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공소

글 못쓰는 사람이 써보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

브런치 4수 생이 씁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구하며.

by 고재욱


요즘 글쓰기 운동이 벌어진 걸까. 글쓰기 강좌, 글쓰기에 대한 책, SNS엔 글쓰기 예찬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내 책상에도 글쓰기 관련 책들이 잔뜩 쌓였다. 각종 포털에는 골방에서 글쓰기를 멈추고 공개 글쓰기로 전환하라는 구호가 넘쳐난다. '매일 써라, 엉덩이로 써라, 뭘 쓸지 고민하지 말고 일단 써라'라는 말은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하다.


글쓰기 책들이 전하는 내용들은 어떤 것일까? 저자들의 개성 있는 문장들의 차이를 제외하면 그 내용이 그 내용인 듯싶기도 하다. 자신(글)을 믿으라는 것, 스스로를 솔직하게 드러낼 것, 책을 읽되 제대로 꾸준하게 읽으라는 것, 글쓰기의 습관을 들일 것, 문장을 수집하고 정리할 것, 먼저 자신의 내면에 생각의 집을 지을 것, 매일 쓸 것, 기초부터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 과정을 들어 '글쓰기는 집 짓기다'라는 분도 있고(누가 어디에 적었는지 기억이 안 남) 그림에 비유하기도 하고(강원국의 글쓰기) 맥도널드 햄버거에 빗대기도(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다.


나라면 '글쓰기는 엄마의 집밥이다'라고 적겠다. 엄마는 최대한 MSG를 넣지 않고 미리 천연 조미료를 만드신다. 나는 책을 읽으며 감동받은 문장을 수집하기로 한다. 가끔 딱 맞는 인용은 내 글에 조미료가 될 테니까. 엄마는 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재료를 구입하고 냉장고에 넣어두신다. 나는 메모를 통해 글감을 차곡차곡 쌓아두기로 한다. '최소한 뭘 쓰지?' 하는 고민은 덜 할 것이다. 엄마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결이 다르게 손질을 하신다. 깍둑썰기, 어슷썰기, 채썰기 등. 나는 글쓰기를 할 때 단문과 중문, 장문의 문장들을 박자감 있게 배열하려고 노력하기로 한다. 엄마는 김치찌개의 불을 언제 줄이고 꺼야 할지를 정확하게 아신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언제나 진리다. 나는 내 글에 과몰입된 감정을 줄이고 필요 없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더 열심히 찾기로 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세상을, 사람들을 조금 더 사랑해보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잘 못 쓴다. 책을 매일 읽기로 했지만 빠트린 날이 많고 쓰기도 마찬가지다. 잘 읽히는 글이 대세라는 작가님들의 일갈에 어쩐지 주눅이 드는 나다. 글은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겠다. 인정한다.


일부의 사진

일 년 전쯤에 직장 상사분이 회사에 책을 한 무더기 가져왔었다.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쓸모없는 책들이랬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고. 66권 세계문학전집, 밑줄 하나 그어진 곳이 없는 새책이었다. 득템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직 다 읽지 못해도 그냥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저 책들 중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책이 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이다. 이 책은 20여 년 전부터 도전 중인데 20년이 지나도록 완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읽히지 않는다. 내게만 그런 것일 수 있겠다. 같은 저자의 '죄와 벌'은 두꺼운 2권짜리인데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몰입해서 읽은 기억이 있다. 두꺼운 책과 긴 문장도 곧잘 읽어내는 편인데 이상하게 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잘 읽히지 않는다. 다시 도전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긴 글 읽지 않는다고, 쉬운 글, 잘 읽히고 내용 전달이 명확한 글을 원하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도 브런치를 몰랐을 때는 블로그에 올라온 긴 글은 휙휙 넘겼더랬다. 브런치 4수 끝에 입성? 한 이후로 너무 기쁜 나머지~ 요즘은 긴 글도 잘 읽고 있다. 잘 읽히지 않는 글을 만날 때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고민해본다.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의 요건일 수는 있겠으나 잘 읽히지 않는다 해서 나쁜 글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나쁜 글은 아닐 테니까.

세상에 나쁜 글이 어디 있을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잘 읽히지 않으면 또 어떤가. 글이라는 것은 쓰다 보면 늘 수밖에 없다. 조금 늘지 않으면 또 어떤가. 모두가 책을 출판할 것도 아니고 책을 낸다고 해도 내 책장에 꽂힌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지도 않을 게 아닌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잘 읽히지 않아도 그 내용이 솔직하고 가르치기보다는 나누고자 하는 글을 좋아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다음에야 이미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다. 자신이 많이 알고 있음을 많이 모를 뿐이다. 물론 잘 읽히고 내용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이 책을 근 일 년 만에 다 읽었다. 반쯤 읽다가 어딘가 숨어버렸는데 며칠 전에 찾았다.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는 고흐는 생전에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그의 동생 테오에게 늘 신세를 졌다. 글이 팔리지도 않고 테오 같은 동생이 없는 나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유명하지만 자신의 시대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까지 미국 최고의 천재 시인으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스는 당시엔 그저 그런 작가였고, 프란츠 카프카, 레오나르도 다 빈치조차도 자신의 시대에는 그저 무명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저런 어마 무시한 천재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통해 부족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글을 쓰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나를 포함한 무명씨들이여 힘을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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