으로 반복된다. 우리는 다음 대화의 내용을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끝없이 대화를 지속할 수도 있다.
남자의 기억은 5분을 넘기지 못하지만 그는 자신의 대학 전공을 기억한다. 국어국문학과였다. 남자는 5분 동안 매번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인가. 그가 국문학도였던 기억은 끝내 남을 것이다.
덧버선을 돌려받은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잠을 청한다.
할머니는 하루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손자가 주고 간 덧버선은 일주일이 지나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손자만은 끝까지 기억할 것이다. 치매라는 지우개가 그녀의 머릿속을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치매 환자의 기억은 저어새 같다.
보호받아야 하고 소중하다는 점에서 치매 환자의 기억과 저어새는 다르지 않다.
저어새는 멸종위기종이며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05호이다.
(커버 사진: IanZA,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