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돌리는 삶일지라도

나는 기꺼이 내일을 기다린다

by 고재욱

11월이다. 바람은 부쩍 차가워지고 초저녁 하늘이 어둠 쪽에 서는 때이다.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관절이 삐걱대는 소리가 커지는 달이기도 하다. 짧게는 오십오 년에서 백 년이 넘도록 혹사당한 노인들의 몸은, 아직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매서운 시절을 관통한 증거들이 무수히 남아있다.




한 할머니의 손가락이 시계방향으로 휘어져 있다. 학생들이 떠난 시골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홀로 맴도는 바람처럼, 할머니의 손은 소용돌이친다. 마디마디 굳은살이다. 할머니의 다리가 되어주는 휠체어 둥근 바퀴처럼, 한달음에 닿을 뒷산의, 사람들에게 도토리를 뺏긴 다람쥐꼬리처럼 할머니의 손은 자꾸만 둥글어졌다.




할머니는 배곯이가 힘들어 시집을 갔다. 시집을 가보니 하필 거기도 가난한 집이었다.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가난한 집은 무리를 해서 지참금을 마련했고 신부는 구했지만 가난한 시댁은 더 가난해진 터였다. 졸지에 더 가난해진 책임의 근원이 된 할머니는 열일곱의 나이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열심히 사는 모두가 사정이 나아지면 좋을 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좋아지는 건 아닌가 보다. 아들 다섯을 낳고 '밥은 굶지 않겠구나' 생각할 때쯤 남편이 병들었고 끝내 남편은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베개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번엔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는 누명을 써야 했던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만은 지켜낼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할머니는 남편의 지게를 지고 나무꾼이 되었다.


할머니는 건장한 사내들처럼 지게를 가득 채울 수 없었다. 도끼로 나무를 내려치다가 자루를 부러뜨리기 일쑤였고 도낏자루를 손에서 놓쳐 도끼를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금도끼, 은도끼는 동화 속 이야기일 뿐, 산신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굵은 장작을 파는 나무장사는 많았다. 할머니는 그들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장작을 파는 사람들에게 불쏘시개 용의 나무는 없냐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무릎을 쳤다. 아이들과 살아남기 위해 고심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나무장사의 틈새시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불쏘시게로 사용할 수 있는 잔가지를 칡넝쿨로 묶어 한 단씩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대히트였다. 나무 한 단을 만들 때 칡넝쿨을 시계방향으로 계속 돌려 매듭을 지었는데, 이십 년이 지나자 할머니의 손가락도 칡넝쿨처럼 동그란 매듭이 되어버렸다.




할머니의 다섯 아들은 잘 자랐을까. 나는 자주 하늘이 하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섯 아들 중 셋은 사고와 병으로 할머니를 앞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휘어진 손가락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할머니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마른 넝쿨 같은 손가락만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의 손자, 손녀들이 면회를 왔다. 대학생들 이랬다. 길고 뽀얀 아이들의 손가락이 할머니의 휘어진 손을 감싸 쥐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아이들 손바닥 안에서 배시시 웃었다. 할머니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떠나보내는 아픔이 있고 찾아오는 기쁨 또한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이다. 며칠 전 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어르신의 부고가 전해졌다. 오늘 새로 요양원에 온 어르신도 있다. 나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할아버지의 손이 따듯했다. 할아버지께서 수줍게 웃으셨다. 우리는 한참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이 손은 또 어떤 사연을 말해줄까.


쳇바퀴 돌리는 듯한 삶일지라도 나는 기꺼이 내일을 기다릴 요량이다. 밖에서 고양이들이 앙앙거린다. 어디에선가 새 생명이 태어나는 모양이다.