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삑-삑-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띠리링~ 문이 열리면 노인은 두 무릎에 마른 손을 올리고 그 힘으로 굽어진 허리를 곧게 세웠는데, 몸을 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은 듯이 입에서 으, 으 소리를 냈다. 그 몸을 일으키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고 겨우 선 상태에서 노인은 문을 바라보았는데 그동안에 문은 다시 닫혀버렸다.
노인의 얼굴은 동그라미를 닮았다. 노인이 걸음을 옮길 때는 두 허벅지 옆으로 쭉 편 손바닥을 가로로 붙인 모습이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다리에 힘이 없었고 손바닥으로 중심을 잡는 것처럼 뒤뚱뒤뚱거렸다.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보고 다른 노인들이 펭귄이라 놀렸지만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뚱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식사할 때를 빼면 노인은 항상 출입문 옆 긴 의자에 앉아있었다. 노인의 지정석은 문과 가까운, 의자의 가장자리 끝이었다. 출입문이 열리면 상기된 표정의 노인이 일어났고 문이 닫히면 실망한 표정의 노인이 앉았다.
노인은 치매를 앓고 있었고 느리지만 홀로 거동은 가능한 상태였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었지만 현재는 한 시간 정도를 기억할 뿐이었다. 매일 보는 직원들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한 요양원 직원이 의자에 앉아 문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시려고요?"
두 무릎에 손바닥을 붙이고 언제라도 일어날 준비를 마친 노인이 말했다.
"아들에게…… 가야지…… 아들한테……."
노인에게는 단 한 명의 자식이 있다고 했다. 노인의 아내는 그 아들을 낳다가 노인의 곁을 떠났다. 노인은 홀로 아들을 키웠다고 했다. 노인은 아들 자랑이 대단했는데, 마치 자랑할 것이라고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 무표정한 노인이었지만 다른 노인들에게 아들 자랑을 할 때는 신이 나는 표정이었다. 두 명 있다는 손자들 얘기까지 나오면 노인의 얼굴에 더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근래에 노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는데, 그 아들의 걸음이 딱 끊겼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하루의 대부분을 문 옆에서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씨는 오늘도 술을 마신다.
사각형 유리창 칸칸이 붙은 메뉴를 알리는 서툰 글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희뿌연 담배연기 피어나는 좁은 술집에서 찌그러진 주전자를 기울이는 사내들의 대화가 바람벽 여기저기에 부딪쳤다. 그 왁자지껄 속에서 고개 숙인 이 씨의 모습이 담배연기 속에서 흔들렸다.
아침나절 들었던 아내의 푸념이 그림자가 되어 그의 발밑에 걸려있었다.
‘애들 학원 비, 새 교복, 월세는 또 어쩔 것이냐. 돈…… 돈…….’
이 씨는 입술을 깨물고 허연 막걸리가 담긴 술잔을 들이켰다. 내일이면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사장 반장의 말이 가슴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 씨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문득 술잔 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허겁지겁 잔을 비운 후 어깨를 들썩였다. 이 씨는 아버지가 지내는 요양원에 일 년 가까이 돈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처럼 양복을 입었다. 넥타이를 매고, 나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조금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노인들을 만나며 수백의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내가 아니던가.
도둑이 들었다며 경찰을 부르는 할머니에게 나는 경찰관이었으며 자신의 방에 월세도 내지 않고 살고 있다며 함께 지내는 동거인을 괴롭히는 할아버지에겐 정확한 계약서를 내어주는 공인중개사가 되기도 했고 무조건 약을 내어달라는 한 할머니에겐 비타민 한 알로 모든 병을 고치는 뛰어난 의사로 변신도 가능한 나였다. 나는 꽤 유능한 연기자에 속했다.
한편으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매일 풀 죽어 있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고 나는 요양원 출입구 앞에 섰다.
사각의 무거운 문을 열면 노인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으, 으,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킬 것이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몸을 반쯤 일으키고 의례히 포기의 자세를 취하던 노인의 반쯤 감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입은 반쯤 벌리고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지도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네가…… 드디어 왔구나. 네가 왔어."
양복 입은 사내와 노인은 부둥켜안은 채 얼굴을 비비며 오래간만의 재회를 한참 동안이나 이어갔다.
사내가 돌아간 자리에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내가 앉았다. 역시 노인은 한 시간 전의 사내와 노인 앞에 앉은 한 시간 후의 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노인에게 물었다.
"좋으시겠어요. 아드님이 오랜만에 오셔서요."
잠시 노인은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 내 아들이 아냐."
나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고 물었다.
"네? 그럼 왜? 아들이라며 부둥켜안고 그러셨어요?"
노인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싱긋이 웃었다.
"젊은 사람이 안됐잖아. 무슨 병이 들었는지, 제 아비 얼굴도 잊고서 나를 아버지로 알고 그리 좋아하는데……. 어째 나는 네 아버지가 아니다 할 수 있나? 하지만 나 역시 우리 아들이 온 것처럼 좋았구먼."
노인을 속이는 일은 완벽하게 실패로 끝났다. 노인의 출입구 옆 자리 지키기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해 가을에 며칠 가쁜 숨을 몰아쉬던 노인의 침대가 텅 비어 버린 날이었다.
이 씨는 노인이 떠난 침대에 앉아서 한참을 떠나지 않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의 아픔의 깊이를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요양원 비용을 장기 체납하는 보호자가 종종 있다. 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되면 발걸음을 끊는 모습을 가끔 본다. 부모를 모셔놓고 제 때 비용을 지불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겠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인을 요양원에서 내보내지는 않는다. 하루빨리 천편일률적인 장기요양보험의 서비스가 현실적으로 더 세분화되어서 요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전에, 없는 것은 없는 대로 두고 있는 것이라도 보여야 한다. 자녀의 얼굴 말이다. 노인들은 그저 자녀들 얼굴만 봐도 좋아한다. 노인들에게는 오늘이 자식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