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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Aug 05. 2021

딱 하루지만, 널 사랑해

30년 만의 고백

 바싹 마른나무 사이에 놓인 종이상자, 중대장이 검지를 까닥거렸다. 가져와 보란 뜻이다. 참호 근처에 버려진 삼양라면 상자를 번쩍 들어 올리자 밑을 받치고 있던 종이가 아래로 꺼지며 뭔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흰 천에 돌돌 말린 그것을 본 사병들은 모두 작은 인형 같다고 했다.


 이십 대 후반의 중대장이 챙이 동그랗게 말린 모자를 벗으며 다가왔다. 크라운에는 다이아몬드 세 개가 흰색 실로 새겨져 있었다. 꺾은 나뭇가지로 그가 작은 인형을 쑤석거렸다. 인형의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한 뼘을 조금 넘길 것 같은 인형의 피부색은 파란 요정, 스머프 같았는데, 중대장이 흰 천을 막대기로 걷어내자 우리 부대원 모두는 금세 그것이 작은 인형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동계훈련 중이었다. 산길을 따라 지나가기만 하면 끝날 일이었다. 왜 나서서 뭔가 수상한 상자가 있다가 보고하고, 왜 상자를 집어 올리는 일을 자처했으며 발아래에 작은 주검을 나뒹굴게 한 것인지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곧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등에 큼직한 무전 장비를 짊어진 통신병이 중대장 곁으로 나섰다. 중대장은 말없이 눈만 끔뻑거렸다. 병사들은 어느새 저만큼 물러난 채 웅성거렸다. 나는 중대에서 최고 선임자였기에 그들처럼 물러날 수도 그 자리를 지킬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서 길 위로 솟은 죄 없는 나무뿌리만 차대고 있었다.


 키 큰 소나무 사이로 산 아래 자리 잡은 넓은 공장 지대가 보였다. 높은 굴뚝에서 흰 연기가 오르고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이 좁쌀처럼 보였는데, 움직임이 없어 벽에 걸린 그림 같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말 없는 중대장 옆에서 애써 고개를 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눈길이 자꾸 흰 포대기로 향했다.     


“그냥 묻어주자.” 중대장이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네? 신고 안 하고요?”

“고 상병! 여기 공장단지가 몇 갠 줄 몰라서 묻냐? 신고한다고 누가 버리고 간 건지 찾을 수나 있을 거 같아?”

“그래도…….”

“괜히 경찰서에 불려 다니기만 할 거야. 그냥 일 귀찮게 만들지 말자. 이건 명령이다, 묻어주고 와라.” 그가 모자를 고쳐 쓰며 등을 휙 돌렸다.     


 아기를 쳐다봤다. TV에서 보던 신생아보다도 훨씬 작았다. 중대장이 망가진 상자 밑부분을 지그재그로 겹쳐 빠지지 않게 한 후 돌돌 말린 천을 상자에 담아주었다. 상자 윗부분까지 덮은 그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턱을 까딱거렸다.


 좀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확 밀려왔다. 도저히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았다. 나는 탄약통을 드는 부사수를 불렀다. 화들짝 놀라서 손사래를 친 녀석이었지만, 선택지는 정해진 것이었다. 중대장의 재촉에 녀석은 엉거주춤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수와 부사수로 만난 우리는 M60 총과 탄약통 대신에 삼양라면 상자를 양쪽에서 들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다녔다. 또 빠질 것 같아 한 손으로 밑을 받친 채 느릿느릿 움직인 탓에 중대장과 다른 병사들은 이미 하산을 시작한 상태였다. 둘밖에 남지 않게 되자 우리는 더 말이 없어졌다. 어서 이 일이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오래된 소나무 아래 풍광이 확 트인 곳을 발견했다. 햇볕도 잘 드는 곳이었다. 우리는 상자를 내려놓고 야전삽을 들었다. 하지만 땅은 쉽게 파지지 않았다. 삽을 찔러 넣을 때마다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마치 그 소리가 계곡을 따라 마을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거기에 조금 땅을 파자 실핏줄처럼 퍼진 뿌리가 삽에 걸려서 일은 더디기만 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온몸이 땀으로 젖은 후에야 겨우 상자가 들어갈 만한 땅을 팔 수 있었다.     


 녀석과 한쪽씩을 잡고 상자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그만 상자 아래쪽이 찢어져 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하지만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느껴졌고 천은 바람결에 뒤집히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펄럭이며 구덩이로 들어갔다. 우리는 빈 상자를 들고 얼어붙은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더 긴 숨을 내뱉었다.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저 작은 몸을 라면 상자에 넣고 땅에 파묻다니, 불현듯 화가 치밀었다. 작은 주검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두려움보다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삐삐로 연락하던 시절, 더군다나 여긴 군대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뭇가지 두 개를 꺾었다. 말라붙은 칡넝쿨로 나무를 엇갈려놓고 십자가 모양으로 꽁꽁 묶었다. 작은 몸만큼이나 낮은 무덤 앞에 십자가를 세워두고 작은 영혼이 어디 길 잃지 말고 잘 돌아가기를 빌고 빌었다.

먼 산에 노을이 지고 있었고, 나무 사이 어디엔가 산 비둘기가 다섯 음절로 쉼 없이 울고 있었다.


 제대하기 전 산불 예방 작업을 위해 근처를 지난 적이 있었다. 파랗게 새순이 돋아난 산은 낮고 작은 동산쯤은 어렵지 않게 감춰버렸고 다시는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봄이 되고 나는 전역을 했다. 한 번씩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세월이 지날수록 아기의 얼굴은 엷어지기는커녕, 3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기가 된 노인들의 마지막을 지킬 때였다.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의 죽음 앞에서 이상하게 그 작은 얼굴이 생각났다. 한 노인이 내게 마지막 미소를 건넸을 때였다.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작고 푸른 스머프 요정이 떠올랐고 어쩐지 녀석의 표정이 웃는 것만 같았다.          



 ‘명령 불복종으로 혼이 나더라도 용기를 냈어야 했는데, 널 그렇게 보내서 미안하구나.

그때 천을 벗기고 네가 남자인지 여자 아기인지 확인이라도 할 걸 그랬어.

아가! 네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널 잊지 않을게. 죽을 때까지 널 기억할게.

딱 하루 만났지만, 널 사랑해.’     



 가끔 산에서 멧비둘기 소리가 들리면 먼 산을 보게 되는데, 노을이라도 지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두 눈이 뜨거워진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어떠한 조건 없이.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 자료(2019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영아 유기는 1272건, 영아 살해는 110건이 발생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갓 태어난 아기가 살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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