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공소

기본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는 이 기본적인 기본을

글쓰기의 기본을 다시 생각하다

by 고재욱

어겼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오늘, 나는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아니 사고를 낼 뻔했다. 오늘은 나이트 근무다. 보통 나이트 근무를 들어오기 전에 몇 시간은 잠을 자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뭔가 분주해서 잠은커녕 출근 전까지 밀린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서둘러 출근해야 했다. 출근을 하게 되면 그날 맡아야 할 구역의 어르신들을 쭉 둘러본다. 일명 라운딩이다. 밤 아홉 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니 어르신들 대부분은 주무신다. 오늘 내가 담당해야 할 방은 세 개의 방이었다. 11명의 어르신이다. 중간에 두 시간 정도는 다른 직원의 쉬는 시간과 맞물려 층 전체의 어르신을 살펴야 한다. 40명 정도의 어르신을 지켜봐야 하지만 대부분 주무시니까 크게 어려움은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그랬는지 나는 출근을 하고 라운딩을 돌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여유롭게 마시기까지 했다. 다른 직원들과 수다를 떨면서. 6년이 넘는 요양보호사 생활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곧 세 자리 숫자가 될 읽지 않은 카톡을 확인하고 간간히 CCTV를 확인했다. 두어 시간이 넘어서야 어르신들 기저귀 케어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내 눈에 들어온 아찔한 상황. 머리털이 모두 천정을 향하는 느낌.

102세의 할머니였다. 앞을 볼 수 없는 분이다. 할머니의 침대 난간이 아래로 내려져 있었다. 급기야 할머니는 침대 가장자리에 아슬하게 누워 계셨다. 악- 짧은 탄식이 나왔다. 전 근무자가 실수로 난간을 올리지 않은 모양이다. 요양원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고가 바로 낙상이었다. 어르신들 다수는 심한 골다공증 상태다. 때문에 작은 낙상도 어르신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침대 난간을 올리고 어르신 몸의 위치를 안쪽으로 옮겨드렸다. 어떤 상황인지 모른 채 고맙다고 웃으시는 어르신은 볼 수 없었지만 내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다행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난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일을 지키지 않은 결과였다. 어르신께 너무 죄송했다. 스스로 너무나 창피했다.





요즘 글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서 일까? 어르신의 일을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글쓰기가 떠올랐다. 나는 글쓰기의 기본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혹은 글쓰기의 기본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저런 글쓰기 책을 읽었다. 좋은 내용들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것은 아니었다. 내 것으로 체화하지 못한 것이다. 책장에 꽂힌 삼분의 일도 읽지 못한 우리말 문법책이 나를 비웃는 듯도 했다. '기본적인 문법도 모르면서 무슨 글을 쓰니?'라고. 갑자기 주눅이 들었다. 도대체 세상에 저리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더군다나 멋지게 써내는 사람이 허다한데 왜 나까지 써야 한 단 말인가? 글쓰기를 막아서는 자괴감이 이어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다소 상투적인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쓸 때 행복해서, 나 다움을 찾고 싶어서, 사람들의 공감이 좋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 행위가 멋지게 보이니까 등 어디선가 들어본 이유들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딱 표현하는 말은 아니었다. 어떤 대답을 떠올려야 내 속이 시원해질까.... 그렇게 적당한 마음에 드는 답을 찾고 있을 때였다.

독서는 괜히 하는 게 아니었다.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글을 쓰는 고통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에서 읽은 말이었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였다. 나는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이었다. 부족한 글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박물관 같은 분들이다. 그분들은 대한민국의 험난했던 근현대사를 오롯이 걸어오셨다. 그분들의 삶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어떤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90세, 100세를 넘긴 치매 어르신들의 삶은 단편적인 기억이라도 묵직하다.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 삶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듣고 꼼꼼하게 기록할 것이다. 내 부족한 글로 그분들의 곡진한 삶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글쓰기를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오늘도 나는 읽고 쓰고 글을 나눈다. 안 쓰는 고통이 커서, 보고 듣고 읽은 것을 나누고 싶어서, 글쓰기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멈추지 않고 쓰고 있다. 나만의 글쓰기 공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림 같은 집은 완성될 것이다. 무척 오래 걸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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