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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Oct 12. 2021

로또 2등 당첨된 날

10. 로또 2등 당첨된 날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얼핏 보면 통통한 얼굴인데, 이목구비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항상 벙거지를 깊이 눌러쓴 채 마스크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반 팔 셔츠나 짧은 바지를 입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드러내지 않고 다녔다. 그가 세상에 드러낸 건 두 눈동자뿐이었다. 그의 모습이 남달랐지만, 눈가에 늘 웃음기를 띄고 있던 그였기에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식당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가 바닥에 떨어트린 수저를 주우려고 식탁 밑으로 몸을 구부렸다.

“에이 제기랄, 안되네. 미안한데 이것 좀 주워주실래요?”

 하얀 장갑을 벗은 그의 손에 손가락이 하나도 없었다. 목이 긴 나무주걱 같았다.          


 형석 씨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어린 아들을 늙은 어머니 집에 데려다 놓고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여력이 없었다. 형석 씨를 혼자 두고 일을 나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밖에서 문을 잠갔다. 아이를 온전하게 지키기 위한 할머니만의 방법이었다.     

 어린 형석 씨는 할머니가 올 때까지 온종일 방에서 지냈다. 배가 고프면 개다리소반에 차려놓은 밥을 먹었다. 구석에 놋쇠 요강도 있었다. 다섯 살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가 바닥에 배를 깔고 하얀 백지에 할머니가 써두고 간 글자를 흉내 내고 있을 때였다. 천장에서 작은 불꽃이 두어 번 튀는가 싶더니 별똥처럼 불꽃 가루가 후드득 떨어졌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위를 올려다봤다. 연이어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벽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아이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손으로 연기를 쥐어보며 까르륵거렸다. 하지만 곧 연기가 짙어졌고, 이내 구렁이 혓바닥 같은 붉은 불길이 천장을 뚫고 나와 날름거렸다. 형석 씨는 아직 어렸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방문을 향해 급하게 손을 뻗었다.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쇠 문고리를 잡고 늘어졌다. 문고리는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구조대원이 고동색 방문을 부수고 안에 들어왔을 때 어린 형석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머리와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렸고 몸은 무방비로 불길에 노출된 후였다. 구조대원이 아이를 급하게 안았다. 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웅크린 아이의 조막손이 불에 녹아내려 있었다.           

 

 형석 씨는 노숙인 센터 사진사다. 그는 극적인 현장 모습을 잘 포착했다. 그가 찍은 사진은 센터 홍보에 이용되었는데,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그의 사진을 보고 물품이나 후원금을 보내왔다. 그는 한마디밖에 없는 손가락으로도 꽤 멋진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식사를 할 때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그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요,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중이에요”

형석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수술을 받으려고요. 그 엄청난 불길에도 제 발가락만은 무사했거든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발가락 중에 두 개만 빌려와서 손가락으로 쓸려고요.”

“아니, 그럴 수가 있어요?”

수술의 가능성보다 그런 이유로 수술을 하는 그의 마음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의문이었다.

형석 씨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힘들었지만, 뭐, 요즘도 힘들기는 하지만요. 가능하대요. 돈이 좀 들어서 그렇죠. 손가락이 될 발가락 하나에 천만 원이래요. 와! 발가락 두 개를 빌려오는데 모두 이천만 원이 든다는 거죠.”

그가 내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손은 그냥 1억 번 거예요. 로또 2등이 당첨된 거라고요”

“…….”     

  

 반드시 젓가락을 사용할 거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모나미 볼펜을 쥐고 글자를 써볼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그는 미리부터 감사 인사부터 했다. 하지만, 그 일은 금세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찍는 일 외에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계획을 발표한 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형석 씨는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손과 두 발이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희끗희끗한 피부에 햇볕이 쏟아져서 그의 얼굴이 반쯤 사라진 것 같았다. 통증이 상당할 것 같았는데, 형석 씨는 침대에서 실실 웃고 있었다. 그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두툼하고 긴 손이었다.     

 형석 씨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시간이 느린 적은 없었다며 시계를 재촉했다. 하지만, 하루하루는 묵묵히 제 일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드디어 붕대를 푸는 날이 되었다. 양쪽 발에서 하나씩 빌려온 발가락으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붕대를 푸는 의사의 손이 어찌나 굼뜨던지 하마터면 직접 달려들 뻔했다. 형식 씨는 말할 것도 없고 주위에 있는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넓고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 속의 먼지들도 숨죽이고 제자리에 멈춘 것만 같았다.        


 마침내 두툼하고 뭉툭한 발가락, 아니 손가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석 씨가 새로 생긴 손가락 두 개를 제 눈앞에 바짝 올렸다. 그는 한참 동안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근데 이건 발가락이요? 아님 손가락이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누군가 바람결에 묻어온 목소리처럼 말했다.

“그건…… 꽃가락이다.”

형석 씨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정말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제 형석 씨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볼펜을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꽃가락은 그 일 말고도 더 많은 향기를 세상에 전할 것이다.

 열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형석 씨는 현재 충북 음성에 있는 한 재활센터에서 알코올 중독자를 돕고, 주말에는 노숙인 쉼터에서 이런저런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이제 젓가락질을 아주 능숙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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