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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보약은 여태 남아있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잊히지 않는 것

by 고재욱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엄마의 건강이 무척 좋지 않았다. 당시에는 꽤 위험한 병이었던 폐결핵에 걸리셨다. 폐에 천공이 생길 정도로 병이 상당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엄마는 내게 젖도 물리지 못하고 나를 시골 할머니 집으로 보내야 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엄마는 호전과 재발을 반복했다.
그때 나는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몸이 약했다. 늘 감기를 달고 살았고 키도 몸무게도 평균 이하였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할머니는 내게 이런저런 보약을 먹였는데, 대부분의 약은 민간에서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할머니 표 보약이었다.

얼었던 개울물이 녹기 시작하고 휑한 앞마당에 초록 풀이 불가사리처럼 드러눕는 봄이 되면 할머니의 시골집 앞에는 뜯긴 달력이 붙었다. 달력 뒷면 하얀 백지에 꼬부랑글씨로 구인광고를 내걸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개구리 삼. 10마리에 10언. 반뜨시 사라 이슬 것>

(참고로 할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


당시에 삼양라면 한 봉지 값이 50원이었다. 개구리 50마리를 잡아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라면을 먹고 싶은 온 동네 아이들이 할머니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제법 머리가 큰 중학생도 있었다. 할머니 집에 동네 아이들의 방문이 잦아들수록 처마 끝에 매달리는 개구리의 숫자도 늘어갔다. 새끼줄에 굴비처럼 달린 개구리들은 두 다리를 쭉 펴고 자신의 운명에 순순히 몸을 맡긴 듯했다. 바람과 태양도 할머니의 정성을 도왔다. 나는 마루에 누워 바람에 흔들리는 개구리를 보며 잠들곤 했다.


큰 가마솥에 개구리를 가득 채운 할머니는 며칠을 그 앞에 머물며 장작을 태웠다. 뽀얀 국물이 하얀 사기그릇에 담겼고 할머니는 사골 국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네 살이면 개구리의 운명쯤은 알만한 나이였다. 꼬마는 할머니의 정성을 보았기에 모른 척하며 사골 국을 마셨다. 비릿했다. 아주 많이.
자라면서 나는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하곤 했는데 아마 그 많던 개구리 중에 청개구리 몇이 섞였던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나무를 하러 산에 올랐던 농업고등학교를 중퇴한 영식이 산삼을 캤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득달같이 영식을 붙잡아 와서는 다짜고짜 산삼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머리를 긁적이던 영식은 결국 어른 새끼손가락 같은 산삼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갔다. 어린아이에게 산삼은 좋지 않다고 동네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쳤지만 할머니는 자신만의 정제법이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다음날 새벽 나는 미처 잠에서 다 깨기도 전에 할머니의 비법 산삼 물을 마셨다. 나는 그 길로 잠에 빠져 삼일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죽다 살아난 것이다.


한 번은 맹독을 가진 독사 종류, 살모사가 집 마당에 나타났다.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다섯 살배기 고양이, 나비가 오랜 사투를 벌인 끝에 뱀을 제압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무릎을 쳤다. 할머니는 축 늘어진 뱀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뱀을 닭에게 먹여 약닭을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


닭들은 죽은 살모사를 피해 다니기만 했다. 할머니는 그것을 잘게 자르고 절구질을 해서 닭에게 줘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할머니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닭대가리란 말은 한참 잘못된 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할머니는 부리나케 동네에서 약초를 잘 안다는 박 씨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할머니는 양파 망에 이제는 뱀으로 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넣고 닭장 한쪽에 매달아두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양파 망 속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지체 없이 양파 망을 닭에게 던졌다. 몇몇 토종닭이 달려들었다.
다시 일주일쯤 지나자 독을 품은 구더기를 먹은 닭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깃털이 빠졌고 꾸벅꾸벅 조는 시간이 늘어났다. 오래지 않아 닭의 모든 깃털이 빠져서 해수욕장의 아가씨들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할머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병약한 손자를 위한 또 하나의 보약을 제조했다.

나는 꼬박 보름을 앓아누웠다. 나는 다시 한번 죽다 살아났다. 후일 안 사실이지만 실제 이러한 약이 되는 닭을 사육하는 농장이 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닭이 독사의 독을 완전히 해독하고 빠졌던 깃털이 다시 자라고 난 후에야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이러한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장에서는 이를 ‘뱀닭’이라고 소개했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동작이 너무 빨랐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할머니의 보약을 먹은 후에 나는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가 완전히 회복된 후였다.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다. 그동안 엄마가 나를 만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할머니와 이별하는 날, 나는 할머니의 등 뒤에 숨어서 엄마를 한참이나 울렸다고 한다.




내가 중3 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얼마간 슬펐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할머니를 잊어갔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지났다. 할머니의 보약은 이미 내 몸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단어적인 의미 이상의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했다.
누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가만히 가슴속 이곳저곳을 들여다봤다. 책, 글쓰기, 자동차, 게임, 술, 담배······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다가 마음 더 깊은 곳에 숨어있던 단어 하나를 찾아냈다. 바로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보약은 내 몸이 아니라 마음속에 여태 남아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할머니와의 추억임을 깨달았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잊히지 않는 것, 그것을 꺼내본다. 벌써부터 행복한 마음으로.



할머니, 그리운 / 고재욱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별은 하느님의 또 다른 선물이라고
거름처럼 뿌려지다가
탱자 가시 같은 손가락 세워
나 죽거든 저기에 묻으라 하면
꼬마는
와락 눈물 떨구고 안 된다, 악다구니를 썼다
저승길도 기운 있어야 간다며
볼때기 부풀어 삐죽거리는 아이에게
함께 먹자 고깃국 끓이고
떨어진 홍시처럼 납작한 젖무덤 내어주었다
고사리 같은 모습 눈에 선하고
바짝 말랐던 탱자나무는 봄눈을 틔우는데
머언 산에 동그랗게 심긴 할머니,
다시
봄이 오면
하얀 탱자 꽃으로 피어나서 흐드러지게 웃어나 주실는지

출처, 뉴스 앤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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