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목표, 나답게 살자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참 빨리도 생각한다. 48년 동안 나다움에 대해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요즘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부쩍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개인적인 기준이겠지만 나는 여린 마음을 갖고 있다. 자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 혈액형으로 분류되는 성격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 성격을 보면 반대할 수만도 없다. 난 A형, 혈액형의 특징에 제대로 들어맞는 소심한 A형이다. 누군가 내 일을 지적이라도 하면 '아 그래요'하며 환한 웃음으로 수긍한다. 나는 꽤 대범한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그렇게 평가받곤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적받은 일에 대해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며칠이 가도 그 지적받은 일이 잊히지 않는다. 난 대범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기까지는 복잡한 요인이 있을 테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 시간, 그 사람만의 유전적 기질과 부모의 영향이 있겠지. 여기서 생각이 멈춘다. 부모의 영향... 나는 아버지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오래지 않아 경상남도 남해라는 작은 섬으로 떠나야 했다. 두 살은 자신이 살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나이였다. 혼자 뛰어다닐 정도 자랐을 때 당연히 동네 친구들이 생겼다. 작은 아이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리게 만들었다. 시골 사람을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현재 나는 시골에 산다.
당시의 시골사람들은 내게 불친절하고 무지했다는 생각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호래자식'이라고 불렀다. 부모의 말을 귀동냥한 동네 아이들과 나는 자주 다투었다.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오랑캐의 자식으로 자랐다.
양아버지를 만난 뒤에 서울로 다시 오게 되었다. 내 나이 열두 살이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학교에서는 학기 초에 가정환경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의 선생님들도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던 시골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빠 없는 사람? 아빠가 양아버지인 사람?'이란 질문을 대놓고 했다.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나는 손을 들고 싶지 않았지만 손을 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웅성거렸지만 선생님은 자기 할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일 이후에 아이들은 '야! 양아버지가 뭐냐?' 대놓고 묻기도 놀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면서.
내 삶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 온 경험들이 쌓이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음에 대해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알았다.
글을 쓰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니까. 내 생각을 꺼내고 정리하는 글쓰기가 반복되면서 내 감정의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아파하고 있었다. 40년이 지났지만 내 마음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치유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덮어만 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감정을 꺼내기 싫었다. 다른 이들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기도 들키기도 싫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왔으니까. 계속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야지 하는 목소리가 자꾸 들렸다. 하지만 글은 자꾸 나를 고백하고 꺼내는 문장을 요구했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 중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 욕창이란 것이 생긴다. 같은 부위의 피부가 오랫동안 압박을 받을 때 생기는 것이다. 욕창은 여러 형태로 발견되는데 어떤 경우는 겉으로 딱지가 생기고 나은 듯 보이지만 속으로 곪은 상처가 있다. 이럴 때는 겉에 생긴 딱지를 강제로 떼어내고 고름을 긁어내야 한다. 그 방법밖에는 없다. 나는 내 마음을 드러내야만 했다. 그래야 깨끗하게 치유될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글쓰기가 계속될수록 아팠던 감정들이 희미해진다는 거였다. 거기다가 봉인했던 내 기억들을 멀찍이 바라보며 웃을 수 있게 됐다. 마음이 후련해진 느낌이다. 슬픔이었던 시간들이 지금 글감이 되어주니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10월의 목표를 말하다가 참 멀리도 왔다. 이제 정리를 잘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역시 글은, 존경하는 한량 작가님의 말씀처럼 '쓰면 써지는 게 글'이다. 10월엔 훌훌 털어낸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살지 않겠다. 아무런 일에는 아무렇다고 표현할 테다. 가장 나다운 모습은 글을 쓰는 나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냈던 어떤 한 달보다 가장 많이 글쓰기에 집중하는 10월을 만들겠다. 결코 내 아픔을 놀려먹지 않을, 글을 읽고 쓰는 브런치 친구님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