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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Jun 24. 2020

진한 그리움만 피고 지고

개나리와 진달래

양평 오일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로변엔 고추, 상추, 토마토, 쑥갓, 호박 모종이 새초롬한 모습으로 작은 용기에 담겨 주인을 기다렸고 실핏줄 같은 좁은 골목에는 하얀 연기를 올리며 수수부꾸미, 배추전이 고소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텃밭에 심을 고추 모종을 사기 위해 시장에 온 터였다.


내 직장은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서 문을 닫은 시골 초등학교였는데, 그 당시에 나는 그곳에서 야영객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고 있었다. 토종닭 백숙, 민물 매운탕, 메뚜기볶음이 주메뉴였다. 가마솥과 장작불, 그리고 최고의 재료인 자연이 있어서 음식 장사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야영객이 떠난 후의 무료한 시간이었다. 내게는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잠시 손을 놓을라치면 망한 사업과 얼마간의 빚과 사람들의 비릿한 눈초리가 나를 덮치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몸을 혹사해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할머니께서 삼양라면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본 상자 안에서는 강아지들이 꼬물거렸다. 손바닥만 한 녀석들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께서 말했다.

“발바리 새낀데, 이게 잡종이라도 아주 영리하구먼.”

내가 손을 내밀자 한 녀석이 볼펜 심지 같은 작은 꼬리를 흔들며 손가락 끝에 매달렸다.

“얼마예요?”

“5천 원.”

주먹만 한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도 신기했지만 녀석이 그 작은 입으로 손가락을 물고 핥고 하는 게 너무 이뻤다. 나는 작은 속옷 상자에 녀석을 받아 들고 애견용품점으로 향했다. 딸랑 강아지만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목줄은 얼마예요? 만 원이요, 사료는? 팔천 원이요, 아! 맞다. 개집은? 만 오천 원이요, 저기 샴푸는요? 그것도 팔천 원이요…….

점원은 천 원을 깎아주고 천 원짜리 간식 몇 개를 챙겨주었다. 녀석의 몸값은 5천 원이었는데, 녀석을 위한 용품 비용이 4만 원이라니. (사실 녀석이 아니고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개나리라고 지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앞산에 개나리가 많았던 것이다. 할머니의 설명처럼 나리는 정말 영리했다. 현관 앞에 나리의 집을 두었는데 집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고 항상 현관에서 내 신발을 깔고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나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잘 알고 있었다. 배변에 한 건 말할 것도 없다.


발바리 종류라던 나리는 발바리라고 하기엔 털이 곱슬곱슬했다. 나리를 본 야영객들은 푸들 같다고도 했고, 요크셔테리어 같다고도 했는데, 내게는 그냥 나리였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 자주 양평 시내에 나갈 수 없어서 나는 녀석의 털을 직접 깎아주었는데, 그 때문에 녀석의 모습은 갈수록 발바리도 푸들도 요크셔도 아닌 아주 독창적인 종으로 변해갔다.      


산불 감시원으로 일할 때였다. 펜션을 관리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는 펜션이었다. 나는 가끔 말을 구경하러 가곤 했는데, 그곳에는 말 외에도 개가 많았다. 전부 진돗개였다. 수놈 진돗개는 우수품종으로 상을 받은 적이 있고 번듯한 족보도 있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펜션을 방문했을 때 개의 수가 늘어있었다. 진돗개가 새끼를 낳은 것이었다.

“한 마리 가져가렵니까? 진짜 순종 진돗갭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가 다시 말했다.

“다 분양이 정해졌는데 딱 한 마리가 남았어요. 저 어미 개들은 보통 애들이 아니에요. 펜션 주인이 서울에서 이름난 사업가라 아주 완도까지 가서 데려온 애들이라니까. 내, 주인 몰래 하나 드릴 테니 잘 키워봐요. 시골 생활이 심심할 텐데.”

나는 그만 그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 길로 녀석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와버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무릎을 쳤다. 개나리가 이미 있으니 다음 이름은 분명했다. 녀석은 이제 진달래가 되었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리와 달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살가운 나리와 달리 달래는 나를 보고도 본체만체였다. 꼬리를 흔들었지만 그뿐이었다. 핥지도 달려들지도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달래는 묵직했고 나리는 가벼웠다.


가끔 양평에 나가 족발을 사 오면 녀석들에게도 하나씩 던져주었는데, 나리는 집 근처 땅속에 먹다 남은 뼈를 감추었고 달래는 귀신같이 그 뼈를 찾아냈다. 으드득 소리를 내며 뼈를 부숴 먹는 달래 옆에서 나리가 앙칼지게 짖어보지만 소용없었다. 이상한 건 그렇게 먹성 좋은 달래지만 야영객들이 던져주는 삼겹살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고기는 냉큼 달려온 나리 차지였다. 달래는 쪼그만 바위 같았다. 함께 지낼수록 옆에서 치근대는 나리보다 달래가 편하기도 했다. 달래는 곁을 지킬 뿐 귀찮게 한 적이 없었다.


일 년쯤 지나자 달래는 제법 어른 티가 났다. 주먹만 한 앞발, 떡 벌어진 어깨, 녀석이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점점 달래가 진짜 진돗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는 이름만 진돗개인 잡종 개들이 많았다.


그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나는 일자리를 찾아 산골 마을을 떠나야 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얼마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리와 달래를 데려온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후회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녀석들을 맡아줄 곳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나리는 붙임성이 좋아 어디라도 걱정이 없었지만 달래가 문제였다. 처음엔 낯설어도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그래 봐야 짐승인데 밥만 주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리는 동네에 있는 교회 목사님이 맡아주기로 했다. 교회는 넓은 부지가 딸려있어 나리에게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나리는 잘 살 것이다. 하지만 달래까지 교회에 맡길 수는 없었다. 교회에는 이미 몇 마리의 큰 개들이 교회 옆 소나무에 매여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녀석들을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것이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그런다는 것이다. 각자 다 사정이 있을 테지만 달래를 거기에 맡겨 결국 사람들에게 잡아먹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동네 부녀회장님이 달래를 키워주기로 했다. 절대 먹지 않고 먹이기만 하라는 당부를 수없이 드렸다. 달래와 녀석의 집을 부녀회장님 댁으로 옮기고 돌아서는데, 녀석은 짖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물끄러미 나를 보기만 했다.     


일주일 뒤에 부녀회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 웬일인지 도통 먹지를 않아. 밥이 달라져서 그런가 해서 돼지고기를 삶아줘도 안 먹네. 이거 어쩌지?”

나는 한달음에 부녀회장님 댁으로 달려갔다. 달래가 밥이 산처럼 쌓인 밥그릇을 앞에 두고 바닥에 엎드려있었다. 나를 본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그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달래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는 발길을 돌렸다. 나는 개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나는 힐끔 뒤를 돌아봤는데, 달래는 여전히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배가 고프면 먹겠지. 그래 이제 괜찮을 거야.’     


처음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된 곳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리란 곳이었다. 그곳엔 기숙사가 있어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잠시 틈이 날 때면 나리와 달래가 궁금했다. 그럴수록 더 바삐 손을 놀렸다.

보름이 금세 지나갔다.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떠넘기다시피 개를 맡겨놓고 안부를 묻는 것이 죄송했지만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리는 아주 잘 있다고 했다. 임신까지 했다고 하니 더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부녀회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회장님!”

“아, 자네구먼. 안 그래도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전화번호 적은 둔 쪽지가 어디로 가버려서 연락을 못 했네. 그나저나 이거 어쩌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네? 왜요? 우리 달래에게 무슨 일이라도…….”

부녀회장님은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게, 개가 그만 죽어버렸네. 도통 먹지를 않아서 언젠가는 먹겠거니 하고 내버려 뒀는데 며칠 전에 아침 일찍 나가보니 축 늘어져서 죽어있는 거야. 죽은 개를 어찌할 수도 없어서 산에 묻었어. 이거 미안하게 됐네. 그려.”

“.......”     


달래가 죽었다.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내 걸음을 몰래 뒤쫓던 녀석의 큰 눈이 생생한데, 어색하게 흔들리던 녀석의 두툼한 꼬리가 선명한데, 영문도 모른 채 버려져서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녀석은 굶어 죽었다.

7년 전 일인데도 달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다. 녀석이 높이 쌓인 밥을 앞에 두고도 먹지 않고 엎드린 채 바라보았을 동네 어귀, 텅 빈 거리를 향한 녀석의 눈동자에 얼마나 많은 그리움이 피고 졌을까.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면 달래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못난 주인을 달래는 용서해 줄까. 어쩌면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달래는 여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달래야! 그때는 우리 오래도록 함께 지내자. 그때는 널 내 품에 안고 다시는 놓지 않을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커버 이미지 : pixabay.com, zeroespan1 / 2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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