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치매가 없다
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중이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2004년부터 치매를 공식 용어에서 추방했다.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저자, 김웅철, 매경 비즈 교육센터장. by MEDI:GATE)
'치매'(痴呆)라는 한자는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단어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일본은 요양원 수를 늘리기보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지증에 대한 기본 연수를 실시했는데, 2017년에 '인지증 서포터스'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역 사회에서 인지증 환자들을 기피하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요양원 수를 늘려가고 있다. 이 모습은 사회로부터 인지증 환자를 분리시키려는 노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문제인 정부는 '치매 국가 책임제'를 치매 정책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환자는 70만 5473명으로 추정된다.(중앙치매센터, 2018 현황) 치매환자가 그렇게 많다는데 우리나라에서 치매환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길에서 치매환자를 만난 적이 없다. 그 많은 치매환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5,287곳의 노인의료복지시설에는 치매노인들이 가득 차 있고 대기하고 있는 노인들도 많다.(노인의료복지시설은 노인요양시설과 노인요양 공동생활 가정을 말한다. 노인 요양병원과 재가, 즉 가정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받는 서비스는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에는 치매요양원 거리가 있다. 스가모라고 한다. 인지증 카페도 있다. 치매 환자들을 위한 카페다. 편의점 직원들은 인지증 환자를 접대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을 받는다. 위에서 밝힌 1000만 명의 인지증 서포터스다. 일본 요양원의 첫 번째 설립 목적은 인지증 환자의 가정으로의 복귀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요양원에 입소한 후 가정으로 복귀하는 노인을 본 적이 없다. 노인들이 요양원을 기피하는 이유는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나 나올 수 있는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선입견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요양원은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치매 관련 예산은 OECD 최하 수준이다. 가정에서 보살필 수 없어 요양원에 보호를 위탁한 노인 십 수 명을 요양보호사 한 명이 보살펴야 한다. 어떤 재활을, 안전한 보호를 할 수 있을까. 노인은 과연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배설물을 엉덩이로 깔고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어도 '그냥, 기저귀에 보세요'란 말을 당연한 듯이 들어야 한다. 요양보호사는 야간이면 서른 명이 넘는 노인을 홀로 살펴야 한다. 차근한 보살핌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왜 일본은 하고 우리나라는 못 하는 것일까? 일본 요양원에서는 재활을 해서 노인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흔한데 왜 우리나라 요양원에서는 그런 일이 희귀한 일이 되었을까?
몇 년 전, KBS 파노라마, 다큐 프로그램에서 일본 요양시설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간보호 시설이었는데, 그곳 실내에는 준비된 계단과 언덕이 있었다. 인지증 환자인 노인들이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넘는 연습을 했다. 바깥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라 했다. 우리나라 요양원들은 문턱도 모두 없앤다. 노인들이 넘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노인들의 가정 복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일본 관계자가 말했다. '인지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들을 따로 격리시키지 않는 것이다'라고. 우리나라는 치매환자들을 격리시키기에 바빠 보인다. 이곳 원주에서도 대규모의 요양시설 건설이 한창이다. 이미 입소하기 위해 대기자가, 사실은 대기자의 보호자가, 줄을 섰다는 소리가 들린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치매노인들을 따로 격리시키는 이유가 무었일까.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었다. 말 그대로 장기요양이라는 것은 이윤을 발생시킬 수 없는 사업이다. 정부는 2005년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광주 남구, 강릉, 수원 부여, 안동, 북제주를 1차 시범사업지로 시작해서 2차, 부산 북구, 전남 완도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넓힌 후 인천 부평구, 대구 남구, 청주 , 익산, 하동을 3차 시범사업지로 확장했다. 하지만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실시하기엔 3년의 세월은 너무 짧았다. 미처 준비 되지 못한 정부는 돈벌이가 되어서는 안 될 이 사업을 민간에 오픈해버렸다. 그 결과 일정 시설 조건만 갖추면 설치신고를 통해서 민간인이 요양원을 개원할 수 있게 되었다. 짐작하겠지만 요양원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버렸다. 차마 모든 것을 이 글에 밝힐 수는 없겠으나 요양원을 설립하고 어르신들을 모은 다음 노인 머릿수에 따라 권리금을 받고 요양원을 되파는 사람도 등장했을 정도니, 이 도가니를 어찌해야 할까.
우리의 관심이 이런 오류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시작은 되지 않을까 싶다. 급여 생활자나 자영업자가 내는 의료보험료를 보면 장기요양보험이란 항목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노인장기요양보험료를 세금으로 낸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묶여있던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액의 약 6.55%였다. 작년 2018년에는 7.38%, 올해는 8.51%로 2년 연속 인상됐다. 내년에는 인상률이 역대 최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2019년 국감, 김승희 의원) 이 세금을 지원받아 치매환자는 요양시설에 입소한 후 요양비용의 20%를 부담한다.(기초 수급 대상자는 100% 무료, 최상위층은 10% 부담) 나머지는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한다. 노인장기요양급여 지급액은 지난해 7조 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19년 상반기에만 4조 원대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치매관리비용은 15조 7천억이었다. 2050년에는 106조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보건복지부)
세금을 내고 있으니 세금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의 치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의도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내세운 치매 정책 용어에 대해 반려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인들은 치매환자를 지역사회에서 보듬고 있고 우리는 치매환자를 요양원으로 보내고 있다. 일본 요양원에서는 인지증 환자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는데, 우리는 한 번 들어온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막대한 세금이 사용되고 있는데, 어떤 요양원은 그 세금을 이용해서 세를 불리고 1등급, 와상 환자(누워만 있는 환자)에게 권리금을 더 얹어서 요양원 매매 광고를 올린다. 현직에서 일하는 있는 요양보호사로서, 어르신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일본의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부럽다. 나는 다이소에 발길을 끊었고 더 이상 유니클로를 구입하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요양원들은, 그러한 요양원이 생기도록 부추긴 정부는, 이런 현상에 눈 감은 우리는 모두 공범자가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작은 촛불이 모여 탄핵을 이룬 우리다. 한번 붙기 시작하면 산천을 물들이는 진달래 같은 우리다. 우리가 인지증 환자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우리가 촛불이 되어 노인들의 말 못 하는 마음을 밝혀주면 좋겠다. 그분들의 마지막에 우리가 희망이 되면 참 좋겠다. 언젠가 그들이 우리를 보살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