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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욱 Apr 07. 2023

메뚜기의 선물

이쪽에서는 선물이고 저쪽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만

 해가 먼 산을 넘기 전, 아침이슬이 떠나기 전이 그들의 시간이다. 고개를 숙인 벼가 빽빽하게 자란 넓은 들이 그들의 땅이다. 평소라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그들이지만 이때만큼은 움직임을 줄인다. 그리고는 물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울기 시작한다.

수컷이 자신만의 울음소리로 아내를 부른다. 그냥 우는 것 같지만, 그는 소리를 가장 멀리 보내기 위해 굴절, 반사, 회절, 증폭, 공명 현상을 만들며 운다.          


메뚜기는 암컷이 수컷보다 2배 정도 크다. 이들이 사랑을 나눌 때는 수컷이 암컷 위에 붙어있다. 수컷은 암컷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긴 뒷다리에 까끌까끌한 돌기까지 만들었다. 실제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30분 정도이지만, 몇 시간을 암컷 위에 머물기도 하는데, 가장 마지막에 사랑을 나눈 수컷의 정자가 알을 수정할 확률이 높아서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한다. 메뚜기의 사랑 역시 사람 못지않다. 아니 더 치열한 건가.     


몇천 년 전 이집트의 저주에도 등장했던 메뚜기는 인류와 오랜 시간 동행한 곤충이다. 벼메뚜기가 소만(小滿) 이전에 태어나면 홍수가 난다는 19세기 초반의 기록을 보면 우리 선조들도 그들을 눈여겨본 것 같다. 하지만 대체로 유익한 쪽은 아니었나 보다. 생태계에 피해를 준 사건 안에 그들이 자주 등장한 걸 보면. 그런데 요즘은 그들과 인류의 관계가 좀 바뀐 것 같다. 메뚜기가 미래 식량부족의 대안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그들 처지에서는 더 나빠진 듯도 하고.           




날이 밝기 전 집을 나선다. 걸어서 5분이면 너른 논이다. 농약을 살포하지 않은 땅이다. 두렁 길을 살핀다. 잘 몰랐을 때는 긴 잠자리채를 들고 그들을 찾았다. 하지만 보통 날랜 것이 아니어서 온종일 채를 휘둘러도 헛수고였다. 하지만 그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목소리를 바꾸고 뒷다리를 늘인 것처럼 천적도 진화했다. 이제는 두렁에 올라서기만 해도 그들을 찾아낼 수 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벼잎에 붙어있다. 그런데도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벼의 줄기 두 번째 마디를 지나 세 번째나 네 번째 자란 잎 안쪽에 몸을 숨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홀로 있을 때 초록이지만 다수가 모이고 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계절에는 누런색 몸통에 검은 무늬를 만들어서 벼잎과 도통 구분이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의 눈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별 하나 없던 밤하늘을 계속 바라보며 하나둘씩 희미한 별을 찾아내는 것처럼 한 곳을 반복해서 응시하면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볼 수 있게 된다.     


잎사귀 위에 그들이 있다. 큰 메뚜기 등에 작은 메뚜기가 붙어있다. 여린 햇볕조차 잠든 이른 새벽에 둘은 열일 중이다.

서서히 다가가는 손바닥에도 꿈쩍없다. 넓은 뒷날개는 젖었고 좁고 두꺼운 앞날개만 움찔거린다. 번식을 위해 혹은 진짜 사랑을 나누었을지도 모를 그들을 붙잡는다. 절정의 시간이 나락이다. 완수하지 못한 사명에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다시 나올 수는 없다.

가끔 혼족이 보일 뿐 모조리 커플이다. 해가 뜨기 전에 2L 생수병이 메뚜기로 가득 찬다.          



주말에만 메뚜기 상점을 연다. 한 접시에 15,000원을 받고 판다. 손님은 야영객이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다음 깨끗하게 손질한 메뚜기를 달달 볶아서 접시에 내어놓는다. 은근한 불에 오래 볶아야 깊은 맛이 난다. 보기에는 혐오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고소한 들기름 향이 스며든 바삭한 메뚜기볶음은 일단 먹어보면 자꾸 손이 가게 마련이다. 남자들은 어린 시절 무용담을 섞어 먹고, 여자들은 손사래를 섞어 먹는다. 꼬맹이들도 엄마, 아빠 따라먹는다. 몇천 년을 번식한 메뚜기인 만큼 꼬맹이가 부모가 되어도 메뚜기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꼬맹이였던 아빠, 엄마가 아이들에게 옛 기억을 들려주겠지.

메뚜기 한 접시에 하하! 호호! 야영장이 소란스럽다.          




지금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메뚜기가 골칫거리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중국을 습격한 메뚜기떼가 하루에 3만 5천 명이 먹을 양의 식량을 먹어치우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미래 식량으로써 메뚜기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메뚜기의 단백질 함량은 22.5%로 소고기보다 높고 흡수 또한 잘 된다고 한다. 무기질 함량도 8%나 되어서 철분 보충용으로도 아주 좋다고 하니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메뚜기를 볶아주셨을 때 하나라도 더 먹을 걸 그랬다.     


굳이 곤충까지 먹어야 하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양에서는 십수 년 전부터 미래의 먹거리로써 국가적인 곤충산업 연구가 활기차게 진행 중이다. 꼭 식용이 아니더라도 곤충산업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도가 높다. 우리나라의 곤충 식용화 기술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초기 단계라고 한다. 집중적인 연구개발과 산업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근래에는 메뚜기 사냥을 나간 적이 없다. 사랑을 나누던 커플만 잡아들인 일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실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땅이 근처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논에 나가봐도 예전처럼 메뚜기를 보기 어렵다. 농약이나 살충제 사용을 자제하면 좋겠다. 꼭 먹거리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전해줄 추억거리 하나는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맛도 알게 해 주면 더 좋고.

몇 시간이나 사랑을 나누는 메뚜기의 정력은?…… 쉿!                      






참고 문헌,

(1) 국립생물자원관 김태우 동물자원과 환경연구사 한국일보. 2020.09.19 기사 참고.

(2) 고려대학교 소장 농정서(19세기 초반에 농정, 수리, 양어, 원예, 축산 등 농업 전반에 관하여 미상의 필자가 중국 [농정전서]에서 발췌하여 편찬.

    소만(小滿)은 24 절기의 하나로,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  

(3) 곤충산업 현황과 전망,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농업연구관 최영철


대문사진 pixabay.com_jgg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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