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ST STORY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욱 Jan 14. 2020

하루가 너무 지겹다.

왜라고 물어주기를 바라며,

병이 또 도집니다. 오늘은 쉬는 날인데요, 자꾸 회사 생각이 납니다. 제 회사는 요양원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시죠. 인지 장애를 앓고 계신 노인들입니다.

하루만 쉬고 출근을 해도, 보고 싶었다고 우시는, 아니 우는 시늉을 하는 할머니가 계시고요, 내일은 쉬는 날이라고 말씀드리면 아쉬움의 눈빛을 보내는 50대 반의 환자도 있지요. 오늘은 53세의 남자, 이분에 대해 쓰고자 합니다.


쉬는 날이라 늦잠을 잤어요. 열한 시쯤 일어났습니다. 싱크대를 채운 그릇, 냄비를 씻었고요, (혼자 사는 남자에게 설거지는 늘 곤욕입니다. ㅠ.) 청소기를 돌리고 밀린 빨래를 하다 보니 훌쩍 하루가 지납니다. 왜 하루의 시간이 자꾸만 짧아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


요양원에 다소 젊은 나이, 53세의 환자가 있습니다. 파킨슨병으로 근육 위축이 진행되는 중입니다. 물을 마실 때는 연하곤란 환자를 위한 점도 증진제를 물에 타야 해요. 시도 때도 없이 역류성 식도염이 주는 불쾌감을 느껴야 하죠.

저와 다섯 살 차이인데요 이 분은 저에 비해 무척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제 퇴근 시간이 가까웠을 때 제가 물었어요. 요즘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데 어르신(노인들을 부르는 호칭은 요양원마다 다른데 이곳은 나이에 상관없이 어르신으로 통일했어요)의 하루는 어떠냐고요. 저는 곧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후회했지만 젊은 어르신은 덤덤하게 대답했어요.

- 지겹다고. 하루가.

나이가 드는 것을 느낄 때쯤에야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데 어르신은 아직 젊어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저는 너스레를 떨었어요. 그분은 웃으셨지만 리액션이 분명했어요. 전 상대방의 눈빛으로도 그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있거든요.


그는 카센터를 운영했던 정비공이었어요. 파킨슨병은 치매와는 다른데요.  주로 진전(震顫, 떨림), 근육의 강직(剛直) 그리고 몸동작이 느려지는 서동(徐動) 등의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입니다.(서울대학교 파킨슨센터)

그는 일상의 불편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병의 증상을 느껴야 합니다. 치매 못지않게 무서운 병이죠.

그럼에도 그는 생을 포기하지 않아요. 휠체어에 앉아서 복도에 길게 설치된 나무봉을 잡고 일어섰다 앉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침대에서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 운동을 위해 바지 단을 잡고 무릎을 세운 후 허리를 움직이는 운동을 합니다. 그는 파킨슨병으로 인해 생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에겐 매주 일요일, 그를 집으로 초대하는 부인과 아들, 딸, 두 명의 자녀가 있으니까요.


그랬던 그가 말합니다.

- 하루가 너무 지겹다.

저는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어요. 그는 아프지만 잘 적응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생각일 뿐이었죠. 그는 고통받고 있었던 거예요.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요. 손이, 발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온몸을 내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하루하루가 어떨까요. 그런 분 앞에서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고 말했으니까요.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근육이 위축되어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은 팔, 다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에요. 몸속 장기까지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분은 위, 식도, 혀까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다른 직원들은 이 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분의 말뜻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요, 이 분 말의 통역사인 저도 사실은 말을 듣기보다 이 분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거든요. 대부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요, 이분과 대화를 시도하던 다른 직원들의 S.O.S가 제게로 향하는 이유이죠. 젊은 어르신의 통역사가 바로 저랍니다.


하루가 지겹다는 그의 말이 내내 생각났어요. 그의 하루가 어떨지 복기해봤어요. 열두 시간쯤 잠을 자고 아침 식사, 오전에 한 시간 가량의 매일 바뀌는 프로그램, 붓글씨 쓰기, 색종이 붙이기, 이야기 듣기 등, 이 끝나면 텔레비전, 그러고는 시간이 지나면 점심 식사,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한 시간 동안의 물리치료나 목욕을 제외하면 텔레비전 보는 것이 다인 하루였어요. 하루가 지겹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생활. 뭔가 잘 못 된 거지요.


선진국에선, 잠깐만요, 우리나라도 선진국인가요? 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네요. 언제나 스스럼없이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외칠 수 있을지.

다시,

선진국에선, 그러니까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인지증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데요,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호 서비스입니다. 이 말은 노년의 인지증 환자들이 가정에서 보호를 받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전반에 인지증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는데요. 일본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거리에서 인지증 환자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분들을 부르는, 어리석고 우둔한 뜻인 치매환자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길에서,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인지증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아마도 그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란, 인지증 환자란,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늙어가고 있고 지금 노인들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란 건 생각하지 않고 말이죠.


선진국에도 요양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요양원이 있고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요양원은 제 일 목적이 사회 복귀이고요.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아닌 모양이지만 요양원도, 노인을 맡긴 보호자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죠. 존댓말은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우리말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에 경로우대석이 있는 나라, 피곤한 다리에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인데요, 이런 나라에서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자녀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속상할까요. 왜 일본 자녀들은 인지증 환자인 부모를 가정에서 보살피는데 우리나라 자녀들은 요양원으로 보내는 걸까요. 우리나라의 효(孝) 정신이 사라진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지증 환자를 위한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인지증 환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인지증 환자를 대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일본의 지역 커뮤니티는 늙음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인지증 환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그 예로 요양원이 늘고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원주에도 올해 중순 200인을 수용할 수 있는 요양원 두 곳이 문을 열 계획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조금의 도움만 필요한 인지증 환자인 노인을 위한 방문 서비스, 재가 서비스를 4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했어요. 8시간 보호를 하는 주간보호서비스 센터는 대기자가 줄을 섰고요. 견디다 못한 인지증 환자의 보호자들이 요양원을 찾습니다. 요양원에는 요양원에 어울리지 않는 초기 인지증 환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가 지겹다고 합니다. 요양원의 하루가 지겨운 노인들은 늘어가는데, 요양원의 서비스 몇 년 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연일 뭔가 실적을 발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53세의 그는 말합니다.

하루가 너무 지겹다고. 삶이 너무나 지겹다고.


* 이 글에 등장하는 어르신의 나이를 제가 헷갈려서 잘못 적었습니다. 이에 바로 잡았습니다.

57세 ------> 53세.




매거진의 이전글 텅 빈 침대에 앉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